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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인터뷰 | 즐거움만을 위해서 살아도 괜찮아요

디즈니, 고흐, 보라, 고래. 좋아하는 것들을 향한 즐거운 질주

16번째 물건 인터뷰이, 보라도리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나를 구성하는 키워드 : 예술, 즐거움, 상상력 그리고 자유✨


Part 1. 강아지 아르

- 절대 버릴 수 없는 물건: ‘네가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조차 떠오르지 않아, 우리 아르

8년 전 손바닥보다 작았던 아르를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매일매일 나를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내 인생 최고의 존재.


— 물건은 아니지만 귀엽고 소중한 생명체 아르. 강아지 아르와의 첫 만남이 궁금해요.


저는 외동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을 많이 탔어요. 진짜 진짜. 

초등학교 때부터 입버릇처럼 강아지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시잖아요. 

모든 부모님이 그러하듯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데려온다고 해서 제가 케어할 수도 있는 나이도 아니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성인이 되었고, 2015년에 대학교 휴학을 했거든요.

이제 진짜 내가 케어도 할 수 있고 돈도 모았다고 진지하게 부모님께 말씀드리니까 허락해주셔서 

많은 분들께 수소문을 한 끝에 아르를 발견하게 되었죠.


처음 데리고 오던 순간이 기억나는데 차에서 상자를 열면 강아지가 멀미할 수 있대요 너무 애기라서. 집 가는 내내 너무 보고 싶은데 멀미할까 봐, 열어보지도 못하고 집 가는 15분이 진짜 너무 고역이었어요. 도착해서 주차하자마자 바로 애기를 껴안고 싱글벙글해서 올라갔던 기억이 나요. 강아지 집에 살포시 내려놓는데 진짜 작았어요. 그 조그마한 아이가 제 허벅지에 올라오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계속 함께 했어요.


저희도 궁금했었거든요. 아르가 첫 동생일까?

저는 예전부터 남자형제 있을 거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살았어요.



— 아르의 이름은 어쩌다 아르가 되었나요?

제 첫 동생이니까 이름을 근사하게 괜히 라틴어로 짓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네이버에 '라틴어 예쁜 단어 모음집'을 검색해봤는데 

제가 ‘예술’ 이랑 ‘열정’, 이 두 단어를 되게 좋아하는데 마침 내리다 보니

예술이 라틴어로 '아르스', 열정이 '아르도르' 인 거예요. 아르가 겹치잖아요. 


그래서 이 친구 목걸이의 풀 네임은 아르스 아르도르거든요. 아르스 아르도르 1세인데,

영원히 2세는 있을 수 없지만. (웃음) 그렇게 줄여서 아르가 되었어요.


— 1세로 마무리되는 아르스 아르도르 가문의 선조이자 후예네요.

근데 아르라고 했을 때 친구들이 다 강아지 짖는 소리인 '아르르르' 인줄 알죠?


맞아요. 그래서 이렇게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에서는 이름의 유래를 얘기해주고 

아닐 때는 '응, 아르르르 해서 아르야 그거 맞아' 하고 웃으면서 넘길 때도 있어요.





— 아르는 성격이 어때요?

얘는 진짜 순해요. 엄청 순하고 너무 쫄보!

제가 프리랜서잖아요. 특히 코로나 때는 재택을 많이 했는데 테이블에서 일을 할 때 

가만히 앉아서 낑낑대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고, 놀고 싶다고 그 슬픈 눈으로 쳐다봐요.

이 아이의 모든 개춘기를 지켜봐왔지만 한 번도 쇼파를 물어뜯거나 쓰레기통을 뒤지지도 않았어요.


아르는 제 인생 마지막 강아지거든요. 

다신 못 키울 것 같은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착한 애를 또 못 만날 것 같아서예요. 

진짜 순해요, 완전 쫄보. 너무 착하고 푸들이라 또 똑똑해요.





— 너무 순해 보여요. 아르를 만나서 내가 가장 변했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다면요?


정말 많은데, 굳이 꼽아보자면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제대로 안 것 같은 느낌?

처음에 아르를 데려왔을 때 제가 21살이었으니까 되게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이런저런 상처가 많았던 때였는데 그때 아르가 진짜 요만했거든요. 

그런 애를 배 위에 올려두고 얘기를 하면서 이 아이의 눈빛을 보면요. 정말 가족에게도, 연인에게도 못 받을 그 나만을 믿고 사랑한다는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사랑이 뭔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제가 힘든 시기에 아르한테 고민 상담도 하고(일방이지만) 속마음도 털어놓으면서 위로도 많이 받았습니다.


 아르가 보라도리님한테 주는 가장 큰 영향력은 무엇일까요?

음.. 제가 항상 불안했었거든요. 근데 저는 '불안정하다'를 나쁜 단어로 생각한 적이 없어요. 모험하는 삶을 좋아해서 안정적인 삶보다는 불안정한 삶을 즐기는 편이거든요. 그럼에도 가끔은 '내가 돌아갈 곳이 있나, 나를 온전히 받아줄 곳이 있나'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아르를 보면, 아시잖아요. 이 아이의 우주는 나고 얘가 제일 사랑하는 것도 나고, 그런 걸 보면서 아르 덕분에 잔잔하고 안정된 삶의 감각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어요. 아르는 한평생 제가 바랐던 형제이기도 하니까요.



— 너무 애틋한 남매예요. 이번엔 내 반려견의 자랑할 만한 특기가 있다면요?


진짜 많은데! 근데 믿거나 말거나예요. 아시죠? 내 새끼는 고슴도치인 거. 

제가 보통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나가려고 하는데 

가끔 비 오거나 바쁘거나 이러면 한 번 밖에 못 갈 때도 있거든요. 

저녁 산책을 못 가고 바로 자게 되면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누나랑 산책 가자.' 

말해주는데 다음날 아침에 계단에서 내려오자마자 산책 리드 줄 앞에 가서 저를 쳐다봐요.

진짜 천재 같아요, 그걸 어떻게 기억할까.


— 너무 귀여워요, 푸들이 진짜 똑똑하다고 하더라구요. 혹시 아르와 관련된 고민거리도 있나요?


있죠. 아르가 8살이라서 최근에 예방접종하러 갔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강아지가 8살이면 이제 노령견 초기에 접어드는 거예요' 하시는데 그 말이 왜 이렇게 속상한지 몰라요, 

노견이라는 말이.



저도 크게 체감하진 않지만 조금씩 느껴지는 게, 옛날과 똑같이 놀아도 조금 더 헥헥거리긴 하거든요. 

사실 마지막 강아지라고 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8년 전에 이 아이를 데려왔을 때는 상상도 못 할 만큼의 마음이 가더라고요.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하더라도 진짜 가족을 들이는 건데 이만큼일 줄 상상도 못 했더라고요 제가. 생각해 보니까 이 친구가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저보다 먼저 떠날 텐데 그게 참 (상상이 안 가죠.)


상상은 가요, 제가 삶에서 좀 죽음이 많았었어서 상상은 가는데 그게 이 친구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니까 '이제 다시는 데려올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아르에게만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에요.   


— 내 에너지의 원동력은 아르인가요?


아르도 일정 부분 기여하죠. 우리 아르가 또 INFJ에요.

ENFP와 최고의 궁합이 INFJ거든요. (웃음)


평소에 텐션이 되게 잔잔하고 얌전하다가 제가 같이 놀자고 하면 엄청 신나서 같이 업되거든요. 

그럼 더 힘이 나는 것 같고, 그냥 너무 귀여워요. 


8년을 매일 봐도 매일 귀여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에요.



매일이 새롭게 귀여우니까. 그럼 제주도에서 한달살기 하면서 아르랑 시간을 보내신 거예요?


어렸을 때 제주도에서 5년을 살았었거든요. 

그 후로는 제주도에 짧게 짧게 놀러만 가니까 한달살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제가 이때 출판을 앞두고 있어서 글을 좀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이래저래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아르는 비행기에서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데려갈 생각도 못했었거든요. 근데 찾아보니까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있는 괜찮은 방법들이 있더라구요.


얘랑 저랑 여행이 진짜 잘 맞거든요. 둘 다 걷는 걸 참 좋아해요.

인적 드문 동네에서 둘이 한 달 머물면서 저는 글을 쓰고, 아르는 마당 가서 놀다가 올라오고 그랬었어요.



— 그래서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구나. 아르도 제주도 꿈을 꿀 거 같아요.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집에 머물러야 되는 시간이 혼자 살 때보다는 압도적으로 많잖아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조율하는 편이에요?


올 연말에 미국여행을 떠나는데, 원래는 이럴 때 아무 생각 없이 편도만 끊고 가거든요. 

근데 이제는 이 기간 동안 아르를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또 맡긴다고 해도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얘가 완전 누나바라기라서.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건, 벅차게 행복한 만큼 책임져야할 것도 정말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스스로 선택한 만큼 최선을 다해서 이 작은 꼬마를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어요.





Part 2. 카메라

- 내 인생을 바꾼 물건: 당근에서 찾은 보물, 보라색 디지털카메라

사진덕후의 카메라 진열장에 있는 DSLR, 미러리스, 캠코더 등을 다 제치고
내 여행길에 늘 동반하는 작고 소중한 여행메이트.


— 다른 카메라를 제치고 단연 이 카메라를 여행길에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한달살이 앨범도 다 이 카메라로 찍은 거예요. 

강아지랑 단둘이 여행을 가니까 추억을 쌓고 싶었거든요. 

근데 또 제가 사진덕후잖아요. 그러니까 얼마나 카메라를 신중하게 골랐겠어요. 

이때는 집중하고 싶어서 가는 거라 가끔씩은 핸드폰을 아예 안 들고 나갈 계획이었거든요.


집에 있는 카메라를 쭉 살펴보며 고민하던 시기에, 제가 당근마켓에 보라색을 키워드 설정 해놨거든요.

마침 '보라색 디지털 카메라'가 올라왔는데 패키지까지 다 해서 얼마에 올려놓으셨게요?


1만원.

 


— 만 원에 올렸다고요?

판매자 정보를 눌러봤더니 당근에 처음 올리는 상품이었던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분인 거죠.

저도 믿기지 않아서 계속 질문을 했어요. '작동이 잘 되는지, 배터리는 괜찮은지, 최근에 찍어보셨는지'

문제가 없어 보여서 그날 바로 달려갔는데 스무 살 남짓한 남자 학생이 깜찍한 쇼핑백에 카메라를 담아오셨더라구요. "이 좋은 걸 어떻게 이렇게 싸게 파시냐" 물으니 "그냥이요" 하셨어요. (웃음) 


집에서 테스트를 해보는데 너무 잘 나오는 거예요. 덕분에 제주도에서 핸드폰 안 들고 나갈 때는 

이거 하나만 딸랑딸랑 들고 다녔어요. 충전도 되게 간단했고,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가고 그리고 무엇보다 보라색이잖아요. 일단 기분이 좋거든요! 그래서 여행메이트로 고르게 됐던 것 같습니다.







— 보라색에 누구보다 진심인 보라도리님. 진보라와 연보라 사이엔 그라데이션이 있잖아요 

어떤 보라색을 가장 애정하나요?


제가 정말 많이 듣는 질문인데요

제 인스타 아이디가 @vi0let_purp1e인데 한국말로는 모두 '보라색'이지만 영어로는 푸른 톤에 가까운 보라가 violet이고, 빨강에 가까운 게 purple이에요. 저는 그냥 말 그대로 이 스펙트럼에 있는 모든 색을 좋아하거든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달라요, 계절에 따라서도요. 요즘은 가을이라서 또 '진보라'로 돌아가고 있어요.



팔레트 안에 색채의 스펙트럼이 있잖아요. 매번 달라지는 기호에 따라 점을 찍어둬도 좋을 거 같아요. 

매 순간마다 내가 좋아했던 색을 이어서 별자리처럼 보라도리 자리를 만드는 거죠.

너무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바로 적어뒀어요.


— 순간을 기록하는 것에 열정이 가득해보이는데, '나 이것만큼은 기록해두길 잘했다' 하는 기록이 있다면요?

아무래도 여행 사진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트위터 캡처를 봤었거든요.

“얘들아 너네 젊었을 때 여행 많이 다녀라. 나 아직도 5년 전에 다녀온 프랑스 여행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런 글을 보면 그때는 그냥 웃고 말았는데, 제가 캐나다도 미국도 참 여행을 많이 다녔었거든요. 

그때 집에서 룸메이트랑 요리하는 모습도 찍고, 집 구석구석도 찍고. 

사소한 일상을 많이 찍어놨는데 다시 보면 남겨놓길 참 잘했다 싶어요. 


— 카메라는 핸드폰으로 찍는 것보다 두 배 정도 품이 들잖아요. 

그럼에도 카메라를 썼을 때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은 마음가짐부터 달라요. 핸드폰은 '항상 주머니에 있으니 꺼내서 찍어야지' 이런 느낌인데, 

카메라는 목에 걸고 나가는 순간부터 출사를 나간다는 기분이 들어서. 


캐나다에서도 사진 찍으려고 카메라를 자주 들고 다녔는데, 

이걸 메고 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저를 유쾌한 사람으로 바라봐주더라구요.

핸드폰으로 찍을 때보다 '사진을 찍고 있다'는 생각을 나 스스로도 하고,

주변 사람들도 느끼게끔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캠코더 같은 경우도 외국은 홈비디오 진짜 많이 찍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어렸을 때 찍지는 못했지만, 지금부터라도 많이 찍자 싶어서 친구 결혼식이나 집들이에 갈 때 

항상 캠코더를 들고 가거든요. 웬만하면 편집을 해서 선물로 주는데 여의치 않을 때는 

그냥 원본이라도 건네주곤 해요.


핸드폰으로 찍을 때보다 훨씬 더 본연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제 마음가짐이 가장 다르죠.


— 사진만큼이나 영상에도 진심이시군요.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보라헤르츠 ʙᴏʀᴀ.ʜᴢ) 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상이 뭔가요?


제가 작년에 10년 지기 친구랑 세부에 다녀왔는데, 두 편으로 나눠서 브이로그를 올렸어요. 

그게 제일 좋습니다. 고래상어를 만나러 세부에 간 거였거든요. 제가 고래를 정말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 고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미취학 아동 때 <어린이용 동물 대백과사전>을 봤었는데, 넘기다 보면 해양동물 파트가 나와요. 

그런데 고래 페이지를 펼치면 시커먼 파도 위에 혹등고래가 배치기로 점프하고 있는 사진이 나오는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백과사전을 읽고는 싶은데 너무 무서우니까 제가 그 두 페이지를 테이프로 붙여놓을 정도였거든요. (웃음) 


그게 고래에 대한 첫인상이었는데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서 "유니콘이나 용 같은 건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지금 이 세상에 현존하는 가장 큰 동물은 바닷속 고래야. 이 고래는 코끼리보다 몇 배는 더 크고…" 이렇게 이야기해주시는 거예요. 그 순간 유니콘도, 용도 다 부정하는 선생님이 유일하게 긍정하는 저 거대한 고래를 내 눈으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기가 가늠이 안 되잖아요. 그때부터 공포심이 동경으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제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빅토리아로 배를 타고 가다가 고래를 봤거든요. 혹등고래가 꼬리를 슬쩍 보여줬는데 꼬리가 진짜 컸어요. 너무 경이로운 순간이었고, 이 지구상에 고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니콘이나 용이 존재한다는 반증이 되는 것 같은 느낌?


— 나 자체를 보라라고 표현할 정도로 보라색이 끌리는 이유가 궁금해요.

이것도 너무 하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색깔에 대한 정의를 보게 됐어요.

빨간색은 '정열적이다', 노란색은 '귀엽다', 그런데 보라색은 '신비하다' 였어요. 

그때 제가 관종이어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뭔가 보라색이 특별해 보여서 좋아하게 되었고,


빨강과 파랑을 섞어서 보라색이 되는 거잖아요. 

극과 극의 색이 섞여서 만들어진 컬러이기 때문에 자유롭다는 생각을 했어요. 

빨간색 비율이 조금만 더 늘어나면 purple, 파란색이 조금만 늘어나면 violet이라 불리는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색채랄까요?


지금은 그 애정 자체가 저의 아이덴티티가 되어서 너무 좋아요. 

제가 활동명을 보라라고 하니까 더욱 사람들이 보라색 하면 저를 떠올려줘서 더 정이 가는 것 같아요.


— 보라색은 일상 속에서 자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특별한 느낌이 드는 거 같아요.




Part 3. 고흐의 그림


- 나의 재미있고 특별한 물건: 나의 어제, 오늘, 내일이 모두 담겨 있는, 직접 그린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

론강을 바라보며 이 찬란한 그림을 그려낸 고흐처럼,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림을 그렸던 추억 덕분에 마음이 아플 때마다 이 그림을 보며 빛을 찾아요.





— '마음이 아플 때마다 이 그림을 보면서 빛을 찾는다'고 했는데, 평소에 나를 마음 아프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삶이 저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줘서 이제 웬만한 걸로는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것 같아요. 

아픈 건 보통 떠나간 이가 보고 싶을 때죠. 옛날에는 슬플 때만 마음이 무너졌는데 

요즘에는 너무 기쁠 때도 힘들더라구요. 


제가 하는 일이 공연 예술이라서 박수를 받는 일이 많거든요. 

공연 끝내면 으레 다 박수를 쳐주잖아요. 그럴 때마다, 박수를 받을 때마다 그렇게 마음이 아파요. 

슬플 때도 힘든데 기쁠 때도 힘드니까. 그럴 때마다 집에 와서

제 방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있는 이 그림을 보면서 위로를 얻어요.



— 기쁨도 슬픔도 나누던 사이니까요.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를 치유하는 또 다른 방법이 있나요?


저는 죽음을 진짜 많이 생각해요. 물론 겪지 않고 깨닫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겪어버렸고 깨달아버려서 '항상 모든 게 끝이 있다'고 생각을 하니까

"내가 지금 살아가는 오늘은 어제 세상을 떠난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예전엔 뻔해 보이던 이런 말들도 이젠 너무 와닿아요. 


그래서 저는 삶이 목적이 첫째도 둘째도 즐거움이거든요. 진짜로 즐거움만을 위해 살아도 된다. 

언제 어떻게 어떤 일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데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나고,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서 원래도 표현을 진짜 많이 하는데 이제는 좋아하는 사람한테 한 번 말할 걸 두 번 말하고, 맛있는 음식 한 번 먹을 때 두 번 먹고. 근데 부작용이 하나 있어요.


제가 이제 저축을 안 해요. (웃음) 돈 아껴 뭐 하냐 다 쓰자!

그때그때 도전하고 싶은 거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 그 태도가 돈을 불러올 때도 있어요. 이렇게 살다 보면 나의 스토리가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원하는 자리에 가 있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르와의 여행도 미루지 않고 다녀왔고

개인 전시도 계획했던 일이긴 하지만, 제대로 하려고 더 의지를 불태웠고,

제 인생에서 굵직한 일들이 지난 2~3년 안에 좀 많이 일어났거든요. 


올 연말에도 미국 한달살이를 다녀올 건데

제가 디즈니를 워낙 좋아해서 디즈니 월드에서 30박 31일를 하는 게 제 오랜 꿈이었어요. 

진짜 고등학교 때부터 꿈꿨던 건데.  


시간이 있고 돈이 있어야만 더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건 맞다만 

올해가 디즈니 100주년인데 제가 200주년까지 살아있진 않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번에 가자! 하고 우다다 가는 거예요. 이젠 정말 미루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 고흐라는 화가를 좋아하나요?

인생에서 한 권의 책을 꼽자면 저는 이 책이거든요.   


고흐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에요. 고흐가 한평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엮어서 고흐 시점, 테오 시점에서 쓴 책인데 이 책을 보면서 제 인생이 많이 잡힌 것 같아요.


고흐라 하면 '자기 귀를 자른 미치광이 천재 화가, 살아생전 한 점의 작품도 팔지 못한 비운의 화가' 이런 수식어가 있잖아요. 고등학교 때는 그 수식어에 확 매료돼서 시선이 갔어요. 그러다 조별과제로 고흐를 조사하게 되었는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제가 알고 있던 정보랑 많이 다른 거예요. 살아생전 한 점의 작품도 팔지 못한 게 아니라, 작품을 몇 점은 팔았었고 자기 귀를 자른 미치광이 화가가 왜 자기 귀를 자르게 됐는지도 알았고,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타살 의혹도 있다는 이야기도 알게 되었어요. 


고흐가 살아생전 몇 점의 작품을 팔았다 한들 계속 궁핍했고 자기 손으로 물감조차 사지 못해서 남동생에게 매달 돈을 달라고 할 만큼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었잖아요. 어렴풋이 생각할 때 진짜 자존감도 낮고 삶이 고통이었을 것 같았는데 이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서, 그냥 론 강과 밤하늘만 보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삶이 고통이었을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이 책에 고흐가 테오한테 쓴 편지 한 구절이 나오는데 '테오야 나는 언젠가 사람들이 내 그림을 알아줄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이 순간이 괴롭지 않다. 왜냐면 내 그림은 언젠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될 걸 알아서, 사람들이 언젠가 나를 사랑해 줄 걸 확신해서 나는 괜찮다' 라고 진심으로 적은 걸 보고 어떻게 상황이 힘들고 어려운데도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을까 하면서 마음이 가기 시작했어요. 제가 뭔가에 꽂히면 깊게 파는 스타일이라서 고흐의 모든 걸 다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제가 예술 사조에 능한 줄 아는데 다른 건 아무것도 몰라요. 고흐 하나밖에 몰라요.


— 고흐라는 사람 자체를 진심으로 애정하는군요.

뉴욕에 갔을 때 현대미술관 오픈만 기다리고 있다가 오픈하자마자 바로 3층으로 올라가서 '별이 빛나는 밤' 앞에 계속 서 있었거든요. 한 2시간은 있었어요. 생각도 많이 하고, 감정에 젖기도 하고.


물론 단둘이 있을 수 있었던 시간은 한 5분 남짓이었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한 5분 정도는 둘이 있었다는 거.



고흐의 그림에서 어떤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드나요?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빛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저 사람의 삶이 그렇게 비극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진짜 내 삶이 너무 괴롭고 힘들면 같은 밤 풍경을 봐도 충분히 어둡게 그릴 수 있는데 

이렇게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건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든가, 내가 꿈꾸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웠든가


— 고흐의 그림 속에 나의 어제와 오늘, 내일이 모두 담겨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모든 시간의 시제가 담겨 있다고 표현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이 질문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이 그림을 그리던 순간이 정말 생생하게 기억나기에 저의 어제가 담겨 있고 

'오늘'은 제가 이걸 정말 매일매일 보고 있어서, 오늘 매 순간 함께하는 것 같고.

 

'미래'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고흐가 그림을 그리면서 반짝이는 미래를 꿈꿨다고 했잖아요. 저도 이 그림을 바라보다 보면 마냥 잘 될 것만 같아요, 나의 내일이.



— 마지막으로 고흐의 일대기 중에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고흐가 한평생 마이너한 사랑을 해 왔어요. 항상 환호받지 못하는 사랑들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사랑에서 상처를 받을 때마다 테오는 항상 걱정을 하죠. '당분간 형 마음 아프게 하는 사랑을 접고 형 그림에 집중을 하는 건 어떨까' 이렇게 적었더니, 고흐가 답신을 보내요. '테오야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고 살고 싶지도 않아.' 


그걸 보면서 비단 사랑이 아니더라도 '100번 레주메를 냈는데 다 탈락이더라도, 꿈에 상처를 입더라도

나는 꿈이 없이는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되고 살고 싶지도 않다.' 이런 마음으로 치환될 수도 있고

모든 것에 다 적용이 되는 내용이라 내가 어떤 방해물이나 장애물이 있더라도 이 문장 덕분에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당시의 일화를 좋아해요.


— 물어보길 잘했네요. 고흐는 참 고독하면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사람이었군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인터뷰를 읽은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하나요?


음, 저를 즐거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제 삶의 목적이 즐거움이기도 하니까. 되게 즐겁고 하루하루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보라색깔 사람. 디즈니, 고래, 보라색, 고흐. '디고보고'


— 10년 후에도 이 디고보고 사랑은 변함없을까요?

그럼요. 그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디고보고. 저를 구성하는 건 예술, 즐거움, 상상력, 자유.

이 8가지는 절대 변치 않을 것 같아요.


— 이것으로 이야기 말미잘 물건들 '마지막'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어머, 제가 마지막인가요? 

  

— 네, 마지막은 처음만큼이나 특별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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