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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결말을 가정해 본다

by 송유성

어쩌면 시기가 적절하게 그 사람이 내 인생에 등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십 대는 구원해야 할 것들로 가득이었다. 수많은 구원 목록 중에 나는 없었다. 내 주변의 내 것이 아닌 대다수의 것들을 수렁 속에서 끊임없이 건져 올려야 했는데 그러면서도 나는 자꾸 땅속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애썼지만 결국 구원의 대상을 상실하고서 본 나의 두 발은 너덜너덜해져서 걸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알아차렸을 때는 치료하기도 많이 늦어있었다.


그렇게 수년을 앓아누웠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지만 나를 살리는 사랑이 많았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심으로 난 그들이 나를 살려내던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내 영혼은 수면제와 술의 혼합으로 집안에 널어 두고 나왔을 때 나를 쌀 공장을 개조한 커다란 카페에 데려가 주던 친구의 울먹이던 모습,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밤새 사 온 싸구려 소주를 다 마시고도 집에 있는 미니어처 안동소주까지 털어 먹어주던 K형, 나를 살리기 위해 경기도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살던 나를 대신해서 울음으로 시를 쓰고 내 앞에선 늘 웃었던 애인. 나는 정말이지 그들을 다 기억한다. 사람은 누군가가 목숨을 구해주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나는 살아남았다. 지금도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나는 생존자라고 말한다. 나는 살아남은 자에서 살아가는 자가 되었지만 거대하고 압도적으로 삶이 소멸하고 있던 그 시절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무겁게 담고서 살고 있다.


처음에는 생존이었고 다음은 일상 회복이었고 그리고 내 행복을,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났을 때는 다른 사람의 행복도 함께 찾고 싶었다. 조금 더 어릴 때 해냈어야 했던 발달 과정을 나는 다시 얻은 삶으로 뒤늦게 치러내고 있었는데 나의 행복을 넘어서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은 아마도 사랑이었지 않나 싶다. 연애 말고 사랑을.

아주 적절한 시기에 아주 적절한 상대였다. 본디 성장이란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서는 획득하기가 쉽지 않은 법.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모르는 그였지만 아주 착한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했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언제나 생각했지만 그 사람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는 항상 괜히 이죽거리는 말을 곧잘 하지만서도 악의는 없었고 그는 참 여리고 순수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도 삶의 깜냥이 있어서 여기가 누울 자린지 아닌지 정도는 잘 안다. 그 사람은 아주 납작 누워도 괜찮았다. 그래서 영영 그 사람과 함께 포근한 곳에서 누워서 나는 혼자 늘 조잘거리고 그 사람은 끄덕거리고 있는, 그런 생을 상상했었다.


주고받는 양의 정도를 재단하지 않고서 사랑했다. 언제나 그렇지는 못했지만 그러기 위해 그의 곁에서 아주 오랫동안 신음했던 것 같다. 내가 납작 누워서 그를 바라보면 그가 옆에서 가만히 먹을 가는 것처럼 호흡하며 지긋이 나를 보는, 그런 사랑을 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은 이름의 모든 받침에 ㄴ자가 들어갔는데 그와 헤어지고서 바닥에 엎드려 그의 이름을 천천히 불러본 적이 있다. 마음이 니은, 니은하다가 ㄴ처럼 압축되어 되어서 숨이 멎을 것 같아 그만두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어서 힘껏 내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 때때로 그의 몸에 열이 차거나 등산을 가면 그의 오른쪽 눈 밑에 일 센티미터 정도 가량의 얼룩이 붉게 올라왔는데 언제나 무표정한 그가 얼굴을 붉히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그것을 보는 것이 좋았다. 인생의 모든 기복은 제거하면서 살아온 그의 틈을 보는 것 같아서 오랫동안 그의 붉은 얼룩을 보았다. 내가 그의 삶에서 붉은 얼룩으로 남기를 바랐다. 흉이 아닌 그의 얼굴에 표정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나의 노력이 실패인지 성공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는 떠났고 이별은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을 부재중으로 남긴다. 모든 신약은 몇 개의 임상 실험의 과정이 필요하고 또 어떤 약은 중간에서 실패로 버려지기도 또 어떤 약은 삶을 구하는 획기적인 발견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첫 시험이라면 시험이었으니 결과는 살면서 도출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만나는 동안에도, 또 이별한 후에도 살면서 가장 아픈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다음에도 나를 내던지고 싶다. 오히려 그와 했던 사랑이 많이 아파서 좋았던 것 같다. 변태인가 생각도 많이 했는데 누군가의 행복을 빌고 그 사람의 사랑을 위해 나를 바치는 것은 결국 나를 구원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그가 떠나고 또 주변의 다정과 애정을 더 크게 느끼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하고.

그리고 삶은 결국 언제나 사랑과 따스한 사람들이 내어주는 쉼표로 이겨내는 것임을 생존자인 내가 알고 있으니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와도 나를 또 훌쩍 투망하듯 내던져야겠다. 그것은 어떤 사랑을 거쳐 기름진 미끼를 잔뜩 넣은 새로운 내가 던져진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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