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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Aug 22. 2022

소설 있을법한 중년의 사랑(10)"타락 부부"

"타락 부부"

 나리가 화장실에서 걸어왔다. 뭐가 그리 당당할까? 수정은 어이가 없었다. 나리가 실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내 휴대폰 연락 온 거 없었지?”

 “어. 응. 없었어.”

 수정은 기가 막혀서 얼버무렸다. 왠지 태식과 나리가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느껴졌다.

 ‘그래. 둘이 짜고 나를 함정에 빠뜨리는 거야. 명훈 씨 이야기를 자세하게 안 해서 천만다행이다. 김나리, 김태식. 내가 순순히 당하지는 않을 테다.’

 “나리야. 근데 네가 알려준 바람 필살기 말이야. 네 경험담이지?”

 “야야. 그 정도는 다 알아. 너만 조선 시대에 살고 있는 거야.”

 나리는 묘하게 답을 피해갔다.

 “수정아. 그건 그렇고. 남친 말이야. 어디까지 갔어? 당연히 거사는 치렀을 것이고.”

 나리는 왼 주먹을 말아쥐고 오른 손바닥에 탁탁 치면서 섹스를 했냐고 물었다.

 ‘너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년아. 40년 친구가 이렇게 배신을 해?’

 수정은 갑자기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요동쳤다.

 “아냐. 유채꽃밭에서 혼자 셀카 찍고 있으니까 오더라고. 사진작가라면서 모델이 되어줄 수 있냐고.”

 “뭐? 모델?”

 “응. 그래서 좋다고 했지. 그때 사진 찍고 같이 밥 먹고 연락처 주고받고 그게 다야. 서울 가면 연락 달라고 했어.”

 “진짜 아무 일 없었다고?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나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정말이라니까.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해서 조금 설레기는 해.”

 “열녀 나셨네. 그렇게 아끼다가 똥 된다. 나중에는 아무도 안 쳐다봐. 조금이라도 싱싱할 때 즐기라고. 바보야.”

 나리는 휴대폰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 참. 나리야. 나 지금 집에 가봐야 해. 그 사람이 오늘 일찍 들어온다고 했어. 오늘 합방하는 날이거든. 내가 모든 걸 용서한다고 하니까 일주일에 한 번은 신혼 때처럼 사랑을 나누자고 하더라. 애들도 모두 떠나고 둘만 있는 시간을 잘 보내보자고 하길래 알았다고 했어. 오늘 이야기 고마웠어. 재밌었고. 나중에 나도 꼭 써먹을게. 네 남편한테 들키지 말고 잘해봐. 나 간다. 안녕.”

 웬일인지 나리는 평소와 다르게 질투로 가득 찬 심술보를 양 볼 가득히 채웠다.

 “그래. 알았어. 먼저 가. 나는 전화 한 통만 하고 갈게.”

 수정은 커피숍을 나온 후 창 너머로 나리의 모습을 지켜봤다. 어딘가로 전화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김나리. 네가 내 남편이랑 바람을 피워? 명품 가방을 받았어? 내가 꼭 복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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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돌아온 수정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컵에 따르고 벌컥벌컥 마셨다.

 성에 차지 않아서 이번에는 물병 채로 마셨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분노와 배신감에 이글거리는 눈동자 덕분에 눈물샘이 말라버렸다.

 ‘오늘 결판을 내겠어.’

 수정은 김치 두루치기와 파전, 참치 김치찌개를 끓였다. 모두 태식이 술안주로 좋아하는 것들이다. 술은 막걸리를 준비했다.

 딩동

 틱틱틱틱

 띠리리릭

 약속대로 태식이 일찍 퇴근했다.

 “여보. 어디 있어? 나 왔어.”

 “주방에 있어요.”

 태식은 가방을 서재에 두고 주방으로 갔다. 태식은 요리하는 뒤태가 가장 매력적이다고 말하며 뒤에서 수정을 껴안았다.

 “조금만 기다려요. 다했으니까 얼른 씻고 나와요.”

 “알았어. 신혼 기분인데. 내가 좋아하는 파전도 했네.”

 수정은 자신을 껴안는 태식의 손길에서 나리의 체취가 느껴졌다. 불결하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조금만 기다려. 10배로 갚아 줄 테니까.’          

 태식이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았다.

 단둘이 식탁에 앉아서 저녁 식사를 한 게 몇십 년은 지난 것 같았다.

 둘째 딸 선영이가 대학 기숙사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끔 같이 식사를 했고 이후로는 각자 따로 해결했다.

 수정은 <빈둥지 증후군>이 자신에게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심각하게 와 있었다. 태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늘 밖으로 겉돌며 집에서는 잠만 잤다. 주말에는 골프 아니면 등산, 자전거 동호회 등으로 취미활동을 했다. 그래서 수정은 늘 혼자였다. 그런 수정에게 나리는 늘 위안이 되어주는 친구였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남편과 바람을 피우다니. 수정은 순간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당신 안색이 안 좋아. 얼굴이 홍당무 같아.”

 태식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수정을 보며 말했다.

 “갱년긴가 봐. 가끔 이러네.”

 수정은 아직은 때가 아님을 생각하며 애써 참으며 말했다.

 “병원 가보지 그래.”

 “알았어요. 내일 가볼게요.”

 수정이 내일 가본다는 말에 태식은 고개만 끄덕이고 말없이 젓가락질만 했다. 막걸리도 혼자 따라 마셨다. 수정은 막걸리를 한 잔만 마셔도 취했다. 그래서 늘 사이다를 일대일로 타서 마셨다. 한 식탁 위에 두 종류 막걸리가 비워지고 있었다.

 둘은 그렇게 말없이 각자 잔을 비웠다. 두 딸이 집에 있을 때는 딸들 때문에 공통 관심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딱히 대화할 거리가 없었다. 사실은 궁금한 것도 없다. 다만 서로에게 분노가 치밀 때 얼굴이 빨개지는 것 외에는.     

 호랑이는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느낄 때 무시무시한 발톱을 드러낸다. 수정과 태식은 지금 그때를 기다리며 막걸리로 용기를 채워가고 있었다.

 태식은 결정적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수정은 태식의 핸드폰에서 본 카톡 문자의 여자와 나리의 핸드폰에서 본 증거가 다였다. 한 남자와 원나잇을 한 수정, 두 여자와 바람을 피는 태식.

 태식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 이 시간이 우리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태식의 말에 수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태식을 쳐다봤다. 술기운에 용기가 생겼다.

 “아마 내가 차려주는 저녁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지.”

 수정의 텐션은 당당했다.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그런 수정을 보며 태식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삐죽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 내가 무슨 자료를 가졌는지도 모를 거야. 나, 원 참. 어이가 없어서.”

 수정은 직감적으로 태식이 말한 자료가 자신의 제주도 원나잇에 관한 것임을 느꼈다.

 “사람은 한순간 실수할 수는 있어. 그런데 여러 번, 오랜 기간 실수할 수는 없지. 그것도 여러 명이랑.”

 수정의 말에 태식은 흠칫 놀랐지만 놀라움을 가라앉히려고 일부러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남자는 말이야 바람을 피워도 가정으로 돌아오게 되어있어. 그 순간만 기다려주면 돼. 그런데 여자는 다른 남자 맛을 본 순간 이미 몸과 마음이 떠나버리기 때문에 돌아오기가 힘들지.”

 수정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한잔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고는 태식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목소리에 힘을 잔뜩 주며 말했다.

 “그 무슨 개소리야. 남자는 그래서 바람피워도 되고 여자는 못 돌아오기 때문에 피우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내 친구랑도 잤냐? 명품 가방도 사주고?”

 수정은 드디어 발톱을 드러냈다. 강력한 증거를 내세워서 먼저 훅으로 한 방 날렸다. 태식은 ‘명품 가방’ 대목에서 수정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자기는 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 이제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네. 다 까보자. 난 네가 제주도에서 남자랑 호텔 간 것도 알아. 더 말해줄까? 호텔에서 몇 번 했는지, 어떤 자세로 했는지도 모두 알아. 물론 영상도 있지.”

 수정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아하. 그래? 사람을 붙였었네! 비열한 인간.”

 “왜 그랬는지 이유나 알고 끝내자. 그래야 미련도 안 생길 테니까.”

 수정은 작심한 듯 당당하게 말했다.

 “이유? 그래 시원하게 말해주지. 첫째는 당신이 날 강간했기 때문이야. 아무리 부부지만 원치 않는 섹스는 강간이지. 난 25년 동안 너랑 한 섹스 중에 90%가 강간으로 느낄 만큼 치욕스러웠어. 내가 산부인과 가서 치료받은 기록이 증명해. 결정적인 건 뭔지 알아?”

 태식은 수정의 말을 듣고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정적인 건 1년 전이야. 그날도 술에 취해 들어온 너한테 당했어. 그런데 다음날부터 이상하게 가렵고 아프기 시작했어. 산부인과 갔더니 성병이라고 하더라. 내가 왜 너하고 안 하고 싶은지 알겠니? 더러워.”

 태식은 1년 전에 몰래 성병으로 치료를 받은 기억이 났다. 수정이가 말을 안 해서 다행히 아내에게는 옮기지 않았다고 안심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 그건 내가 잘못했네. 나도 6개월 가까이 치료를 받았으니까. 그때 말하지 그랬어. 그러면 더러운 놈이랑 더 안 살았을 텐데.”

 “그러려고 했지. 이혼하려고. 근데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니?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만 참자고 마음을 바꿨어. 한참 예민한 나인데 성병에 이혼까지 알게 되면 감당되겠어?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이날까지 기다렸어.”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네가 성병으로 고생한 거 생각하니까 내가 이혼 안 해주면 안 되겠네. 나도 네 섹스 영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도 없고. 잘됐네.”

 “그 영상 바로 삭제해라. 증거자료 이전에 범죄자료다.”

 “그러지 뭐. 내가 당신한테 복수할 거도 아닌데. 이미 시인했으면 더 필요 없는 자료지. 보고 싶지도 않고.”

 둘은 막걸리 한잔을 더 들이켰다. 모든 걸 알게 된 후 마시는 막걸리는 맛을 알 수 없었다. 인생의 쓴맛이 이런 건가? 어렵게 꺼낸 이야기인데,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면 어떻게 할까?’ 나름 며칠을 고민했었는데 이렇게 쉽게 인정해버리다니.

 침묵과 고갯짓만이 대화를 대신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번에는 수정이 먼저 침묵을 깼다.

 “나리랑은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어?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을 동시에 잃는 더러운 배신감 때문에…. 딴 년은 알고 싶지도 않고.”

 태식은 한숨을 쉬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리 씨는 내가 가스라이팅 당한 경우야.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고.”

 “변명은 필요 없고 언제부터 그랬는지만 말해. 치가 떨리니까.”

 태식은 눈을 감았다. 또 한숨이 나왔다.

 “그러니까. 1년 전이었어. 정확하게 작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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