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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Sep 09. 2024

<소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2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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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이런 일 하게 됐어요? 그게 질문이야? 처음부터 기분 나빠지면 질문이 잘못된 거지. 아니면 내가 삐뚤어져서 그래? 기자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응? 그러면 물어볼게. 기자 오빠는 어쩌다가 이런 일 해? 이런데 까지 와서 이상한 오해나 받으면서 나 같은 사람 인터뷰나 하고 어쩌다가 그런 일 하는데?


  이유가 있을 것 같아? 그냥이야. 그냥 이렇게 됐어. 나는 오빠가 뭘 기대하고 왔는지 도통 모르겠네. 뭐 서럽게 울면서 어렸을 적에 학대받았고요. 아빠가 도박 빚 때문에 팔아넘겼어요. 인신매매 당해서 강제로 잡혀 있어요. 이런 소리라도 듣고 싶은 거야? 그런 거면 애초에 지금 나가는 게 나아요. 나는 그런 사연도 없고 눈물 나는 스토리 듣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붙잡고 들려 달라고 하세요. 뭐 주름 있는 사람들이 사연 하나 없겠어?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 정말 웃기다구. 이런 데서 일하면 아빠가 자식 팔아넘기고 사채 쓰다가 쫓겨 와서 강제로 착취당하고 그런 것만 생각하는데 정말 아니거든. 뭐 딱히 우리 부모님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여기서 일하는 게 전적으로 그 때문인 건 아니지. 풍족한 집안이었으면 이런 일 안 했겠지만 그게 어디 부모 탓만 할 수 없는 거잖아. 그냥 좀 더 놀고 싶고 사고 싶은 게 생기고 이러다 보니까 그랬던 거지. 용돈 받고 다니는 조신한 여자애가 못된 걸 부모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아. 이 일 해보니까 더 그래. 탓하고 싫어. 어디로 내몰리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는 뭐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이 일을 하게 된 거라는 거야. 설명이 제대로 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다는 거. 오케이?

     

  옛날에야 큰돈 미리 아가씨한테 가불 해 주고 그거 볼모로 이자 붙여서 도망 못 가게 하는 사람들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 요즘에는 별로 못 봐. 법적으로 그 돈 빌려서 써도 그거 자체가 불법이니까 떼 먹혀도 아무 말도 못 하거든. 업주들도 약아서 이제 그런 짓 안 해요. 그냥 장소 제공 하고 중간에서 나눠 가지는 거지.

  특히 요즘에는 오피나 안마방이나 이런 데로 많이 가니까 여기는 아가씨도 사실 귀한 편이거든. 몸 아파서 못 나간다면 옛날에는 때리기도 하고 그랬다던데 나는 그런 사람 못 봤어. 착하고 잘해줘. 포악하고 막 잡아먹을 듯이 시키면 장사 못하지. 아가씨 없이 여자 장사를 어떻게 하겠어. 그런 게 다 오해야. 출퇴근이나 쉬는 게 편하니까 나도 이 일 계속했던 거고.     


  나 이렇게 보여도 대학은 4년 제야. 수능도 웬만큼 점수 나왔다니까. 근데 요즘에는 사실 그게 대수도 아니지. 등록금 벌겠다고 여기 오는 애들도 심심찮게 있어. 머리 나빠서 이런 일 한다고 하면 여기 언니들 섭섭한 사람 많을 걸? 솔직히 기자오빠가 여기서 이런 조명 아래서 나를 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밖에 나가서 카페에서 스타벅스 커피 한잔 앞에 놓고 있으면 내가 이런 일 하는 사람인 줄 분간 못 할걸? 진짜야. 내가 장담하는데 오빠는 분간 못 해. 똑같아. 같이 몸 섞고 속살까지 다 본 사이라도 밝은 낮에 얼굴 마주하면 못 알아봐. 내가 밖에 나가서 이 인간이 어제 온 그 놈인지 아닌지 분간 못 하는 것처럼 이 여자가 어제 그 여자였는지 알 게 뭐야.     


  대학은 갔는데 공부에 큰 취미는 없고 그냥 어영부영하면서 어쩌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 휴학해 놓은 상태로 등록금 웬만큼 벌리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고 했거든. 그랬는데 그런 것도 잘 모르겠어. 이런 말은 좀 그런데 그냥 이 일이 나랑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뭐 다른 일 찾을 수도 있겠지. 이 일이 뭐 천년만년 가능한 일도 아니고 나라고 뭐 꿈이 없겠어?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그러고 살면 좋겠다. 하는 게 막연하게는 있지. 뭐니 뭐니 해도 문제는 돈인데 그나마 지금 관심 갖는 일 하면서도 이 일 하기가 그런대로 괜찮으니까 하는 거야.


  근데 아까부터 은근히 쉽게 돈 번다는 식으로 물어보는 것 같은데 오빠는 여기 일이 쉬워 보여? 그러니까 기자 오빠같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딱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걸 대놓고 설명할 수도 없고 미칠 노릇이지. 첨에는 진짜 답답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해. 그래 넌 멋대로 그렇게 생각해라. 내가 뭐 어떻게 바꾸겠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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