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1. 우리가 영국 집에 두고 온 제라늄은 지금도 잘 있을까.
우리가 영국에서 머물던 2020년 8월~2021년 8월까지, 초등학교 학생인 우리 아이들은 영국의 공립 초등학교에서 전면(정상)등교를 했다, 2021년 1,2월만 빼고.
2021년 1,2월엔 온라인 교육이 이루어졌는데, 그때 아이들의 mental health를 유지하기 위해서 학교에서 했던 것 중 하나가 식물을 길러 그 사진을 학교 자체망(평소에도 주말 과제가 그 망을 통해서 공지되고, 각자 부여받은 ID와 pw로 학생들은 그에 접속해서 과제를 업로드하곤 했었다.)에 주기적으로 올려 놓는 숙제를 낸 것이었다.
뭘 심을지 고민하고, 화분을 사서(우리 동네 근처에 잡화 및 문구 등을 파는 가게들에서 샀었던 것 같다. 다이소 같은 느낌의 가게였고, 다이소보다는 훨씬 작았다. 우리 동네에 있던 그런 가게들의 주인들은 정통 British들이 아닌 남미 계열의 사람들이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햇빛을 좋아한다기에 창가에 놓고, 싹이 나왔을 때 사진을 찍어 올리고, 또 싹이 나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은 Lockdown 시기에도 '관계'라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3월에 다시 학교 open이 되고 나서부터 제라늄에 대한 관심이 다소 줄어드는 건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말이다.
2. 축구
아이들의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After school)은 2021년 4월 Easter break가 끝난 이후부터 가능했다. 그 전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아이들의 mixing을 막는다고, 방과후 수업이 진행되지 못했었다.
아들은 클라리넷을 배웠고, 딸은 축구와 댄스앤드라마 수업을 신청했다. 특히나 축구의 종주국인 잉글랜드에서 하는 축구수업이어서 호기심이 일었었는데, 딸을 pick up하러 가서 수업 광경을 조금씩 볼 수 있었고, 남자아이가 더 많긴 했지만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축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보기 좋았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1900년대에 지어지고, 제2차 대전 때였나 조금 파손됐다가 수리해서 쓰이고 있는 건물이었고, 아스팔트로 된 넓은 학교 앞마당(운동장이라기엔 좀 좁은) 한켠에 스포츠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 말로 일상적 체육시간엔 학교 문을 나서면 바로 나오는 큰 잔디마당에서도 수업이 이루어진다고 했다.(그 잔디마당에서는, 매 학기 초마다 second hand sale이라 해서, 예전에 아이들이 입던 유니폼이나 신발 등을 1파운드에 파는 행사를 하곤 했고, 나도 아이들 교복으로 쓰이는 가디건을 1파운드에 사기도 했다.)
암튼, 축구 코치도 남자 코치와 여자 코치가 다 있었고, 수강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여자아이들이 좀 소수이긴 했지만 남자아이들과 똑같이 연습경기를 하고 공다툼을 하는 모습이 좋았다. 특히 딸이 돌파를 잘 한다고 코치한테서 칭찬을 받았던 날엔 축구의 종주국에서 축구로 인정을 받다니 하고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모이는 축구팀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딸은 어린이집 때 했던 축구를 하지 못하고 '생활체육'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아이들이 모이는 팀에 들어가기를 권유받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어린이집에서도 딸이 특별활동으로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니,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남자아이들의 거친 몸놀림에 우리 딸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가운데 딸의 강력한 열망으로 축구팀에 들어가긴 했었다. 실제로 딸이 축구공에 얼굴을 맞은 적이 있어서 그 이후에 축구에 대한 관심이 식긴 했지만, 영국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으로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축구에 즐겁게 참여하면서 아이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아주 즐겁게 축구를 했고, 요새도 왜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자기가 축구할 기회를 찾기 어려운지 아쉬워하곤 한다.
영국에는 텅 빈 넓은 녹지와 공원이 많아서, 어디서든 공 차는 남자 여자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고, 특히나 우리집을 비롯해서 집 안에 있는 마당에도 대부분 축구 골대 하나 정도는 갖추고 있던 집이 많았다.
우리 아랫집에 3형제를 키우던 집은, 주말에 그집 아빠의 진두지휘 아래 오전 내내 축구 연습을 하곤 했었다. 그집 아빠가 남편에게 "당신 아들이 피아노를 잘 치는 것 같던데 우리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우리 아들은 축구를 잘 하니 당신 아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줄게요."라고 제안하기까지 했었는데, 그 제안은 우리쪽이 미적대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했지만,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도 주말 아침 열심히 축구공을 차던 아랫집 3형제들의 활기찬 모습이 가끔 생각나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