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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Oct 22. 2023

세 번째 장례식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할아버지는 코로나 이후로 부쩍이나 우울해하셨다. 가족들의 병문안이 끊기자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를  못하겠다, 아들도 아내도 다 하늘나라에 갔는데 왜 자만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젠 다 그만하고 싶다 하셨다.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고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 할아버지가 하루를 못 넘기실 것 같대."


황망한 마음으로 차키를 챙겨 들었다. 병원으로 내내 수 같은 눈물이 쏟아다. 아직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할아버지가 세상에 사라진 처럼 그리워졌다.


병원에 도착하니 할아버지는 일반 병실이 아닌 집중치료실에 계셨. 산소호흡기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을 끼고 계시면서  심하게 헐떡거고 있었. 갈비뼈 실루엣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 살이 하나도 없었다.  없는 상태였다. 심장박동수 55, 최고혈압 69, 최저혈압 31. 모든 상태가 죽음이 지척에 와있음을 말해주고 있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꺼억 소리 내어 울었다. 음을 눈앞에 두니 아쉽고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생각해 보니 아침도 못 먹 나온 데다가 점심 지나있었다. 입맛 없, 뭘 먹어도 체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억지로라도 뭔가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오늘은  하루가 될지도 모르니까.


지하식당으로 내려다. 라면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김밥 꼭꼭 씹어먹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한번 울렸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아, 하필 그 짧은 새에……. 아버지 곁좀 더 있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수저를 내려놓고 병실로 뛰어올라갔다. 


"ㅇㅇㅇ환자분.. 2021년 2월 3일.. .. 임종하셨습니다."


의사 목소리가 덜덜 떨다. 애써 울음을 삼키는 목소리였다. 참 좋은 분이셨다고. 의료진한테 소리 지르고 예의 없게 대하는 환자들도 많은데 우리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고. 모두가 할아버지를 좋아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자 큰 고모가 대답했다. 요양보호사가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 얘길 들었다.  장면을 상상하자 왈칵 눈물이 쏟아다. 


기저귀를 차고, 침대에 누운 채 변을 보고, 생판 모르는 사람 오물 묻은 자기 몸을 닦아주고, 옆 사람들에게 냄새를 풍기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 왜 이리도 어려운 건지……. 하루빨리 죽고 싶다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22살의 여름, 28살의 봄, 34살의 겨울. 벌써 세 번째로 맞는 족의 죽음이었다.  


세 번의 장례식 모두 세 명의 고모들과 함께였다. 고모들은 내가 어릴 적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께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드리고, 순번을 정해 집에 드나들며 부모를 살뜰하게 챙겨드린 최고의 딸들이었다.  고모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 남는다고. 살아계실 때 좀 더 잘해드릴걸, 하고.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면  고아처럼 세상에 남겨질까 봐 두려웠다. 상상해 왔던 순간이 마침내 지금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상상던 것과다르게 나는 이미 어엿한 어른이 되어있었고, 새로운 가족이 내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왜 이리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며 하루하루 의미 없는 시간 같다고 말했지만, 그런 할아버지가 있어서 나의 하루하루는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덕분에 감사를 배울 수 있었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혼자 볼 일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았으니,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삶이란 게 보물 찾기처럼 느껴졌다. 가만히 있을 땐 몰랐지만, 찾아 나서보니 상 속에 연한 듯 숨겨진 보물들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내 곁을 스쳐갔던 보물 같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작은 도움의 손길 하나, 사소한 위로의 말 하나가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웠다. 사실은 살아온 모든 게 다 선물 같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일했던 직장, 내가 입었던 옷, 내가 신은 신발, 내가 마시는 커피 한잔 하나하나 까지. 모든 것이 내 인생에 주어진 귀한 선물이었다.


30년을 살아도, 60년을 살아도 시간은 늘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쉽다 생각하면 아쉬운 것뿐이고, 감사하다 생각하면 감사한 것 투성일 것이다.


세 번째로 맞는 장례식장 앞에서, 가족들로 인해 괴로워하며 숱한 밤을 눈물로 지새우던 나는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어느덧 훌쩍 자란 내가 있을 뿐이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고 있는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잊히지 못할 아픔은 없다.

아물지 못할 상처는 없다.

숨이 붙어 있는 한,

삶은 언제든 새로워질 수 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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