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by eunice 유니스

와인


글로 표현되는 나와

말로 표현되는 나는

사뭇 다르다.


나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할 때에는

수많은 교정 작업과 자기 검열을 통해

글이 다듬이 지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은 멋스러운 표현들로 포장되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글들은

내 것이긴 하지만

어쩐지 포장된 나인 것 같아

영 어색하기만 하다.


일상의 대화 가운데

말로 표현되는 나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이다.


어찌 보면 이런 내가 진짜 나일 것이다.


바라기는...


거친 자갈밭에서 강하게 자라서

묵직한 바디감을 가지면서도

오크통 안에서 다채로운 향을 품으며

때를 기다리며 숙성된,

고급스러운 와인 같은 사람이랄까.


말이 가볍지 않은 사람,


생각이 깊은 사람,


생각하는 대로 삶을 사는 사람,


무게감 있지만 지루하지 않은 사람,


고집스럽지 않고 다채로운 향기가 나는 사람...


이기를 꿈꾸지만


나는 여전히

고급와인을 흉내 내는

떨떠름한 타닌 맛만 나는

값싸고 가벼운 와인 같다.


좀 더 숙성이 되면 좋은 와인이 되려나?


노력 없이 나이만 먹는다면

숙성이 아니라 부패되겠지...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난 여전히

좋은 와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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