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지.
아무리 다짐해도 말이야.
전 또 퇴사를 통보했습니다.
불과 나흘 만이죠?
마치 평생 이 회사에 뼈를 묻을 듯 말한 것 같은데
손바닥 뒤집듯 잘 뒤집어 버렸네요.
머쓱하게도 말이죠.
사실 금요일에 지인의 제의가 들어왔거든요.
결국 금토일 고민을 하고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어요.
뭐, 그럴 수밖에 없던 눈물 나는 이야기
정도는 아니지만 한 번 들어봐 주세요.
관심이 없다고요?
그래도 들어주실 거라 믿어요.
저는 평일 13시부터 22시까지
근무하는 야간 근무자인데요.
집에 도착하면 밤 열한 시 반정도 되더라고요.
퇴근과 동시에 맹세를 합니다.
집 가면 바로 잠에 들 거라고 말이죠.
하지만 집에 도착하면 나이 든
고양이들의 사료토를 처리하고
고양이들을 안아 주곤 합니다.
사료 물 화장실까지 처리하면 또 보이는 집안일,
그리고 오늘 하지 못했던 영어공부,
일어공부를 마저 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한 시가 훌쩍 넘더라고요.
자기로 했던 나를 탓하며 부랴부랴 잠자리에 듭니다.
아침에 운동도 가고,
영어공부도 하고 밥도 먹으려면
대략 8시 반에서 9시엔 일어나야 하는데요.
굳이 안 해도 되지만 강박이 생겨
일어나야 할 것 같더라고요.
거기에 인천 부평시장에서 서울역까지
왕복 세 시간 거리를 1년 반 가까이 다니니
매일매일이 피곤하더라고요.
그러다 갑자기 지인이 재택근무 겸
9to 6 자리에 공석이 생길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약 12년 전 함께 일했던 동료인데,
저처럼 열심히 살고,
일 잘하는 사람이 없다고 매년 생일 선물도,
돈 없어 힘들 때엔 돈도
기꺼이 빌려주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사람이 하라고 하면 진짜 꿀이겠다 싶었어요.
만약 이직을 하게 되면 급여가
대략 40만 원 정도 줄어드는데요.
왕복 교통비와 서울의 식대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커버가 될 거 같더라고요.
하지만, 또 이렇게 쉽게 이직을 하는 거냐는
내 안의 소리가 발목을 붙잡더라고요.
친구들이 이번엔 어디서 일해?
이 말을 또 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죠.
어차피 새로운 곳에는 새로운 빌런과,
새로운 힘든 점이 생긴다는 것이
경험상 분명했기 때문이죠.
결국 며칠을 잠을 설치며 결론을 내렸어요.
적어도 재택근무를 하면
만성 피로는 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일하다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조금씩 조금씩 집안일을 하다 보면
주말에는 좀 더 제대로 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지금은 야간에 끝나다 보니
데이트나, 모임, 약속을 다 주말에 몰다 보니
주말을 오롯이 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데이트를 해도 매번 피곤해서 미안했는데
이제는 생기 있는 상태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새로 옮기는 곳은 연차가
자유롭진 않아서 망설여지긴 합니다.
그래도, 재택근무하면서 쉬니까
그나마 연차가 덜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새로운 것에 대한 ENFP 성향과
쉽게 질려 버리는 ADHD 특성이
제대로 버무려진 것 같네요.
진짜 무엇보다 좋은 건 뒷 사람의
5분 간격으로 내 뱉는 한 숨을 듣는 날이
얼마 남지 았다는 점이지요.
물론 이 이야기는 여러분과 저만의 비밀이지만요.
오늘도 전,
그렇게 퇴사를 통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