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ㅇㅇㅇ실장, 요즘 그쪽은 좀 어때?"
"저희요?, 저희야 맨날 똑같죠 뭐..."
"아휴 죽겠어, 우리는 일이 너무 없어."
"하하, 뭐 언제는 그렇게 좋았습니까?"
"요즘 경기도 너무 안 좋고, 점점 봄/가을이 없어지다 보니, 우리 같은 옷장사는 죽으라는 거야..."
"코로나도 버텼는데요 뭘, 나아지겠죠."
"아휴 모르는 소리...(정치 얘기)..."
"하하, 네에 그렇죠 뭐..."
공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바쁘고 분주하며, 기계들 역시 큰 소음을 내며 쉼 없이 돌아간다.
또한 공장 한 켠에는 여러 의류 박스가 잔뜩 쌓인 모양새로 보아,
절대 일이 없는 상황이 아니란 것쯤은 누가 봐도 알만한 상황이다.
내가 판단하기에는 되려 거의 포화상태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저 대화는 그저 습관적으로 나오는 '죽는소리'일뿐이다.
나는 의류 관련 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주 동대문에 이런저런 업체들을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벌써 지금 회사에 몸담은 지도 10년이 다 되었다.
이렇게 어영부영 제법 긴 시간을 지내다 보니 그만큼 낯익은 얼굴들도 많아졌고,
그 덕분에 유독 나를 붙잡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하소연을 하는 분들도 더러 계신다.
재미난 사실은 그간의 세월 동안 경기가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이 '죽는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은 정말 유래없을 정도로 불경기임은 틀림없다.)
심지어, 어느 거래처의 오너는 올해 부지를 매입하여 사옥을 지었다는
그런 대박과도 같은 소문이 이미 한참을 동대문 시장바닥에 파다하게 돌고 있음에도,
막상 방문하여 찾아가면 이 '죽는소리'를 내고 계신다.
"왜 또 죽는소리를 하고 계세요?, 건물 올렸다면서요."
"아이고 다 빚이지 그게 어떻게 내 건물이야!"
"요즘 세상에는 빚도 능력이에요, 하하"
왜일까?
좋은 일이 있으면 솔직하게 자랑 좀 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사람들이 가끔 불필요하게 솔직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일종의 자기 방어를 위해서일까? 아니면 그들 나름의 배려인 걸까?
물론 뭐 잘되는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가 따르기도 하겠고,
과도한 자기 자랑은 무례하게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금 무례하고, 시기질투를 받더라도
솔직한 사람이 좋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특히 어른들은 위에 말했듯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도 솔직하지 못하게 숨기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별거 아냐, 괜찮아."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불필요하게 내 기분을 혹은 감정을 숨겨야 되는 걸까?
그런게 어른이라면 나는 그만 어른을 관두고 싶다.
습관적으로 '죽는소리'나 입에 달고 사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습관적으로 '괜찮다'는 소리나 입에 달고 사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마치 솔직한 기분이 그리고 감정이 약점이라도 된 것처럼...
우리는 불필요하게 솔직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불필요하게 많은 것들은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세상 사람들이 조금 더 솔직했으면 좋겠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고 내가 지금 보다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면 삶이 지금 보다 한 결 살기 편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