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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r 15. 2016

"장미, 그리고 기상캐스터 (6: final)"

마지막 이야기


"마지막으로 저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무모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제가 그동안 해온 일련의 선택들에서 이미 느끼셨겠지만 말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그 다음  1월 겨울, 유럽의 그 어느 그림 같은 도시로 떠났습니다. 녀는 한국의 삶을 뒤로 하고 싶다고 여러 번 말하곤 했습니다. 그녀의 꿈, 오래전, 고등학교 때 품기 시작한 그 꿈을 언젠가는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왔던 그녀였습니다. 그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공유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제겐 이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그녀의 상상 속의 그곳을 꿈꾸며 말하곤 했습니다. 저라는 존재를 주변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에게는 저에 대해 자세하게 말해드렸다며, "선생님은 제게 더 이상 타인이 아니어요. 가족 같은 분이셔요"라고 언젠가 말해 준 기억 또한 또렷합니다. 겨울로 넘어서는 11월 초반의 기억입니다.


10월 16일, 그녀와의 대전에서의 만남을 가진 후, 우리는 더 잦은 연락과 이야기들을 통해 마음을 나누었고, 새로운 직장과 - 인맥이라는 그 자체를 가진다는 것이 제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그녀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사용하였습니다 - 그녀의 삶을 한 단계 높여 줄 대학원 진학 - 한국에서나 이런 개념이겠지만, 대학원 또는 MBA라는 학위가 신분상승의 한 축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 또한 거의 결실을 이루어 갈 때쯤, 그녀는 2015년 1월에 유럽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제게 갑자기 전해왔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온 일, 오랫동안 몇 년을 계획한 일이 우연처럼 현실이 되었다고 하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 결국 제가 도와준 것들은 당장은 소용이 없게 되었지만 그녀의 새 도전을 축하하였고 그리고 진심으로 지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아쉬움이 많았었나 봅니다. 제가 직접 그어 놓은 선을 넘지 않기로 했지만,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한 그녀에 대한 바람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떠난다는 소식을 그녀로부터 전해 들은 후 왠지 그녀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어짐을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치졸한 감정에 휘말렸다는 생각이지만, 그때엔 그리도 서운했었나 봅니다. 그 후 제가 연락을 자주 하지 않게 되었고, 제가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느껴서일까,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갔습니다. 떠나는 날에도 저는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왠지 제게 연락을 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그녀는 소설 속의 니나가 그랬듯이, 이번 해 겨울, 유럽으로 떠났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편지들, 그리고 문자들을 읽어보면, 간혹 짧게나마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표현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더군요. 초겨울, 그녀는 제게 한 문자를 보내주었습니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떠나요, 선생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특히 선생님에 대한 생각이 저를 많이 힘들게 해요."


그 당시 제가 Facebook 어딘가에 마구 적어 내려 간 글귀가 있더군요. 영국 가수인 Katie Melua 의 노래 중 "Close Thing to Crazy"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 중 "... feeling 22, acting 17..."이라는 부분이 있지요. 의미는 22살처럼 느끼나, 행동은 17살처럼 한다 -라는 의미로, 사랑이 주는 madness를 비유하는 가사겠지요. 이 당시 저는 "feeling 32, acting 25"라고 할까요? 참 어리석은 행동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애정/사랑의 한 면이기도 한 듯합니다. 이런 제 생각이 그 애가 유럽으로 떠난 후 Facebook 에 올려놓은 글을 통해 드러나더군요. 지금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해지도록 부끄러운 내용이며, 지금은 "나만 보기"로 해 놓았지만, 내용은 이랬습니다: "사무실 들어가기 전 독설 하나. 나의 '그 사람' 이 되는 여성은 (1) 한국 및 미국의 모든 Broadway musical 및 classical concert 또는 jazz concert 등등 같이 또는 기분에 따라 혼자 볼 수 있을 것이며, (2) 자주는 아니지만 잊지 않을 정도로 장미꽃 바구니 선물을 배달받을 것이고, (3) 그리고 영화, 음악,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 나눌 수 있을 텐데, 그리고 (4) 뉴욕에 가도 머물 교외에 위치한 집이 있을 것이고, 내 차를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며, (5) 불편하다면 Manhattan 에 위치한 호텔도 좋고,  (6) 한국에서도 이와 같을 것이며, (7) 맘 편하고 소박한 상가 분식점 음식부터 가격부터 질식되는 필경재 음식까지 아무 때나 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8) 마음이 참 편할 텐데. 그리고 이런 것들을 즐길 수 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잊지 않게 자주 기대어 주고, 길을 같이 걸어주고, 하루에 한 번은 연락해 주는 것이면 만족할 텐데, 왜 다른 곳을 보고 있을까? 이는 분명히 신의 주사위 게임일 듯." 


그 후 저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녀도 마찬가지. 이렇게 우리 인연은 거의 1년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open-ended 상태로 2015년 1월 겨울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그 아이는 선생님이 필요한 만큼만 가까이 지내다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떠난 것입니다"라고. 그리고 20대 후반 아이들은 거의 이렇게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말도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하지만 이 글에 옮기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우리만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제가 다가간 만큼 또는 그 이상이나 그녀는 제게 그녀 의 삶에 저를 초대하고 저만의 공간을 마련해 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생의 한 가운데"의 슈타인의 사랑을 따라 해 보고픈 생각이 마음속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고귀합니다. 그리고 이런 고귀하고 순결한 사랑 이야기는 중세기 프랑스 시인인 Guillaume de Lorris 의 작품인 "Roman de la Rose" 에도 등장하더군요. 이 시는 다음과 같이 흘러갑니다 - 벽으로 둘러싸인 장미의 정원을 들여다보는 어떤 한 사람, 그리고 그 정원 가운데에 위치한 분수대 위에 있는 수정 결정체에 반사되어 보이는 장미 한 봉오리의 이미지, 실체가 아닌 장미 봉오리의 이미지를 이 한 남자는 순결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동경합니다 - 영국의 석학인 C. S. Lewis (1898 ~ 1963)는 이 작품을 해석하면서, 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이와 같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가 사람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강렬하고 영원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때이며, 행여나 이 장미 한 봉우리를 손 안에 소유하게 되면 그 행복은 아마도 사라지게 된다 - 고 정의했답니다. 직접 인용을 하면, "Unattainability... the delight that never fades is only yours when what you most desire is just out of reach (원하는 것을 아무리 해도 잡을 수 없는 상태일 때 비로소 당신만의 꺼지지 않는 행복이 된답니다)." 이 이야기는 앤토니 홉킨스가 C.S. Lewis 역을 맡았던 1983년 영국 영화인 "Shadowlands" 에도 언급되었답니다.   

   

장미와 제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합니다. 하지만 열려 있는 결말 (open-ended) 같다는 느낌 또한 듭니다. 이런 인연의 결말, 어떻게 마칠 수 있을지, 아니면 열린 결말로 그대로 두는 것이 제게 있어 꺼지지 않는 행복으로 남을지? 가끔 10월 16일 그때와 같은 하늘을 볼 때마다 제 자신에게 이런 질문들을 아직 던져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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