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채소가 크게 들어가는 김밥보다는 채소의 맛이 느껴지지 않게 밥 속에 자잘하게 채소가 들어가 있는 유부초밥을 나는 더 좋아했다.
어릴 적 엄마가 유부초밥을 만들 때, 나는 늘 그 옆에서 엄마를 도왔다. 아니, 도움이 되고 싶었다.
유부에 밥을 조물조물 매만져 쏙쏙 밥을 집어넣는 엄마의 모습이 재밌어 보였다.
그래서 엄마 옆에 앉아 엄마와 똑같이 비닐장갑을 끼고 밥을 조물조물 만져 뭉친 다음 유부에 집어넣으려고 하자, 다시 밥이 튀어나왔다. 흐물거리는 유부 안에 밥을 집어넣는 것은 보기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손이 야무지지 못한 편이었기에 더욱 어려웠다. 엄마가 5개 만드는 동안 나는 겨우 하나를 다 완성할까 말까였다.
내가 서 너개 만드는 사이, 엄마는 이미 유부초밥을 모두 완성했고, 내가 만든 어설픈 유부초밥의 뒷수습마저도 엄마가 마저 하셨다.
그래서 유부초밥은 내게 만들어 보고 싶지만 만들어 보지 못한 동경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드디어 유부초밥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만들어 보려 한다.
이번 유부초밥 레시피는 따로 검색해 보지 않고, 내가 생각한 대로 만들어보았다.
재료는 전날 미리 손질하는 편이 좋다! (이것은 꿀팁이다.)
유부초밥이 재료에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 처음 알았다.나는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은 생략한 채 늘 엄마가 유부에 양념된 밥을 집어넣는 마지막 단계만 도와왔기 때문이다.
내 유부초밥 밥에 들어갈 재료는 '브로콜리, 버섯, 오이'이다.
위 사진에서 조금 특이한 것이 있다면, 마트에서 버섯은 한입크기로 잘려있는 소량의 볶음용 버섯을 구매했다. 간편하고 좋았다. 너무 버섯 양이 많으면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것이고, 다양한 종류의 버섯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버섯과 브로콜리는 뜨거운 물에 데쳐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갖고 있기에 뒤로 미뤄두고 오이부터 반만 잘라서 잘게 다져주었다. 칼만으로 채소를 잘게 다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너무 오래 걸려 나중에는 이성을 잃고 칼로 그냥 마구 오이를 내려쳤다....
이 오이에 비하인드 썰이 하나 있다.
사실 이 오이는 '백오이'이다. 백오이는 흔히 말해 오이지(장아찌)용 오이이다.
내가 요리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오이는 완전 초록색으로 덮여있는 청오이를 샀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요리 초보였던 터라 청오이와 백오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덜컥 아무 오이나 사버렸다.
살 때 뻔히 백오이라고 적혀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사실 맛에는 크게 차이가 없어서 백오이로도 요리를 잘해먹었다.
이쯤에서 보는
<유부초밥 레시피-by 주나라>
1. 유부초밥 키트와 유부초밥에 넣을 재료를 준비한다.(나는 재료로 오이, 브로콜리, 버섯을 준비했다)
2. 재료 손질은 전날 미리 해두는 것이 좋다.(피크닉 당일날 체력을 위하여)
2-1. 오이를 세척한 후 잘게 다진다.
2-2. 브로콜리를 소금물에 10분 정도 담가두며 세척한 후 잘라준다.-> 대 부분과, 나무모양 부분을 결대로 잘라준다.-> 브로콜리를 끓는 물에 데친다. 브로콜리는 오래 데칠 필요가 없다.->대 부분을 먼저 넣고 30초, 나머지 부분도 마저 다 넣고 50초 정도 추가로 데친 후 찬물로 샤워를 시킨다.->오이와 마찬가지로 나무 부분을 잘게 다진다.
2-3. 버섯도 세척한 후 끓는 물에 2분 이내로 데친 후 찬물로 샤워를 시킨다.-> 마찬가지로 잘게 다져준다.
((재료들은 손질 후, 냉장보관 한다))
3. 피크닉 당일 날 아침에 갓 지은 밥에 유부초밥 키트에 들어있는 양념장과 어제 잘 다져놓은 채소들을 밥에 넣고 같이 버무려준다.
4. 유부 껍데기에 있는 물기를 반만 짜주고, 밥을 적정량 유부 안에 잘 집어넣어 준다.(물기를 반만 짜는 이유는 촉촉함을 위해서 이다.)
끝
처음에 나는 브로콜리를 보고 막막했다.
커다란 하나의 나무처럼 생긴 브로콜리를 어떻게 내가 아는 그 한입 크기로 자를 수 있을까?
내가 아는 그 모양을 생각하며 열심히 가지치기하듯 잘라가다 보니 제법 형태가 잡히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버섯까지 데친 후 다졌다. 마지막 버섯을 다질 땐 이제 더 이상 무언가를 다질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칼을 잡고 있는 그 손도 어깨도 너무 아팠다. 그래서 버섯 크기가 다른 채소에 비해 조금 크다.
이렇게 모든 재료를 다진 후, 락앤락 통에 넣어 냉장고에 두었다.
유부초밥에 들어갈 채소 재료 손질에만 초보자인 나는 꼬박 한 시간 반이 걸렸다.잠들기 전 갑자기 요리가 너무 하고 싶어 해 둔 거였는데... 시간도 세이브되고, 참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아침에 이 모든 과정을 다 했다면 피크닉 가기도 전에 나는 아마 쓰러졌을 것이다.
갓 만든 유부초밥을 들고 피크닉을 가보자!!
엄마는 내가 마트 장을 볼 때 이 유부초밥 키트를 사라고 미리 추천해 주셨다.
엄마는 유부는 따로 사고 밥에 들어갈 양념장을 여태 직접 만드셨다고 한다. (갑자기 엄마가 경이롭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이 유부초밥 키트에는 밥에 들어가야 할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갓 지은 밥만 있으면 이 유부초밥 키트로 아주 간편하게 뚝딱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밥에 들어가는 채소가 부족하기에, 나는 채소 재료를 어제 미리 손질해 두고 더 추가한 것이다. (급할 때는 따로 재료 손질 없이 키트만으로도 간단하게 유부초밥을 만들 수 있다!)
당일날 아침은 딱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바로 유부초밥이 완성된다.밥은 커다란 볼에 담아 채소가 버무려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유부초밥 키트 안에 들어있는 것들과 채소를 모두 넣고 골고루 섞어주었다.
아무래도 내가 손질한 채소가 추가적으로 더 들어가니 밥의 색깔이 훨씬 풍성해져서 알록달록 예뻤다.
맛만 좋으면 된다고 하지만, 음식의 비주얼도 꽤 중요하다는 것을 요즘 느낀다.
유부초밥에 밥을 집어넣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처럼 하나 만드는데 한참 걸리는 거 아닐까?
내가 밥을 집어넣으면 유부가 다 찢어지는 거 아닐까?
유부초밥 모양을 잘 못 잡는 거 아닐까?
그런데, 확실히 난 그때의 나와는 다르다.
이런 걱정과 우려는 유부초밥을 하나 완성하는 순간 깡그리 없어졌다.
나름 꼼꼼하게, 그리고 예쁘게 유부초밥이 완성되었다.
내가 산 유부초밥 키트는 3-4인분이라고 적혀있지만 사실상 성인 기준 2인분이다.
총 28개의 유부가 들었고 2명에서 먹으면 한 번에 다 없어질 양이었다.
그런데, 우선 내가 한 밥 양이 조금 작았다. 그래서 총 28개 중 22개가 완성되었고 그중에서도 하나는 터져서 만들다가 내가 하나 맛보았다. 양이 조금 적을 것이 우려된다. 내가 오늘 함께 피크닉에 갈 나의 단짝은 좀
많~이 먹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성된 유부초밥을 갖고서 나는 피크닉을 하러 갔다.
비 오는 날, 잔디밭 피크닉 낭만 한 스푼
비 예보가 계속되고 있는 7월의 어느 날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밤새 비가 오고 낮에는 비가 잠시 그친다기에 유부초밥을 갖고서 피크닉을 갔다. 평일 낮, 아무도 없는 잔디밭에 앉아 내 유부초밥을 나의 단짝에게 선보였다.
그런데, 역시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단짝도 나도 점심으로 먹으려고 준비한 건데, 배가 완전히 다 차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카페에 가서 스콘을 후식으로 먹으며 2차전을 펼쳤다.
유부초밥 맛과 비주얼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앞으로는 양조절을 잘하자!
요즘 나는 꽤 완성도 높게 요리들을 해내고 있다.
신기하다. 말도 안 된다.
나는 흉내 정도만 낼 줄 알았다.
나조차도 나 자신에게 확신을 갖지 못했다.
여태껏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라왔던 내가 내 손으로 이렇게 해낼 수 있는 게 많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