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45 댓글 6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엉겁결에  면접을 보다.

몇 십년 만에 면접을 보고 깨달은 점.

by 정현미 Feb 23. 2023
아래로

 

 아파트 출입문을 들락날락하다 보면 한 번씩 게시판 옆에 꽂혀있는 창원시보를 들고 와 보게 된다.

종이 신문도 안 본 지 오래고, 몇 년 전 특례시로 승격되었다지만  시 사람들에겐 그저 대동소이한 지방도시일뿐인 창원의 소식을  그나마  유일하게 알려주는 소식지인 데다 가끔씩 깨알 같은 정보도 있어서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비록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얼마 전, 몇 십 년 만에 면접이란 걸 보게 된 것도 창원시보를 통해 알게 된 구인광고 덕분이었다.


신중년 사회공헌사업 진로강사 모집
☞ 모집기간: 2월 10일부터 마감 시까지
                        (진로교육 연수 후 초중고 강의)
     모집대상: 50~60세 강의 경력 있는 4대 보험
                        미가입자
 ☞ 문의: 경남행복한 교육사회적 협동조합


 이런 것도 있었나? 호기심에 전화를 했다. 자세한 내용은 설명하지 않고 이메일로 이력서부터 보내란다. 혹시나 싶어 급여를 물었더니 3~40만 원 정도이고 말 그대로 사회봉사직에 가깝다고 대답하는 상담자의 목소리가 처음과 달리 조금 잦아든 듯 느껴졌다.


 나는 남편의 도움으로 급조한 이력서를 문자로 받은 이메일 주소로 보냈다. 학원일을 오래 하다 보니 경력이란 게 딱히 없었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의 이력을 그저 두 세줄로 간단히 축약해서 적었는데 나중에 곱씹어 생각하니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다음날 문자로 면접일정을 통보해 왔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특별한 생각이 없었던 나는 안내된 면접 대상자 리스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내가 9번째라고 적혀있는 이 목록이 내일 오전 것이고 오후가 따로 또 있다니... 그렇다면 다음날도?

우선, 신청자가 이렇게 많은 것에 놀랐고 다양한 제출서류와 함께 강의까지 준비하라니... 내가 처음에 생각하던 것과는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결국 난 보기 좋게 탈락했다.

구인광고를 본 순간 호기심이 동했고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면접까지 보았지만, 난 그 직종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고 면접을 준비할 시간도,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업무 내용도 자세히 알지 못한 채 제목에 혹해 급하게 지원한 상황이라 괜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생각하고 시연할 강의도 휴대폰에 긁적인 몇 자를 보고 했을 뿐이며, 에서 제공한 질문지에 대답하는 식으로 진행된 자기소개주저리주저리 이웃에 마실이라도 나온 듯 너무 편하게 고 말았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앞사람이 노트북에 ppt 자료까지 만들어 강의한 후, 자신의 포부와 차후 포트폴리오까지 얘기하는 걸 지켜 보았을 때 이미 알아차렸는 지도 모른다. 아~ 이건 아니구나 하고...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혹시 붙으면 어쩌지? 잠시 택도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턱대고 면접부터 본 내가 참 대책 없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랜만에 새로운 경험이 재미있기도 했다.


 가볍게 생각하고 접근했지만 따지고 보면 학생들에게 진로에 대한 강의를 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과거에 수많은 학생을 상담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건 학생 개인의 성적에 대학을 끼워 맞추는 식의 요식 행위라 진정한 진로라 할 수 없었다. 하물며 불특정 다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로 강의를 한다? 틀림없이 개인의 뛰어난 역량과 경험을 요하는 일이리라.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나 역시 이 나이가 되도록 진로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데 감히 누구의 진로를 왈가왈부한단 말인가? 그리고 면접의 흐름상 향후 포트폴리오나 기타 여러 가지 사항 또한 내 몫이고 역량인 것 같았다. ppt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그렇다고  차를 운전하느냐는 질문에도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못한 내가 무슨 배짱으로 면접을 본 건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포장을 해도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봉사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역량을 끌어모아 소신 지원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만큼 중년의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방증인지, 돈은 차치하고 사회에 봉사하고 싶은 신 분들이 많은 건지...


 급여와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나 시에서 사업을 위탁받은 것 같은 업체가 지원자들의 꿈을 대상으로 너무 과한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건 아닌지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여하튼 이번 일에 대해선 우선  자신을 칭찬하기로 했다. 비록 성의는 없었지만 새로운 경험에 도전해 보았다는 사실무엇보다 그 일을 나보다 더 열렬히 원하는, 그 누군가의 한 자리를 뺏앗지 않고 지켜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더불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 자신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겠다는 깨달음도 얻을 걸 보면 결코 무용한 일은 아니었다고 스스로 평가해 본다.


난생 처음이다.

어딘가에 떨어지고도 이렇게 뿌듯해보기는... ㅎㅎ


이전 09화 오십대 실업자 부부의 취업도전기(2)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