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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옫아 Sep 12. 2022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나의 연두색에게

연두빛의 길을 따라 나가기 전에. 

이 이야기는 앞으로 제가 연재할 제 실제 이야기들입니다.

본 글은 오드아이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기 위해 쓰여진 글들 중 여덟 번째 편에 해당합니다.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나를 알아주는 사람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글을 쓸래요, 난.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근데 그게 뭐라고?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안녕, 오드아이.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다른 눈으로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같음과 다름의 사이 (brunch.co.kr)

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나의 일부이자 전부 (brunch.co.kr)







생각해 보면 곳곳에 복선이 숨겨져 있었다. 


첫 번째 글에서도 고백한 바와 같이, 나의 왼쪽 눈 색은 남들과 다른 연두색 빛을 품고 있다(오드아이로 내 인생에서 살아남기 : 안녕, 오드아이. (brunch.co.kr)). 연두색이 갖고 있는 이질감으로 오드아이라는 측면이 더 부각되곤 했다.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 등장하는 친구는 파란색 눈을 갖고 있던데, 내 경우 연두색 들판과 같은 색감이 시그니처 색깔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어렸을 때 연두색이 연상시키는 이질적인 의미는 참 많았던 것 같다(돌아보면 아름다움과 이상한 것은 한 끗 차이가 아닌가 싶다). 뭐랄까 늙은 마녀가 휘휘 만들 것 같은, 그리하여 고약한 악취가 날 것 같은 독약 색, 그리고 그런 무드와 톤온톤인 두꺼비나 개구리 계열의 양서류 등. 어릴 때 놀림을 받을 때 마녀 눈이라든지, 고양이 눈이라든지 전부 다 싫었지만 그중 특히 제일 싫었던 건 '유리구슬 색 같다'는 표현이었다. 그 어린 나이에 속이 참 배배 꼬인 모양인지, 칭찬을 빙자해 남들과 다른 나의 낯선 모습을 언급하는 게 불쾌했다. 이처럼 나는 내 눈에 대한 칭찬 혹은 놀림 등의 가치 평가에 굉장히 예민한 아이였다. 그저 나는 남들과 다른 게 싫은, 평범한 축에 속하고 싶은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연두색을 보면 울적해지곤 했다. 애써 망각하고자 했던 나의 눈 색을 거기서 기어코 발견해 버려서. 


대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우리나라 초연 공연인 뮤지컬 <위키드>를 보게 되었다. 한창 뮤지컬에 푹 빠져 있기도 했고, 국어국문학과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복수전공으로서 OSMU의 대표적인 콘텐츠인 <위키드>에 큰 관심이 갔고, 거기다 새로운 재해석까지 만날 수 있는 작품인지라 친구와 한걸음에 달려가 보았다. 무대 위에서 초록색 피부를 가진 엘파바, 라는 캐릭터를 만나, 내가 미처 만들지 못했던 내 모습을 보았다. 엘파바는 남들과 다른 피부색을 갖고 있어, 쉽게 공동체에 합류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 소외되어있다. 그러나 이에 결코 기죽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살아가며, 그녀의 피부색이 곧 그녀의 정체성이 되었다. 스포가 되어 조금 난감하긴 하나, 그녀의 피부색은 결국 그녀가 가진 마법 능력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그녀는 그녀가 믿는 신념을 세상에 실현시키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특히 1막의 마지막에 나오는 'Defying gravity'는 세상의 모든 편견에 기꺼이 맞서는 의지가 담긴 노래로, 처음 들었을 때 그 전율을 잊을 수 없다. 그냥 보아도 너무도 좋은 뮤지컬인데, 나처럼 신체 일부가 초록빛을 갖고 있는 그녀였기에 나는 더욱 더 몰입하고, 감정을 이입하며 한동안 오랜 여운을 느꼈다. 


엘파바, 나와 같지만 나와 꽤 다른 그녀. 그러나 돌아보면 썩 다르진 않기도 했다.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로 인해 그녀가 세상에 소외되었기 때문에, 엘파바 역시 사회의 약자들 편에 쉬이 설 수 있었고, 나 역시 남들과 다른 눈으로 인해 누군가의 다름을 남들과는 '다른 눈'으로 다가가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파바와 나의 초록빛은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기꺼이 따를 수 밖에 없는 선택지로 인해, 결국 그럴 수밖에 없는, 주어진 서사를 향해 가는 '무엇'이었을까. 잠시 딥한 질문을 배제하고서라도, 작품 내에서 초록은 누구라도 가보고 싶어하는 신기한 에머럴드 세계의 색감인 동시에 다른 친구들로부터 놀림 받는 대상 두 가지 의미로 설정된다. 꽤 이항대립적인 성격을 함유하는 초록색인 셈이다. 조금만 더 고민해 보면 충분히 질문을 던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왜 남들이 가장 동경하는 초록색이 곧 남들이 가장 혐오하는 초록색이 되기도 하는지. 


그렇다. 결국 중요한 건 색깔이 아니다. 그 어느 쪽이라도 양면성이 있음을 보여주려던 게 아닐까. 만약 엘파바 피부가 초록색이 아니라 갈색이었다면, 핑크색이었다면, 주황색이었다면 그녀는 더이상 놀림을 받지 않았을까?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다름' 그 자체이고, 이러한 다름으로 인해 누군가와 멀어지기도 하고 그 거리감 속에서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는 건 아닐까.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 눈 색이 연두색이 아니었어도, 보라색이었어도 여전히 나는 오드아이 사람으로서 받는 이질적인 시선 안에 놓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왕 연두색으로 태어난 거, 그 의미를 따라가봐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란 의미 부여의 동물이곤 하니까. 


의미 하나. 나는 연두색 속 갈색의 내 눈을 해바라기라 여기곤 했다. 해바라기가 하늘 위 태양을 바라보듯, 나는 종교가 없지만 어느 신께서는 나를 알아보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믿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각인 같은 거. 나 당신이 이렇게 세상에 놓이게 해서 정말 어릴 적부터 힘들게 살아가는데, 더 이상의 고통은 주지 말길, 날 알아보고 내게 주려던 고통을 거두어 주길 바라기도 했다. '


의미 둘. 지금의 애인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는 내게 어울리는 옷 색깔을 새롭게 알았다. 검은색 옷을 입으면 사람이 보다 날씬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어, 주로 검은색을 입곤 했는데, 어느날 내가 입고 온 하늘, 연두 색감 계열의 옷을 보더니 내게 정말 잘 어울린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25년을 넘게 살아 오면서 내가 어떤 색 옷이 잘 어울리는지 몰랐는데, 돌아보면 내 눈 색과 매칭이 잘 되어서 그런 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번 가을에도 연두색 카디건을 신나게 입고 다닐 예정이다. 내 눈이랑 정말 세트로 잘 어울린다. 


의미 셋. 8월에 태어난 나. 작년에 대리 승진을 받고 나서 건영이가 승진 축하 선물로 판도라의 탄생석 반지를 주었다. 8월의 탄생석은 페리도트라고 하는데 연두빛을 자랑하는 색깔이다. 그 반지를 끼고 뮤지컬 <위키드>를 보러간 건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이곤 했다. 엘파바, 여기 봐! 너랑 비슷한 연두색이 한 명 더 있다! 그러고 작은 상상을 해 보았다. 만약 내가 다른 달에 태어났으면 나의 눈 색은 그 달의 탄생석 색감과 같았을까 하는. 


그러나 이제 나는 내 눈 색이 다른 색이길 기대하거나, 혹은 왜 다른지 더이상 묻지 않는다. 왜 다른지는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유전적 요인에 의해서도 아니고, 질병이나 신체적 문제로 인해서도 아니고, 더욱이 후천적 요인으로 인해서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왜 내 눈 색이 연두색이었는지, 그리고 나는 이 연두빛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 방향을 선택하기로 했다. 위에서는 다소 냉소적으로 눈 색이 어떤 색이든지 간에 중요한 건 다름,이라 말했지만. 그래도 나는 연두빛의 의문을 간직한 채 나아가고 싶다. 더이상 연두색 오브제를 보고 타격감을 받는 대신, "어 내 상징!"으로 조금 더 환한 미소로 그 물건에게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고 싶다. 그러면 나는 나를 더 사랑하게 되고, 내 연두빛을 더 특별하게 여길 어느 날이 올 거라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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