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짧은 인간의 먹는 인생 이야기 ep.01
음식 에세이하면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성인 도서와 아동 도서 코너가 나뉘어 있었습니다. 성인 도서라고 해도 별건 아니고, 8~13살 어린이가 보기에 조금은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책들이었습니다. 당시 유행이었던 만화 '신의 물방울'이라든가, 기시 유스케 작가의 '검은 집' 같은 책들이 성인 도서로 분류되었습니다.
때문에 당연히 학생이었던 저는 성인 도서 대출이 불가했고, 도서관에 앉아 읽는 것만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매일 오후 5시에 사서 선생님께서 퇴근하실 때까지 도서관에 살던 제가 빠져있던 작가는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였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타워>, <장미 비파 레몬>과 같은 소설도 많이 읽었지만, 아직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완두콩밥'입니다.
당시 어렸던 저에게는 생소했던 '에세이집'에 담긴 에피소드였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작품의 제목도, 나머지 에피소드에 담긴 글들도 전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이 '완두콩밥' 에피소드 속의 하얀 쌀알 위의 초록 알알이 올라간 뜨거운 이미지만은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편식은 별로 하지 않는 편이지만, 유독 콩이 들어간 밥은 콩이 쌀의 맛을 해친다고 생각해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후 엄마에게 먼저 완두콩밥을 해달라고 할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에게 완두콩밥이 맛있어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저에게 완두콩밥, 하면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지곤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저는, 이렇게 책으로 인해 관심을 가지게 된 음식이 종종 있습니다.
ps. 이 '완두콩밥' 에피소드가 나왔던 에쿠니 가오리 작가의 에세이집은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입니다. 대략 10년이 지나서야 다시 찾으려니 쉽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