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의 마을

#1. 소문만 무성한 마을이었다.

by 삶예글방



어떻게 이런 곳에 마을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길고 긴 숲을 지나면 바닷가에서 배까지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마을. 한번 입주하고 나면 다시 나오는 세대가 좀처럼 없어 입주 자리조차 잘 나지 않고, 그 마을에서의 삶이 어떠한지조차 살다 나온이의 생생한 이야기조차 들을 수 없어 더욱 가려져 있던 선자마을. 퇴보한 문명이다라는 이야기와 아직 남은 유일한 낙원 같은 곳이라고 여겨지기도 했으며, 야만인들의 터전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다만 내가 알 수 있던 것 하나는,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일이든 삶이든, 역할이든.


여기까지 오고 싶진 않았다. 내가 가진 것을 너무 많이 내려놓고 왔다. 20년간 무엇을 위해 달렸는가. 후회가 가득 남는다. 아니다. 후회라니. 연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지 않은가. 무엇에 대한 후회란 말인가. 열심히 산 날들에 대해? 내 젊음과 체력을 다해 열정으로 일하며 일군 시간들을? 아니면 연이 그렇게 되기 전에 나와 석이 무엇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의 후회일까? 눈앞에 사철나무의 짙고 뾰족한 녹색 잎이 은은히 흔들리는 나무들을 지나고 나니 길도 같이 흔들리는 듯하다. 굽이진 길과 우거진 나무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하늘엔 어느새 주황빛이 되어버린 구름 틈새로 금빛 광선이 번쩍이며 눈에 쏟아졌다.


벌레를 먹는다고? 처음엔 놀랐다. 아니 사실이라고 믿을 수조차 없었다. 충식. 식용 곤충 산업의 수익에 의존하는 마을이었다. 이러니까 야만인들의 터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걸까? 곤충을 먹는 그런 일이 내 대에 이뤄질 줄이야. 그런데 이제는 곤충을 만지며 키우고, 키운 곤충을 죽이고, 그 죽인 곤충으로 음식을 만들고 파는 일을 해야 한다. 직군 교체가 자유로운 마을이지만, 그 자유 속에서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아주 좁았기 때문이다. 내가 해왔던 일은 석처럼 서울과 선자마을에서 통용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자율주행이나 AI는커녕, 인터넷까지 사용이 안 되는 마을. 물론 그 점 때문에 이 마을에 오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인터넷. 이 나라에서 인터넷이 없는 유일한 땅. 우리는 인터넷을 피해 이곳에 왔다. 이제 휴머노이드에 대한 연구도, 하다못해 고장 난 봇 수리조차도 할 수 없다. 내가 배우고 시간과 체력을 다 바쳐 달려왔던 일들. 그것들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마치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 사실 우리는 지금 과거로 가고 있는 걸까? 이 선택이 맞는 일인지 마을에 다가갈수록 두려운 마음에 손가락만 계속 꼬집어 뜯었다.


커피.. 커피 마시고 싶어.

이 마을에 커피가 어딨어.. 보온병에 넣어둔 물에 커피 향 리큐어 있어. 뿌려서 마셔도 되고.

진짜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50년 전과 같은 마을로 간다고 해서 멸종해 버린 작물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아니면 캐리어에 티백 있으니까 집에 도착해서 우려서 마시자.


마실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내뱉었다. 서울에서 일할 땐 커피도 하루에 한 잔씩 마실 수 있었는데. 이젠 꿈같은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잃는 것에 대한 저항에서였을까.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연을 향한 원망과 이렇게 많은 것을 내려놓고 가고 있다는 걸 너만큼은 알아달라는 생색과 인정의 요구를 품은 외침이었을까. 진짜 커피조차 마실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 아마 평생 값싼 원두 몇 알이 들어간 티백으로 우려낸 커피 향 차나 마시며 지낼 수 있겠지.


꽤 괜찮았다. 내가 하던 일은. 하는 것 이상으로 평가받는 일, 시간은 조금 투자해 큰 부가가치를 내는 일이었다. 물론 그 부가가치를 내기까지, 아니 내가 그 일을 할 권한을 갖게 되기까지 어떤 경쟁과 시험에 시험을, 관문에 관문을 통과해 왔는지 셀 수 없다. 그렇게 일할 수 있게 되고 나서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파견직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실험체로 쓰이고 버려졌는지는 셀 수도 없다. 그것들의 잔해가 또 얼마나 많은 폐기물 산을 만들어 냈을지도.


국가의 최우선 산업이 되고 나서부턴 -모든 제조업과 산업에서 초소형 산업용 로봇부터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휴머노이드, 건설 공사와 운송용 대형 로봇까지- 도시 자체가 거대한 로봇 공장화 되어갔다. 자연스레 좁은 땅엔 산업 폐기물의 잔해가 쌓여갔고, 재사용 가능한 부품을 수거하고 재활용해서 파는 업체들이 주요한 가치가 확인된 작고 비싼 부품들을 발굴해가고 나면, 썩지도 녹지도 않는, 불에 타지도 않는 것들이 계속해서 땅 속과 위에 함부로 쌓였다. 젊은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기 시작한 마을부터 차례로 폐기물 산으로 채택되어 갔다. 마실 물도, 땅에서 기르던 작물도 폐기물에서 나온 폐수로 오염되어 갔다. 자연에서 나고 자란 식물, 특히 바다와 하천에서 나고 자란 것들은 사람의 밥상에 오를 수 없게 돼버렸다. 어떤 순간부터는 국가가 되어버린 서울의 밀도 높은 인구와 세금을 내는 이들의 입김으로 인해 폐기 제한과 그린벨트에 대한 통제도 풀리기 시작했다. 보호에서 외면받아 버려지다 시피하는 지역들이 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넓은 땅과 곡물을 필요로 하는 축산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식수와 수산물이 부족해지자 곡물을 필수 식량으로 갖춰야 했는데, 축산업이 차지하는 면적과 필요한 자원에 사람이 먹어야 할 곡물보다 많은 양이 사료로 쓰인다는 점이 밝혀지며 축산업뿐 아니라 육식하는 이들에게까지 비판과 비난의 시선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가뭄 지역에서도 너도나도 시위를 하러 들고일어났다. 다음으론 커피와 소주, 맥주와 콜라 같은 기호식품이 희귀해지게 됐다. 커피 열매는 초고온과 초저온을 불규칙하게 오가게 된 이상기후 아래 더 이상 이전의 대표 산지에서 경작할 수 없게 되었다.



언제부터 출근이야?

내일부터.

바로? 한 이삼일이라도 쉬었다 출근하지. 짐도 못 풀고, 마을에 대한 학습도 제대로 못하고 바로 괜찮겠어?

출발 전에 입주 가이드로 온 책 두세 번 미리 읽어 뒀어. 오늘 자기 전에 한번 더 보고 자려고. 고등부 교사가 나 한 명이라 바로 가야 해. 직군 교체 신청한 전 담당교사가 오늘까지였다고 들었거든. 당신은 언제부터 출근하는 거야?

나는 일주일 뒤. 연이 생활도 챙기고, 나도 마음의 준비도 필요할 것 같아서 시간을 좀 벌어놨어.

그래. 잘 생각했어. 연아, 잘 적응할 수 있지? 쉽진 않겠지만, 우리 잘해보자.



일주일. 새로운 마을에 적응하기까지 나와 연에게 주어진 시간. 뉘엿하게 진 해가 슬그머니 땅으로 들어가며 어둠이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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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