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온다. 도망치고 싶지 않다. (1)

들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준다면

by 삶예글방

2025. 9. 25


삶예글방을 이끌고 있는 글방지기이자 삶예글방이 소속된 아쳅토라는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지기 나은입니다. 5월 10일, 브런치에 글방 친구들과 함께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고 4개월 하고도 보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오늘로 딱 100편의 원고를 쓰고, 모으고, 연재하였네요. 마흔 다섯 분이 구독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이든 언젠가부터이든 오늘부터이든, 삶예글방의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게나마 이 작고 소중한 축적과 걸음의 길에 자취를 남겨두고,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8월 초까지 글방 친구들과의 활동을 마치고 한 달 휴식에 들어갔던 9월입니다. 저 또한 그동안 써둔 원고도 모두 연재해버린 후 쌓아둔 글 없이 4주 동안 홀로 연재를 이어가며 외롭기도, 오롯이 상황에 마주하며 분투하듯 쓰기도 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주간 연재라는 약속이 없었다면 미루기 잘하는 저의 습성(?)으로 이어서 꾸준히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약속과 마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는 한 달 이었습니다.


어떤 글을 다음 기수에 써나가게 될 지 아직도 고민이고, 글쓰기 모임을 운영해나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완벽한 답을 찾을순 없더라도, 더이상 도망치거나 미룰수도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6개월이나 글쓰기 모임을 운영해놓고 이제서야 자격을 생각하게 되고, 또 앞으로가 두려워지는 건 무엇일까요? 스스로와 대화하며 함께쓰기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답니다. 망원동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는 책방 공간의 운영의 지속 방향에 대해서도 짙은 고민을 이어가고 있구요.


그렇게 저는 여러가지 삶의 지점에서 도망칠 지 우회할 지 마주할 지 갈림길 앞에 서있습니다. 그러던 중 오늘 한 편의 연극을 보고 왔습니다. 제목은 「파도가 온다 도망쳐라」 입니다. 아쳅토 책방의 독서모임, 심야북살롱에 오는 책 친구 도요, 인표 두 분이 각각 쓰고 연기한 창작극의 첫 공연일이었습니다. 미루기와 도망치기, 회피의 시기 답게 저는 시작 공연을 보고 와야지 삼 주 전부터 세워둔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연극을 보러 다녀올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전 날엔 독서모임의 단체카톡방에서 책 친구분들끼리 대화 중 오해가 생겨 다툼이 일어나 몇 분이 톡방을 나가시기도 했고, 저도 잠시 지구에서 나가고 싶었습니다. 편집 중인 영상을 덕분에 손도 대지 못했고, 오늘은 반드시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저께부터 저의 계획은 계속 틀어졌고, 예상치 못한 상황과 계획한 상황들이 어우러져 '해야할 일'을 할 시간은 계속 저와 멀어지고 있었답니다. 망연한 기분으로 자포자기해버린 채 보러간 연극이었습니다.


심지어 보러 가기 전에 몇시간이 있었는데도, 망원동 운동회에 후원 가게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보내야 할 자료를 정리하기도, 다음 달 운영 일정표를 정리해서 공지하기도, 어제의 포트럭파티 독서모임 후 여파를 완벽히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저를 계속 불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2시간 이내로 1차 목표한 일을 마치고 먼저 공연장으로 출발하려던 계획이 틀어져 따릉이 반납시간은 30분을 초과해버렸고, 영상 편집은 손도 대지 못했으며, 삶예글방 2기를 모집하기 위한 공지 준비도 전혀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괜한 오지랍을 부리고, 사치를 부려 지금 내가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일까? 자꾸만 생각이 들었죠. 심지어 마포구나 서대문구에 있는 줄 알았던 공연장은 알고보니 대학로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상 이동 시간의 두 배를 잡고 출발하다 보니 저녁도 먹지 못했습니다. 배는 고프고, 오늘 연재할 글조차 쪽글만 이곳 저곳에 써둔 채 초고조차 완성해둔 것이 없어 혹시나 글 쓸 시간이 있을까 싶어 챙긴 노트북을 가방에 두고, 저는 계속 달렸습니다.


땀은 온몸에 비오듯 내리고, 왜 나는 분주한데 이리도 느리고 밀리고 구멍이 나게 일하는 걸까? 원망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공연 오십분 전, 혜화역에서 내려 공연을 준비하고 올린 두 친구분께 드릴 편지와 꽃을 사러 가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역 앞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먹을까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식당은 못가더라도, 서서 5분정도만 떡을 주워 먹으면 배도 기분도 채워질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늘 쓰기로 한 예산과 시간을 헤아려보니 돈도 시간도 부족한 상황이더군요. 마른 목을 축여줄 정도로 가득 고인 침을 넘기며 꽃집에 가서 꽃 두 송이를 사고, 카페에 가서 두유라떼를 한 잔 마시며 편지를 썼습니다.


그렇게 가까스로 음료를 절반도 마시기 전에 편지를 다 쓰고, 공연 시작 전까지 7분이 남았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남은 음료는 눈물 머금고 큰 한모금 밀어 넣고 남기며 카페를 나와 달렸습니다. 공연장까지 500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마라톤때보다 부지런히 달려 무사히 2분 전에 도착했습니다. 러닝타임이 140분으로 써있었는데, 과연 그 시간동안 지루하지 않게, 졸지 않고 감상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앉자마자 노곤해지고 하품이 쏟아지더군요.



그렇게 공연은 시작됐습니다.


파도가 온다. 도망쳐라~





(2)편에 계속







나은 작가소개 최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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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