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최근 아는 분께 도움을 받은 일이 있어, 감사차 대접할 일이 좀 생겼다.
대접하는 일이야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역시 장소나 식당을 결정하는 일은 언제나 참으로 고민스럽기 그지없다.
막역한 사이라면야 대충 동네 삼겹살 집으로 불러
냉동삼겹살 몇 점 입에 쑤셔 넣어 주고, 등 떠밀어 집으로 돌려보내겠지만,
(요즘은 냉동삼겹살도 비싸다.)
그런 사이가 아닌지라 더욱이 고민스러웠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던 중에 회사 동료에게 혜화동 대학로 근처의
모 중식당을 소개받게 되었고, 더 고민할 것 없이
그곳으로 장소를 정하고는 방문하게 되었다.
사진으로 본 분위기도 제법 좋아 보였고, 무엇보다 최근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
더 이상 이런 작고 하찮은 일로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거의 업무처리에 가깝게 의례적으로 방문하게 된,
전혀 기대감이 없던 그 중식당에서 식전 처음으로 내게 내어준 것은
다름 아닌 보이차, 보이 숙차였다. 내가 평소 즐기던 보이 숙차 보다
훨씬 투명하고 엷게 우려낸 보이 숙차.
더군다나 나의 경우 식후에 진하게 우려내어 마시는 편인데,
이렇게 식전 공복에 마시는 맑고 투명하게 우린 보이숙차 또한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엷게 우려낸 숙차는 입안도 한결 깔끔하게 씻어내 주는 것만 같았고,
아직 조금 쌀쌀했던 봄 날씨 탓에 식어있던 몸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그 은은한 보이차의 향, 그 향 은은하고 구수한 향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일전에도 식전에 차를 내어 주는 중식당이야 몇 차례 방문해 본 기억이 있지만,
다수가 허브티나 화차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며, 아마도 보이차가 나왔다고 해도
그때는 차를 잘 모르던 때라 그다지 감흥이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참으로 미안한 얘기지만 이후 식사와 몇 개의 요리, 후식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다지 내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사실 그다지 편한 자리도 아니었던 지라 더욱 그랬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내가 너무 식전차에 꽂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제법 비싼 집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깔끔하게 우려냈지?'
'연하게 우려내려면 찻잎을 어느 정도 넣어야 좋을까?'
'애당초 어떤 종류의 보이차를 사용하고 있는 거지?'
그래도 이 식전에 나왔던 보이차 덕분에 이런저런 딴생각을 하며,
제법 불편한 자리, 불편한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날 식전에 만났던 보이차는 정말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