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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어디서 나는 걸까

by 송유성

과일을 실어 가던 트럭이 넘어졌나

바닥에 귤들이 데굴데굴 앉아 있다

귤도 온전한 것만 주워간다

누구는 한 번도 주워진 적이 없는데

그렇게 돈과 직장과 일과 주식과 이자만 이야기하면서 살 거면

세상에 풀잎과 모란과 희망과 사랑과, 그리고 애인

그래요 애인 같은 것은 왜 있는데요

사실 말이 많은 사람인데 비자발적 벙어리가 된다

이런 이야기는 좀 의미 없나 싶은 것만

너의 손을 잡을 땐 하고 싶은데 자주 골몰하다 멈춘다

당신은 주먹만 쥐고 사는 사람이니

나는 매일 가위만 내야겠다


꽝을 확인하는 것이 지겨워서

없는 신을 만들기로 했다

당신아, 그러니 숭고해요

우리는 서로를 어쩔 줄 몰라서

마음을 제물 삼아 잘 모르는 신에게 줘버려요

그러면 가끔 오는 우연을 은혜로 알아버릴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오지 않는 내일을 매일 사랑해서

오늘은 언제나 패배하나

결코 그런 것을 바란 적 없는데

자동으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버리니

희망이라고 불러버리기로 하면 되나


불현듯 다행이다

검은 머리털 난 짐승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어서

가끔 떠나고 싶은 발에 맞는 신발이 없고 하면 된다

쓰다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 흉지면 잘 낫지 않는 부분도 있다

눈을 감아도 눈은 보고 있단다

참 알 수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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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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