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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희 시인 Apr 12. 2022

詩4 난해시에 대한 소감

누구를 위해 그들은 시를 쓰는 걸까?

난해시에 대한 소감

                                  이은희



머리에 쥐날 것 같은 고통

그 난해함은 누구를 위한 창조물이었을까?

알아들을 수 없는 미지의 방언 같은 언어들이

쏟아진 채 뭉쳐 있는 종이들


추세가 그렇다지만

유행을 따른다지만


어찌 그들의 머릿속 언어들은 한결같은

힌트조차 없는 암호들의 나열인 걸까?


누구를 위해 그들은

시를 쓰는 걸까?



 - 이은희 시집 『아이러니  너』 中







<난해시에 대한 소감>은 2018년 8월 27일 썼던 詩이다.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다.

그날 도서관에 있는 나의  문창실 책상에서 시인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만큼은 유명한(?) 모 시인께 직접 친필 사인을 받은 시집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펼쳐서 읽다가 3분의 1 정도쯤에서 그만 덮어버리고 썼던 詩이다.


그분께는 이 詩가 당신의 시집을 읽다가 쓴 詩라고는 절대 말씀을 드릴 수 없었으나...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 시인이신데..

당연히 그분의 모든 詩가 그렇지는 않다.

시의 코드가 어쩌면 나와는 좀 맞지 않았을 뿐이리라.




언젠가 모 대학 문창과 교수님과 사석에서 차를 마신 적이 있다.

그때 그분께 들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학생들이 詩를 써오면 때론 당신도 이해를 못 하실 때가 있어서 그 학생에게 어떤 의미로 쓴 詩인지를 물으신다고.. 그러면 그 학생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했었단다.


참 웃픈 현실이다.

글쎄 누군가는 나의 가방끈이 모자라서 자신의 시를 어렵게 본다고 여길 수도 있으며, 혹은 시대에 뒤떨어져서 그렇다고 얘기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스타일에 만족한다. 

혹여 오해의 소지가 있어 밝히는 말이지만 뭐 나의 詩가 대단하다거나 내가 詩를 잘 쓴다고 생각하는 교만함은 절대로 아니니...

부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언어는 그림의 침묵으로부터 탄생했다.' 고 막스 피카르트가 말했 듯, 결국은 에서 파생되었으니 적어도 소통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때론 어려운 단어(관념어)를 넣어서 詩가 완성도가 높아지기도 것이다.

그러나 詩를 위한 난해함이 아닌 난해함을 위한 는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도 (화요일) 브런치의 글쓰기 약속 때문에 너무 급하게 올린 나의 글이 계속 수정을 거듭하리라고 생각을 한다..ㅠㅠ




추신.

2022년 4월 12일 화요일 밤이 끝나고 13일로 막 넘어가려는 찰나에...

그래도 오늘 벚꽃은 너무 아름답게 봄을 속삭여주더라.

오늘 낮에 찍은 예쁘게 핀 벚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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