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200
노트북을 끄고, 거실 불을 끄고 어둠이 쫓아올까 날쌔게 달려 푹신한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아이의 작은 손을 꼭 잡았다.
천정을 향해 멀뚱멀뚱 눈을 껌뻑였다.
진짜일까?
먼지 인형같이 들어와서 끈적하고 물렁한 모습으로 빠져나간 어둠 말이야.
지금은 아니야.
여기는 우리 집이고, 나는 안전해.
그건 잘 알아.
이제는 나를 괴롭힐 사람도 없고, 속상할 일도 없어.
그런데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잖아.
있었어.
그런데.
너무 속상해.
그래, 많이 속상했지.
지금도 눈물이 나. 울어도 울어도 끝이 없을거야.
실컷 울어.
근데, 울어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아.
나는 왜 거기 있었을까?
선택이었잖아.
모든 것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울어도 돼.
눈물에 녹여서 흘려버릴 수 있다면 울자.
그 때도 울었어. 참아보려고 해도 결국엔 내가 우는 걸로 끝이 났잖아.
그럼 그들은 경멸하듯이 나를 봤어.
우는 나를 보면서 이겼다고 생각했을 거야.
내가 울어야 잠을 자러 갔어.
그 뱀같은 눈은 떠올리고 싶지 않아.
다시 만난다면 약한 모습으로 울고만 있지 않을거야.
휘어 잡아도 한 줌도 되지 않는 머리카락을 몽땅 뽑아버리고 싶어.
그래도 그 날 밤에 팔꿈치로 세게 한 방 먹인건 잘했어.
내 아이를 뺏어가려고 했던 것들을 용서할 수는 없잖아.
정말 있는 힘을 다해 팔을 휘둘렀어. 나는 혼자고 그들은 셋이었어.
오늘은 그만 자자. 너는 이제 안전해.
더이상 너를 자지 못하게 괴롭힐 사람들은 없어.
너한테 악한 말을 뿜어내는 사람들도 없어. 걱정하지 마.
알아. 그런데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아직도 나를 괴롭게 해.
고막이 떨어질 듯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 그 목소리가 천정을 울리고
발을 구르는 소리에 나뭇바닥의 진동이 느껴져.
잠을 자지 못해 머리가 빙빙 도는 것 같고, 심장이 두근거려.
살얼음판을 걷는 그 기분이 너무 생생해.
나는 기도했어.
제발. 도와달라고.
나에게 답을 달라고.
구해달라고.
그래서 우리 지금 여기 있잖아.
자, 잘 생각해 봐.
결국 비행기를 탔어.
만석이라 빈자리가 하나도 없는 비행기. 너는 가운데 자리에 앉았어.
옆 자리의 젊은 여자는 와인을 세 잔이나 마시고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카락으로 뒷좌석의 남자를 괴롭게 했어. 그 남자도 참지 않고 항의했어.
술냄새가 아직도 기억나.
나중에는 정말 취한 것 같았어. 화장실 갈 때 비틀거리더라.
아홉 시간동안 비행하면서 기내식이 세 번 나왔어.
맞아. 너무 배가 고팠어.
전날 저녁부터 제대로 먹지 못했어.
너무 두려워서 배고픈줄도 몰랐어. 경찰 영사가 우리가 비행기를 타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
밤새 바들바들 떨었어. 몇 시간 동안 온 몸이 너무 떨려서 몸이 조이는 것 같았어.
어쨌든 우린 집에 왔어.
경찰이 우리한테 should be go 라고 했잖아.
그걸로 끝난거야.
그래도 너무 억울해.
임시보호소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잖아.
세 번의 기내식을 아이가 다 먹었잖아.
크크 맞아. 어쩜 자다가 기내식 나올때 깨서 먹고 또 자다가 기내식 나올 때 눈 뜨고, 그런 상황에서도 웃었다니까.
아이는 언제나 나를 웃게 해.
그래, 그래서 버틸 수 있었어.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고.
나도 아이도 떨어졌다면 우린 둘 다 살 수 없었을 거야.
그래서 감사해. 감사하고 감사해. 감사하고 감사해, 감사해. 감사해. 감사해. 감사해.
그러니, 잊자.
잊고 싶어. 그런데 마음이 너무 아파.
울면 안될것 같아서 참았는데, 이제 좀 울어도 되지 않을까?
울어서 상처가 아문다면 울자.
울고 용서하지는 말자.
그래. 용서가 안돼
우는 건 나를 위해서야. 용서하기 위해서 우는 게 아니야.
상처가 아문다고 용서하는 것도 아니지.
그래, 지금은 아픈 나만 생각하는 거야. 울고 얘기하자. 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는지.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지.
어떻게?
그냥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