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를 위해 팔 차선을 건너는 남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겨울이었고 손은 시렸고 손이 시리다고 하니 따뜻한 커피를 사러 반대편 편의점을 향해 팔 차선을 무단횡단하는 남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한겨울에 너는 허접한 스레빠를 신고 갔으면서 사람은 누구나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려는 본능이 있다고 맹자도 말했던 건데 너는 그게 사랑이라고 했다 다른 차들에게 조금 민폐가 되는 것 아니니 하고 말하는 내 말에 너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오늘 밤 무도회에 초대받아서 들뜬 신데렐라처럼 사랑이라고만 했다 훗날 너는 사랑에게 종종 맞아서 경찰서에 들락날락거렸지만 너무 나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만 했다 너의 무도회는 왜 그렇게 초대만 받고 참석을 못하는 건지
매일 취해 있어서 술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취하지 않고도 취해 있는 것처럼 살아서 모두 다 같이 취해서 평범이 되려고 술자리에 간다는 것을 알았다 너는 취하면 종종 전봇대에 쭈그리고 앉아서 낙엽으로 콧물을 훔쳤다 매일 새로운 신을 만들어 종교 삼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누가 봐도 별로인 사람을 숭상하고 받들고 또 괜찮다고 술을 먹으러 나갔다 받고 싶었던 건 너야, 사랑스러운 너야, 하고 불러주는 목소리와 아기처럼 너의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는 손길이었을 텐데 아닌 손만 그렇게도 골라 뽑았다 경품 뽑기 이벤트에 당첨되면 네 손만 피하면 되겠구나 하고 비겁한 생각을 했다
너는 너처럼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 기회주의자라고 혼자서 또 다른 국가를 세웠다 세워진 국가에서 너는 왕처럼 군림하지도 못했으면서 세우긴 세웠으니까 통행료를 내라고 했다 엄한 사람을 붙들고 그런 소리를 자꾸 하니 키우던 강아지도 자꾸 가출을 했다 말 안 듣는 개여서 나가서 천만다행이라고 말하면서 자꾸 밤이면 강아지 사진을 보면서 얼굴을 쓰다듬었다 심장이 가까워지면 위로가 된다는 논문을 보았다면서 내가 귀가할 때마다 포옹을 하자고 규칙을 정했고 어쨌든 살아만 있으면 무엇이든 좋아서 매일 나는 너와 포옹을 했다
갑자기 모든 놀이가 싫증 났던가 너는 쪽지 하나 남기지 않고 어느 날 너를 때린 애인과 너를 떠난 개와 너를 한 번도 안아주면서도 안아주지 않았던 나를 남기고 떠났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 조사를 나왔지만 단순 가출로 처리되었고 늘 그렇듯이 요식행위는 큰 의미 없이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포옹할 사람이 없어서 나 혼자 내 어깨를 감쌌다 네가 진짜 무도회에 갔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