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의 마을

#0. 프롤로그 | 서울을 떠나다

by 삶예글방



어디쯤 왔을까.



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세 시간이 넘게 걸릴 줄은 몰랐다. 물론 서울을 벗어나는데만 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만치 시간을 이동하는 게 얼마만인가. 십사-오 년 만이던가..


죽을 때까지 당연히 서울에 살 줄 알았다. 멀리 떠날 필요가 없었다. 일터와 집, 가족과 친구 모두가 이곳에 살았으니까. 모든 원하는 것이 이곳에 있었으니까. 어느샌가 점차 밀도를 키워가던 이 도시는 더 이상 몰려드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밀집도를 갖게 됐다. 결국 어떤 이들의 이해관계와 생존을 위한 투쟁을 거쳐 거의 서울이라 우기던 과천, 고양, 성남시부터 근교라고 불리던 안양, 수원, 용인, 의정부, 남양주, 하남시까지 그러니까 사실상 경기도 대부분까지 모두 서울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거대해진 도시, 아니 나라가 되어버린 서울을 오늘 떠난다.


슬슬 한계에 다다랐다.

가만히 자리를 지키며 안정을 유지하는 일에 지쳐가는 중이었다.


손바닥엔 땀이 가득해 축축했고, 흥건한 땀을 말리려 쉼 없이 쥐었다 폈다 한 덕분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쥐가 날 지경이다. 몇 없는 편한 옷 중 고른다고 골라 입은 터틀넥은 쇄골과 등줄기에 한 올 한 올 일어나 간지럼을 태우고, 메마른 차 안의 건조한 공기와 부딪혀 따끔하고 번쩍이며 정전기를 계속 일으켰다. 청바지 또한 문제였다. 두껍고 뻣뻣해 깁스할 때 씌우는 석고처럼 다리를 죄여온다. 오금에 피가 고여 발로 피가 가지 않는 듯하다. 차근히 발가락까지 저려오며 발목이 부어온다. 바닥이 자꾸만 조금씩 올라오는 것만 같다. 감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했다.


손과 발로 쏠리는 신경을 누르고 귀의 감각에 집중해 본다. 서로 다른 길이와 온도의 숨소리 세 개, 오른쪽에선 규칙적으로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앞쪽에선 느리게 들려오는 한숨으로 둘러싼 적막. 내비게이션 안내음만 불쑥불쑥 눈치 없이 명랑하게 울려댄다. 차 안의 고요가 묵직하게 머리와 어깨 위로 귓바퀴에 쏟아지며 물속에 있는 듯한 압력을 주고 있다는 것만 확인했다. 하루 종일 울려대던 알람도, 나를 찾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소음들이 모두 사라졌는데 내 귓속은 여전히 소란하다.


믿을 건 눈뿐이다. 매일 네 개씩 되는 화면을 노려보던 눈은 이제 흘러가는 회색빛 풍경만 홀리듯이 쫓고 있다. 온 힘을 다해 눈을 부릅떠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겨본다. 멀리 보면 조금 견딜만해질까 싶어서다. 정면으론 앞 좌석 두 개 사이에 역삼각형으로 보이는 탁색의 아스팔트 도로가,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나오는 콘크리트 다리가 이어진다. 이윽고 정신을 차려 다리 너머엔 무엇이 있나 보려고 할 때쯤 어김없이 진입하는 길고 긴 터널에 시선을 꽂다 보면, 몽롱해지는 눈을 감는다. 깜깜해진 눈꺼풀 안쪽에 비치는 초록빛 불에 울렁거려 눈을 뜨면 다시 도로가 이어진다. 내리 교차로 도로와 터널을 눈에 담다 보니 눈꺼풀까지 뻐근했다. 숨을 쉬고 싶다. 당장 내리고 싶다. 충동적으로 손잡이를 열고 싶어질즈음 안내음이 들린다.



마을 입구에 진입합니다. 자율주행 모드를 종료합니다. 30km 이하로 서행하십시오.



얼마나 남았어?


참다못해 앞자리에 보이는 석의 뒤통수를 향해 잠겨버린 쉰 목소리를 비스듬히 꽂았다. 차에 올라탄 지 세 시간 만의 첫마디였다. 곧게 접은 감색 셔츠의 커프스와 쥐색 니트가 흘러내릴 틈 없이 단정히 걷어올린 왼손은 단단히 핸들을 잡은 채, 오른손으론 휴대폰으로 무언갈 찾고 보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석의 차분한 머리칼이 내려앉은 목덜미를 향해.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을 들어 어디쯤 왔는지야 알고 있었지만, 이 적막을 깨고 싶었다. 그제야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라도 한 듯이 석은 화들짝 쥔 휴대폰을 내려놓고 뒤통수를 앞으로 향해 돌리며 대답했다.


이제 마을 입구 진입해. 도착까지 28분 남았다고 나오네.

입구에서부터 30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거야? 공기청정모드 좀 켜주겠어? 아니다. 내가 창문을 좀 열어볼까? 부산스레 손을 휘적여 창문 버튼을 찾아본다.

공기청정모드로도 충분할 것 같긴 한데.. 이제 산길이라 한기가 들 수도 있어. 춥지 않겠어?

날공기를 쐬고 싶어서 그래. 제한 속도에 맞춰 가니까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그래. 다들 괜찮겠어? 다들 괜찮냐는 물음에 아차 싶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연을 향한다. 가만히 대답을 기다린다.



말없이 옆에서 종이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후드를 뒤집어쓰는 연의 모습을 슬쩍 확인하고 룸미러를 통해 석과 눈빛과 끄덕임을 주고받은 후에야 검지 손가락을 눌러 왼쪽 창문을 열었다.


솨아아-


틈새가 커질수록 잔잔하게 울리는 숲의 소리도 함께 커진다. 이제야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본다. 눈을 감았다 뜨고 창밖을 바라보니 이내 뻐근했던 눈꺼풀이 촉촉해진다.


서울을 벗어난 이후로 240km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차가 30km 저속 주행을 시작했다. 자율주행이 안 되는 구역이라더니 정말이었다. 오래간만에 양손으로 핸들을 잡은 석의 팔 움직임이 분주하다. 금세 어둑해지기 시작할 텐데 산길을 따라 또 제한속도로 30분을 가야 한다니. 마을에 진입하고 나서 흐르는 시간까지 같이 제한이 걸려 느려진 기분이다. 풍경 하나는 정말 듣던 대로다. 원시림이 거의 그대로 보존된 유일한 산이 있는 곳. 차창 앞과 옆으로 끝없이 흘러내리듯 부딪히는 나뭇잎들, 틈새로 흐릿하고 뾰족하게 들어오는 햇빛들, 포장되지 않아 울퉁불퉁하고 좁은 도로. 평화로움은 잠시, 어디선지 모르게 갑작스레 날아와 볼에 무언가 타닥 하고 부딪힌다. 깜짝 놀라 손으로 볼을 만져보니 죽은 벌레의 한쪽 날개와 몇 개의 다리, 짙은 녹색 피가 손에 진득하게 묻어난다. 놀라서 고개를 다시 드니 벌레 떼 한 무리가 가득 차 창을 향해 몰아쳤다.


타다다닥-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앞과 옆 두 사람 모두 놀라 한 명은 차를 세우고, 한 명은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급히 틀어 멈춘 차 앞에 이끼가 가득 덮이고 겨우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녹슬고 삭은 표지판이 보였다.


선자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