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위기는 곧 나의 위기
2025. 8. 21
손이 아파서 잠이 깼다. 자면서 쥔 것도 없이 무언가를 꼭 쥐려고 애썼는지 손가락을 펴기 힘들 정도로 세게 부여잡고 있었나 보다. 손가락이 아파선지, 잡았던 걸 놓치며 깨서인지 눈을 뜨면서 눈물이 났다.
2025. 8. 1
지혈술이 잘 들었지만, 마취 없이 상처에 쏘는 레이저는 무지 깊이 따갑고 고통스러웠다. 2시간 뒤 북살롱, 독서모임이 있는데 도무지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앉아 있을 자신이 없었다. 수린에게 도움을 요청해 그날 오기로 한 책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갔다. 이렇게 갑자기 모임을 취소한 건 처음이었다. 아찔하고 속상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고 쉬어야 할 때였다고, 오히려 걱정했다고 말해주는 책 친구들 덕분에 조금은 덜 미안해하고 크게 고마운 마음으로 푹 쉬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미웠다. 힘을 내어 더 열심히 살아야 할 때 아픈 내 몸이 미웠다고 해야 할까. 아니 꾸준히 천천히라도 조금은 더 안정을 찾았어야 하는 일하는 나를 질책하고 싶었던 걸까.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미워하고, 주변 이들에겐 고맙고 미안한 마음의 큰 무게차로 쓰고 단 날이 이어졌다.
2025. 8. 21
피도 멈췄고, 조금만 앉아 있어도 아픈 배도 많이 나아졌다. 수술한 지 딱 한 달이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작은 산을 넘기게 해 줬다. 수술 후 누워있으며 읽을 책을 보내주는 글친구, 혈액순환되도록 마사지 도구 보내주는 책친구 덕분에, 하루가 모자라게 절대안정 할 것을 강력히 외쳐주던 동업자 수린 덕분에, 곁에서 오매불망 굶을세라 과일칸, 야채칸 채워주는 이 덕분에 배고플 틈 없이 나아졌다.
그 시간이 조금은, 내 생각보단 길어져서였던걸까. 그 새 나의 동업자에겐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상황도 마음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월간 회의를 할 겸 육아 중인 수린의 집으로 갔다. 나는 내가 생각한 이런저런 육아와 병행할 전략을 고민해 갔고, 플랜을 A와 B로 하나씩 꺼내 먼저 놓았다. 그 얘기를 차분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수린은 단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 마디 답을 건넸다.
저는 오늘 조금 무거운 얘기를 하려고 해요
맑게 갠 하늘에서 치는 날벼락
뜻밖에 일어난 큰 변고나 사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쳅토를 계속하기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 육아와 일을 계속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더욱이 둘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누군가가 돌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일에 일을 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조금씩 개어가고 있던 나의 몸과 마음에 벼락이 내렸다. 그것도 많이 갑작스럽고 슬픈 벼락이.
수린은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그리고 아쳅토 헤어살롱 고객들이 너무 떠올라서 슬프다고 얘기하며 계속 울었다. 나도 들으며 겨우겨우 참던 눈물을, 어떻게든 이어갈 수 있게 설득해 보려던 말들을 차곡차곡 쌓다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의연하게 답하려다 울었다. 우린 이야기하며 계속 울었다. 힘든 상황에 놓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라는 말에 나는 모든 붙잡을 힘을 놓아버렸다.
아이가 한 명일 때까지만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둘째가 생기니까 마음이 달라요. 파주와 망원을 오가며 일할 자신이 없어요. 나도 이렇게 바뀐 내 마음이 당황스러워요. 이 일을 평생하고 아픈 엄마를 생각하면 또 더 지금은 이 일을 놓고 싶어요. 언니에겐 너무 미안해요. 언니와 나에게 아쳅토가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그래서 끝까지 희망을 갖고 해 보려고 애썼는데, 그래서 혼자 한 달 넘게 고민했는데, 근데 안 되겠어요. 나는 결정을 내렸어요 언니.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언니가 더 무리해서 아프게 될까 봐 그것도 너무 걱정되어요. 나는 그것도 너무 힘들어요.
살아야 하는 애씀이니까. 그렇게 결정한 거니까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그가 살아야 하니까. 그런데 아쳅토는 내가 사는 이유인데. 나는 이것 없이 이제 못 사는데. 어떻게 해야 하니. 망연한 마음에 끝없이 나오는 눈물을 막으려 손수건으로 두 눈을 꾹 누르고 숨만 내쉬었다.
어제 북살롱에서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은 책 친구의 이야기가 초반의 담론이 되었다. 사회에서 마주하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바라본 후 이후의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고 계속 그 주제로 각자의 마음과 생각을 나누었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다른 친구분이, 자신의 책 이야기 차례가 끝날즈음 꺼내지 않고 품고 있던 질문을 조심스레 꺼냈다.
"고통의 당사자는 그럼 다른 이에게 너무 적나라하게 자극이나 혐오를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고통을 표현해야 할까요? 고통을 쓰고 그려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어려워지네요."
나의 삶에 일어나는 일을, 내가 느끼는 벽력 같은 고통을 어떻게 써나갈 것인가. 누군가에겐 너무 하찮을 수도, 누군가에겐 너무 버겁고 피곤한 일일수도 있는 나의 고통을 써 내려가는 것의 의의는 무엇인가. 그것이 누구에게 유익이 될 순 있을까? 도리어 같이 힘들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도 계속 같은 질문을 품고 조심스레 내 이야기를 써왔기 때문에 그녀의 질문이 깊이 와닿았다.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고, 하지만 쓰면서도 써도 되는가 고민한다. 쓰는 행위가 겨우 나를 숨 쉬게 하는데, 그런데 또 그 글이 누군가에게 불편을 줄까 봐, 상처를 줄까 봐 두렵다. 한강 작가님의 파란 돌 시가 생각난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들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지금 글쓰기는, 아니 아쳅토는 나에게 파란 돌이다. 이 상황을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 도망치고 싶은데, 죽고 싶은데. 이 소중한 공간과 친구들을 지키고 싶어서, 그 일을 즐거워하는 나를 지키고 싶어서 살고 싶다. 지키고 싶다.
수린을 만나러 가던 길에 박연준 작가의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를 읽으며 갔다. 내 인생이 정말 내 예상과, 편견과도 참신하게 다른 길로 흐르는 요즘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 제목이 더 끌렸나 보다. 오늘의 이상한 흐름에도 무너지지 말자며 미리 이 책을 약 바르듯 읽었다.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하는데, 너무 애쓰면 고통스럽다고 하는데, 지금의 나 같다.
애를 쓴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편히 두지 않는 일이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해 대는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일이다. 지혜는 고통이 사라진 후, 지나간 자리에서 태어난다. (⋯⋯) "지독함이 스스로 옷을 벗을 때까지" 사랑을 유예했다. 사랑이 다시 왔을 때, 나아졌다. 모든 면에서.
연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작가가 시를 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가장 애쓴 일들이 가장 잘 풀리지 않았다고 했다. 삶의 웬만한 것들을 적당히 타협하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려 한다고 한다. 특히 시를 애쓰며 쓰다가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고, 가려는 곳으로 언어를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고.
무슨 일이든지 애를 써서 잘 해내는 사람을 보면 두 가지 감정이 든다. 존경심과 안타까움.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존경심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워지는 것이다. 그는 누구도 할 수 없을 만큼 제대로 해냈지만, 해낼 테지만, 그 후 존재에 남는 흔적은 어떻게 하나. 간절함을 품고 행한 뒤, 존재에 내리는 것.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까? 지나치게 애를 쓰는 일은 사람을 상하게 한다. 찰스 부코스키가 한 명언이 있다. "노력하지 마. Don't try." 안심이 되는 말 아닌가? 나는 그의 말을 안달복달하지 말고 순리에 맞게 살라, 지나치게 애쓰다 상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사람이 상한다는 건 독해지고 비루해진다는 거다.
무엇이든(행동이든 결과든 선택이든 과정이든) 적당한 거리에서 숨 쉬듯 받아들이는 자세, '되는 대로 즐겁게' 해보려는 자세가 좋다. 숨 쉬듯 자연스럽다는 것.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 군대에서나 통용될 법한 이 말은 끔찍하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다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안 되니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니 '자살각' 같은, 끔찍한 말이 유행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생긴 모습 대로 사는 게 아닐까?
나는 산을 넘었다 생각할 때, 강처럼 보이는 바다를 만났다. 망망대해.
아아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떻게 가야 하나. 무엇을 타고, 누구와 어디로 향해야 하나.
내가 예상치 못하게 파트너가 떠나는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두 번째 통보를 듣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지만, 실은 절망적이지만. 그때도 그랬듯이 나에게 주어진 몇 개월의 시간. 흐르듯이 숨 쉬듯이 나에게 맞는 호흡을 찾고, 마음을 가다듬고, 올라타야지. 내게 오는 파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