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치발로 요리조리 피해 다녔지만 밟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이상한 놈들이다. 생명체에게 주어진 첫째 미션이 종족번식일 텐데. 고운 색깔과 달콤한 맛으로 유혹해도 어려운 판에, 그저 그런 색깔도 그렇고 오히려 풍기는 냄새는 고약하기 짝이 없다. 하여간 대책이 없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새나, 개미나 누구도 관심이 없다. 연구의 대상이다.
이럴 진데 이놈들의 족보를 보면 공룡 시대 훨씬 이전인 3억 년 전에 태어났다. 지구 상의 동식물 멸종이 수차례 반복하는 빙하기와 대 변혁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다. 이 나무의 생명력은 모든 기적을 넘어서는 기적이다.
동물처럼 암수로 구별되는 것도 신기하다. 정충이 날아갈 수 있는 십리 내에 수나무가 없으면 암나무라도 일생동안 열매를 열지 못한다. 자가 수정하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종족번식에 불리할 것 같기도 한데 3억 년이나 진화를 거부하고 있다.
침엽수인지 활엽수인지 불분명한 나뭇잎에도 나름의 독소가 있으니 해충이 근접조차 못한다. 여름에는 녹색, 가을에는 노랑만 고집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비 그 자체다. 이런 초자연적인 생명력, 변덕스럽지 않은 단순함, 잡 벌레가 근접할 수 없는 고고함이 군자에 비유할 만하다 하여 공자도 좋아했던 나무라 한다. 울산 두서면에 있는 오백 년 묵은 은행나무도 볼수록 경이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런 생명력과 깨끗함, 아름다운 수형과 독특한 잎은 공해가 심하고 인구가 밀집한 도심의 가로수로서도 제격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옥에 티가 있다. 열매의 냄새다. 소복이 떨구는 열매 탓에 자칫 은행나무의 노랑 가을 운치는 어디 가고 멀리해할 판이다. 그래서 십수 년 전부터 가로수로는 씩씩한 수나무를, 유실수로는 암나무 위주로 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궁리(?)도 해보았지만, 열매를 보기 전에는 암수 구별이 되지 않으니 ‘그림의 떡’이었다.
다행히 최근에 국립산림과학원에서 DNA로 암수를 감별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찾아냈다고 하지만, 비용 측면에서나 기술적 측면에서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여전히 ‘병아리 암수 감별’처럼 쉬운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 저렇게 생명력이 강한 나무니 ‘꺾꽂이’나 ‘접붙이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린 묘목에 ‘암나무 가지를 접붙이면 암나무가 되고, 수나무 가지를 접붙이면 수나무가 되지 않겠나.’ 암나무와 수나무 가지의 DNA가 다르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으니, 접붙인 가지가 성목이 되더라도 성별이 변할 리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바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은행나무 접붙이기는 이미 오래된 방법이라 한다. 인터넷이야말로 ‘즉문즉답’ 선생님이다. 과거에는 질문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신의 한 수’를 찾아 몸을 끌고 천하를 주유했지만, 지금은 컴퓨터 한 대로 주유천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질문’을 가슴에 묻어두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이 방법이면 고약한 열매를 피해 다니지 않아도 될, 노란 은행나무 명품 길도 만들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마지막 의문은 남아있다. 어떻게 진화도 거부하였는데 어떻게 3억 년 동안이나 종족 번식이 가능했을까?
할 일없이 ‘이런 가설’을 만들어 본다. 냄새 고약한 열매니 새, 원숭이, 청설모, 다람쥐조차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그래서 ‘내 열매가 남의 식용’이나 되는 일은 없을 거다. 떨어지면, 끈기 있게 기다리면 된다. 냄새가 고약한 껍질은 자연이 벗겨 줄 거고. 그럼 가볍고 단단한 속껍질이 나오면 빗물을 타고 무심히 흘러가면 되겠지, 그러다가 조건이 맞으면 새싹을 내고, 거기가 명당이니 하고, 백 년 천년을 살면 되지. ‘3억 년 동안 세상천지 변혁을 다 이겨낸, 본능 속에 숨은 자신감의 결과’ 일 거다.
‘무위자연’의 극치다.
이런 냄새 고약한 은행 열매도 속살은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식감이 제법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저 무심히 먹는 먹거리 중하나였다. 그런데 갑자기 맛이 달라진다. 3억 년의 생명을 품은 DNA를 먹는 것이고, 기적 중의 기적을 먹는 것이니 그렇다.
하긴 따지고 보면 ‘우리가 접하는 만물에 기적이 아닌 것이 있던가. 얼마나 대단하고 소중한 것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