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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조바르 May 26. 2024

3. 아내의 남자

수정은 상철의 몸 전체에서 강한 수컷의 향기를 느꼈다.

경찰을 따라가는 상철의 모습에 수정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상철 씨, 무슨 일이에요? 이 사람들은 뭐고요?”     

“아, 네. 별일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객실에서 소란을 피워서 제가 경찰에 신고했어요. 지금 신고인 조사받으러 가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올라가서 기다리세요.”     

그때 수갑을 찬 청년이 수정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 당신이 이 새끼 깔따군가 본데 이 새끼 원조교제 했어. 미성년자 내 동생이랑.”     

경찰이 청년의 팔을 끌어당기며 걸음을 재촉했다.     

‘원조교제? 상철 씨가? 나를 만나기로 해놓고?’     

수정은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충격에 사로잡혔다. 뭐라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수정 씨, 아니에요. 거짓말이에요. 뭔가 오해가 있어요. 내 말 믿어요.”     

상철은 수갑을 찬 청년을 밀치며 말했다. 그리고 수정의 얼굴을 봤다. 수정은 전기충격기를 맞은 사람처럼 굳어있었다.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무슨 말도 못 하고 뻣뻣하게 서 있었다.     

“일단 올라가 있어요. 참, 룸 키 여기 있어요.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금방 갈게요.”     

수정은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뭔가 설명은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업하는 사람이라 상황파악이 빨랐다. 수갑 찬 청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대처방법, 관계유지 등 동시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빠르게 떠올랐다.      

“알았어요. 난 상철 씨 믿어요.”          

로비에서 한 바탕 소동이 있고 난 뒤 수정은 1004호로 갔다. 키를 대자 문이 열렸다. 감정이 복잡해서인지 수정은 문을 힘껏 당겨서 닫는 바람에 ‘쾅’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정호는 맞은편 1004호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를 듣자 곧 수정이 입실했음을 직감했다. 아내는 짜증이 나면 문을 힘껏 당겨서 일부러 큰 소리를 내는 습관이 있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젊은 남자는 경찰과 함께 갔고, 지금 수정 혼자만 1004호에 있다?’ 정호는 지금, 이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현 상황의 흐름에서 아내에게 충격을 줄 방법을 생각했다. ‘뭘까? 어떻게 하지?’ 그러자 소녀는 정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뭘 그렇게 생각해요. 빨리 호텔을 나가야 된다고 했잖아요?”     

“아, 그랬지. 그런데 말이야 호텔을 나가기 전에 한 가지 할 일이 있어.”     

“또 뭔데요. 뭘 하면 되는데요?”     

소녀는 조금 짜증이 났다. 정호는 소녀의 양어깨에 두 팔을 올리며 말했다.     

“내가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엘리베이터 앞에 대놓고 기다릴 테니까 넌 내가 나가고 나서 정확하게 2분 후에 방문을 열고 맞은편 1004호 벨을 눌러.”     

소녀는 짜증이 폭발했다.     

“1004호 벨을 왜 눌러요? 도대체 뭘 또 꾸미려고 그러는 거예요. 저 혼자 남겨두고 도망가려는 거죠?”     

“아니야. 날 믿어. 간단해. 벨을 누르고 안에서 여자가 누구냐고 물어볼 거야 그러면 ‘오빠, 콘돔 사 왔어. 빨리 문 열어.’라고 말해. 그러면 안에서 누구 찾아요?라고 다시 물으면 ‘1004 오빠, 나야. 장난치지 말고, 왜 여자 목소리를 내고 지랄이야? 나 돈 받았으니까 두 번 안 하고 그냥 간다.’라고 말해. 그러면 안에서 여자가 문을 열고 널 볼 거야. 그러면 당당하게 이렇게 외쳐. ‘이런 변태 새끼 늙은 여자도 불렀네, 내가 쓰리썸은 안 한다고 했지? 아이 재수 없어.’ 그리고 후다닥 뛰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     

소녀는 입을 벌리고 눈만 깜빡였다.     

“영화 찍어요?”     

“그래, 영화 찍는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줘. 부탁이야.”     

“알았어요. 뭐 그런 걸 가지고 부탁까지 하고 그래요. 이건 아저씨가 날 구해주는 보답으로 서비스로 그냥 해줄게요. 호호. 나 연기 잘해요. 킥킥.”     

정호는 검은색 나이키 모자에 흰색 마스크,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문을 열었다. 소녀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며 2분이라고 입술만 움직였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했다. 소녀는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시계를 보았다. 21:10이었다. 핸드폰 바탕화면에 패거리 사진이 있었다. 두려웠다. 다시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일, 이, 삼, 사, 오, 육…, 백십팔, 백십구, 백이십. 소녀는 흰색 나이키 모자에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문을 열었다. 복도는 지나가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맞은편 1004호 앞에 섰다.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벨을 눌렀다. 딩동딩동.     

“상철 씨?”     

수정이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상철이 아닌 한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생각했다. ‘앗, 이거 시나리오대로 안 가는데. 앞에 대사는 건너뛰고 본론만 말해야겠다.’ 소녀는 침착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1004 오빠, 늙은 년도 불렀네! 내가 쓰리썸은 안 한다고 했지! 오늘은 한 번 한 거로 끝내자. 아이 재수 없어. 늙은 년 하고 쓰리썸이 다 뭐야, 변태 새끼. 너하고 다시는 안 해, 연락하지 마. 돈도 얼마 안 주는 새끼가 요구하는 건 많아서. 에이 퉤. 어이 아줌마, 아줌마도 참 불쌍하네. 어쩌다 저런 변태 새끼를 만나서.”     

소녀는 말을 마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씩 웃으며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수정은 문 앞에서 펼쳐진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문을 닫을 힘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물을 마셨다. 진정되지 않았다. 상철의 변태 행각보다 어린년에게 치욕스러운 수모를 당했다는 분함에 심장이 요동쳤다. 지난 며칠 상철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선을 넘어 황홀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서울대 최고 경영자 과정 입학식 날.]     

수정은 여성 기업인 협회에서 만난 지숙의 추천으로 서울대 최고 경영자 과정에 입학했다.      

“자기도 인맥을 늘려야 해. 쇼핑몰 계 사람들만 알아서는 사업을 키울 수가 없어. 더 중요한 게 있는데 뭔지 알아?”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뭔데요?”     

지숙은 수정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며 속삭였다.     

“젊고 잘생긴 남자들도 많아. 이렇게 예쁘고 매력 있는 여자가 인생을 너무 억울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난 백 대표 보면 늘 안타깝더라.”     

악마의 속삭임일까? 수정은 ‘억울하게’라는 단어에 꽂혔다.      

“언니, ‘억울하게’가 무슨 말이야?”     

“남들 다 애인 하나씩은 있는데 너 같이 매력 있는 여자가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산다는 게 억울하다는 거지. 너 남편 월급은 다 용돈 하라며 신경도 안 쓰지?”     

수정은 지숙의 말에 놀라며 말했다.     

“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난 버는 게 남편보다 많으니까 남편 기 살려 주려고 그런 거지.”     

지숙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수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넌, 겉은 화려한데 속은 참 보수적이구나! 남편 버는 걸 다 용돈으로 쓰라고 하면 남편이 어디에 쓸 것 같니? 확인은 해봤고?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딴 년한테 쓸 거야.”     

“에이, 언니도 참. 우리 남편은 숙맥이라 바람 하고는 거리가 멀어. 오히려 내가 제발 바람 좀 피우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라니까.”     

지숙은 수정의 말에 대화가 안 통한다는 손짓을 보이며 말했다.     

“호호호, 가만히 보니 넌 보수적인 게 아니라 남자를 잘 모르는 순진파구나? 열 여자 마다하는 남자는 없어 이 바보야.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봐. 일단 남편의 지출 내역을 확인해 봐. 그리고 여자가 있는지도 알아보고. 만약 네 말대로 집하고 아내, 자식밖에 모르는 남자면 천만다행이고. 아마 99%는 분명히 외도 중이거나 외도한 사실이 있을 거야. 고생해서 엉뚱한 년 좋은 일 시키지 말고.”     

“언니가 억울이라고 말한 게 그거였어?”     

수정은 뭔가 철학적인 말을 기대했는데 결국 불륜 이야기라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주변에서 남자친구니, 애인이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호기심이 생기기는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수정은 사업에 더 집중했고, 가정적인 남편 정호가 고맙다고 생각했다.      

“백 대표! 내가 좋은 정보 하나 줄게. 이번 기수에 내가 아는 사람 후배가 입학하는데, 30대 후반에 아직 싱글이래. 헬스클럽을 10개나 운영하는 사업가인데 사진 보니까 너무 잘생겼더라. 나 같은 노계는 침만 삼키지 대화라도 한 번 해보겠어? 근데 네 생각이 나더라고. 너 정도면 충분하지. 덕분에 나는 내가 관심 있는 그 남자 선배랑 썸 타고. 어때? 호호호.”     

지숙은 자신의 썸에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었다. 더 정확하게는 수정을 이용해서 더블데이트하며 기회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호호호. 이제 보니 언니가 썸 타고 싶어서 나를 이용하려는 속셈이구나? 내 눈은 못 속여. 날 위해주는 척하지 마, 그 시커먼 속을 들켰으니까.”     

“여우 같은 년, 호호호. 그러니까 한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뭐, 언니 하는 거 보고. 생각해 볼게. 호호호.”     

“백 대표. 나 좀 도와줘라. 사실 나 그 사람한테 완전히 빠졌어. 내가 남자에게 설레본 적이 언젠가 싶어. 그런데 요즘 그 사람 얼굴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미칠 것 같아. 더블데이트로 연결 좀 해줘라. 응?”     

“어이구, 나이 들어서 잘하는 짓이다. 알았어. 도와줄게.”          

수정이 탄 차가 서울대학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입학식 날이라 그런지 토요일인데도 주차장은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시간은 다 되어가고 자리는 없고 이중주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멀리 기둥 옆에 빈자리가 보였다. 수정은 ‘끼익’ 소리를 내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수정이 빈자리에 도착할 즈음 갑자기 모퉁이에서 나타난 벤츠 차량이 먼저 주차를 하는 게 아닌가! 수정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심정으로 멈춰 서서 벤츠 차량이 주차하는 걸 바라봤다. 젊고 잘생긴 남자였다. 서로 눈이 마주쳤다.      

‘참 잘생겼다.’     

수정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 데 갑자기 벤츠 차량이 앞으로 나오더니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닌가! 수정은 창문을 내리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러자 벤츠 차량 조수석 창문이 내려지더니 젊은 남자가 상체를 조수석으로 내밀며 말했다.     

“입학식 오신 차량 맞으시죠? 여기 주차하세요. 제가 다 둘러봤는데 빈자리는 여기밖에 없어요. 대신 제가 그쪽 차 앞에 이중주차로 할게요. 저도 입학식 왔거든요.”     

입학식 차량에는 별도 임시출입증을 차량 대시보드 위에 올려놓게 되어 있었다. 수정은 젊고 잘생긴 남자의 말에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며 주차했다. 수정이 주차하자 젊은 남자는 수정의 차 앞에 가로로 주차했다. 수정은 차에서 내리기 전에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발랐다. 젊은 남자는 먼저 내려서 수정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수정이 차에서 내리자 그녀에게 다가와서 가지런한 건치를 보이며 살짝 웃었다. 수정은 그 과정에 남자의 건치뿐만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눈에 스캔하며 A+로 등급을 매겼다.     

“최고경영자과정 오신 거 맞죠?”     

“네.”     

“하하하. 이제 제 차를 빼주기 전에는 못 나가십니다. 항상 저를 따라다니셔야 해요. 하하하.”     

수정은 젊은 남자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질 수는 없었다.     

“호호호. 내가 누나일 것 같은데 그쪽이 오늘 내 보디가드를 하셔야겠어요. 잘 보호하세요.”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제 또래로 보이시는데 누나라고요?”     

수정이 좋아하는 말이었다. 그녀는 아들이 군대 가기 전에 최대로 어리게 보이는 말을 들었었다. 음식점에서 아들 옆에 앉고 남편이 맞은편에 앉아서 딸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장님이 남편을 보며 말했다.      

“아들딸이 아빠랑 참 많이 닮았네요.”     

순간 남편과 아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들이 음식점 사장님을 보며 말했다.     

“우리 누나가 참 예쁘죠?”     

“네. 미스코리아 나가도 될 것 같은데요.”     

음식점 사장은 너스레를 떨었고, 아들과 남편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사장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아들이 말했다.     

“우리 엄마예요. 누나 같은 엄마. 하하하.”     

그날 평가에 비해서 다소 박한 평가였지만 젊은 남자의 ‘또래 같다’라는 말이 나쁘진 않았다.     

“제가 또래처럼 보이나요? 그럼 그쪽은 제 아들뻘처럼 보이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제가 무례했다면 용서하십시오. 워낙 예쁘셔서 제가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네요.”     

“시간이 되었으니 보디가드 잘하면서 따라와요. 호호호.”     

수정과 상철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수정은 상철의 몸 전체에서 강한 수컷의 향기를 느꼈다. 겉으로는 강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여린 소녀 감성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뭐지? 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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