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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한 단

Nujabes

by ACCIGRAPHY Mar 12. 2025




시금치 단을 풀 때마다 생각한다.


이건 누가 묶었을까?


멕시칸 마켓의 호세가 묶었을까 아님 마켓에 도달하기 전 유통업체가 묶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직접 농사지은 분의 손길일까 이런 생각을 한참 굴리며 흙 묻은 시금치를 헹구고 또 헹군다.


세상 모든 단으로 묶어 파는 채소들의 철심 박힌 그 빳빳한 종이 끈을 풀 때마다 도대체 이건 누가 묶었을까.


그 사람 어떻게 생겼을까 언젠가 한번 스쳐 지나간 사람일까 만에 하나 내가 아는 사람일까 아침에 어떤 마음으로 일하러 나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채소들을 묶었을까.


이런 철사 꼬임은 어디서 나왔을까. 어떤 꼬임은 시금치 한 자락을 무심히 쥔 채 얽혀있는데 이 사람은 그날 세세한 곳에 신경 쓸 힘이 없고 우울하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짓인가 나는 더 크고 화려하고 번듯한 일을 할 사람인데 왜 이걸 꼬고 앉아 있을까 생각하며 시금치 한 자락이 얽혀 들어갔건 말건 아무렇지 않았을까.


아침에 누자베스 노래를 듣다가 어제 풀어헤친 시금치 한 단이 생각났다.


Nujabes - Luv(sic.) pt3 (feat. Shing02)


오늘 내가 만든 모든 것들은 이 노래에서 파생했다. 반복해서 듣고 있는데 시금치와 누자베스가 내게 말했다.


"오직 너답게."


"어?"


"Authenticity is everything."


"응."


먹을 갈기 시작했다. 이미 갈려있지만 물을 좀 더 붓고 다시 갈았다. 그럴 필요는 없지만 매번 반복하는 행동이다. 동그라미를 먹으로 몇 번 그려줘야 태세가 갖춰진다. 동그라미란 그런 것이다. 리셋시키거나 강화시키거나.


너답게너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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