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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May 18. 2018

블루보틀이 스타트업이라고?

50개 매장의 카페가 어떻게 대표적인 스타트업으로 불리는 걸까


매장 수 50개도 안 되는 커피숍이 7천억 가치를 인정받으며 비 테크 기업 대표 스타트업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아는 블루보틀은 핫플 카페이긴 하지만 스타트업이라니? 첨단 IT 기술을 사용하거나 우버처럼 시장을 혁신하는 기업 정도는 돼야 스타트업이라고 불리는 것 아닌가? 블루보틀은 어떤 이유로 비 테크 기업의 대표 스타트업이 되었는지 한 번 알아보자.



국내에 스타트업이 알려지게 된 것은 소셜커머스라는 이름으로 티켓 몬스터와 쿠팡, 위메프가 등장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 즈음 필자는 어렵게 창업한 카페를 프랜차이즈화 해서 하나 둘 가맹점을 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손님 같지는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우리랑 제휴 안 하실래요?"라며 자신의 회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런 영업을 일명 '막 영업'이라고 한다. 아주 초보 수준의 영업 방식으로 보통 아저씨들이 성의 없이 들어와서 일방적인 말을 하는 것인데 가게 주인들은 질색을 할 정도로 싫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20대 청년이 열정을 가지고 성의껏 이야기하는 모습에 호감이 갔고 결국 높은 수수료율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분당으로 영업망을 막 넓히기 시작한 스타트업 티켓 몬스터와 제휴를 진행하기도 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친구가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건 더 신선했다.)

 



전국에 매일 수십개씩 생기던 소셜커머스 1년안에 대부분 정리되고...



그 이후 하루에도 수십 개씩 전국에 소셜커머스가 생겨나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시장이 급성장했고 그 중 쿠팡은 창업 6년 만에 소프트뱅크를 통해 5조의 자산 평가로 투자를 받는 것을 보며 바로 이런 회사를 스타트업이라고 부르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외식업에만 종사했던 필자가 보기에 이런 시장은 남 이야기만 같아서 자금 압박에 투자를 검토할 때에도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처들은 알아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매장도 몇 개 없는 커피숍이 천억이 넘는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블루보틀 커피이다.



  

2014년 2차 투자 당시 투자자 구성. 인스타그램, 트위터, 우버, 플리커, 워드프레스 창업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창고에서 시작한 자영업자의 성공 스토리는 꽤나 흔한 스토리이기에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지만 내가 꽤 오래 종사해온 식음료 분야의 기업이 테크 기업을 주로 투자하는 회사의 투자를 받은 것이 신기했었다. 한국으로 치자면 매장이 3개인 프릳츠 커피가 100억 정도 투자받았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 진심으로)



반면 이제 스타트업을 운영한 지 3년 정도가 되어서 블루보틀을 단순히 카페가 아닌 다른 관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특히 어떻게 스타트업으로 인정받고 투자받은 지를 알 수 있다면 국내에 식음료 매장을 운영하는 스토어 기반 창업자들이 단순히 자영업자가 아니라 스타트업 대표로 인정받고 고속 성장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스타트업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하기 어렵지만, 보통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기업이자 혁신적인 기술을 가지고 폭발적인 성잠 잠재력을 가진 회사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는 '성장'에 초점을 맞춘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작은 식당을 창업한다면 자영업일 뿐이지만 이 가게를 통해서 제품을 개발하고 시스템을 구축해서 외식 창업 시장에 혁신을 일으키고 1만 개의 매장을 목표로 한다면 스타트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목표에 대한 의지만으로는 안된다. 크게 성장할만한 시장의 규모와 차별화된 핵심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국내 스타트업 중 가장 성공 사례인 배달의 민족은 초기에 IT 기술 따윈 없었다고 한다. 고객이 앱으로 주문을 하면 배달의 민족 직원이 전화로 매장에 주문을 넣는 시스템이었음에도 투자를 받았었다. 국내 배달 시장의 규모가 크고 하나의 앱에서 모든 배달 업소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문제 해결 방법에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민의 이 방식은 린 스타트업 방식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굳이 시스템에 투자하기 전에 시장 테스트를 먼저 진행한 것이니.



그런 측면에서 2015년 2조 3000억 달러(2,440조 원)인 세계 커피 시장은 거대한 시장이자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시장이며 특히 스페셜티 커피의 점유율은 제3의 물결 트렌드를 타고 급성장하고 있다.


세계 커피 시장 규모 추이


스타트업의 요소인 거대한 규모의 시장을 가지고 있고 아직 규모는 작지만 폭발적인 성장 가능성을 가진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을 시장과 투자자들은 스타트 업으로 보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단순한 커피 시장만이 아니라 커피를 재료로 하는 다양한 분야들에 대한 확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면에서 블루보틀 커피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이면서 동시에 커피 음료만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탁월한 브랜딩을 통한 팬덤을 바탕으로 다양한 수익모델을 구현하고 있기에 확장성이 높다. 그리고 이미 IT를 활용한 원두 서브 스크립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체계적인 매장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놓았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가치 평가를 받고 있다. 블루보틀 엣홈이라는 서브스크립션(정기 배송) 방식의 서비스는 점포와 상관없이 미국 전역에 블루보틀의 원두를 납품하는 것으로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을 안겨주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블루보틀 홈페이지 메인 첫 화면. 블루보틀 엣 홈


 

블루보틀이 투자받은 것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테크 기업들의 투자를 받으면서  “블루보틀은 테크 회사들 바로 옆에 들어서 있으면서 썩 괜찮은 커피를 팔기 때문에 투자를 받았다."라고 말한 칼럼니스트 케빈 루스가 대표적인데,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독일 최대 소프트웨어 회사 SAP의 팰러 알토 건물이나 트위터 본사 1층에 블루보틀 매장이 입주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비즈니스에서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실력인걸 부정할 수는 없지 않나. 블루보틀 커피의 투자자들은 유독 그러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IT업계의 거물 트위터 공동창업자인 에반 윌리엄스, 워드프레스 공동창업자 맷 멀런웨그, 락밴드 U2 싱어 보노, 배우 자레드 레토와 토니 호크,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등 개인 투자자들이 많으니 말이다. 어쨌든 블루보틀은 성장을 위한 투자를 받았고 이를 도약하는 기회로 현명하게 활용했다.



구글 스프린트 5일 프로세스. 블루보틀이 스프린트 첫번째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필자는 이중 가장 의미 있는 투자는 2012년 구글 벤처스의 2000만 달러였다고 본다. 이 시기 제임스 프리먼이 가장 고민하던 문제는 블루보틀 커피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경험시키고 싶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단순히 자금만 투자받은 것이 아니라 구글 벤처스와 함께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서 온라인 스토어를 만드는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마침 이 시기에는 구글 벤처스에서 5일 동안 집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스프린트(SPRINT)라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서 실험하던 시기였다. 2012년 12월 오프라인 경험만을 가지고 있는 블루보틀 직원들과 온라인 소프트웨어 문제만 해결해왔던 구글 벤처스의 팀이 함께 블루보틀 커피의 온라인 스토어를 만들기 위한 스프린트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고객 경험을 온라인에서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2년간 다양한 테스트를 거친 후 위에 언급한 블루보틀 엣 홈 서비스를 출시하게 된 것이다.



십여 년간 '48시간 이내 로스팅한 최고의 원두만을 제공하는 것'을 지켜온 철학을 바탕으로 점포에 구애받지 않고 미국 전역에서 블루보틀 원두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이후 블루보틀은 MIT와 함께 드리퍼와 커피 필터 등을 자체 개발하여서 누구나 최고의 커피 경험을 고객이 할 수 있도록 하였다.  

MIT와 함께 개발한 드리퍼와 대나무 펄프가 들어가 나무 냄새가 커피에 베이지 않는 필터


블루보틀은 확장을 위한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집에서도 매장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도구로 레시피대로 원두를 내리면 신기할 정도로 동일한 커피를 즐길 수 있다.



결국 블루보틀은 창고 구석에서 시작한 자영업자일 뿐이었지만 창업자의 철학을 지켜가며 어려운 시기를 견뎌왔고 그 결과 좋은 투자자들을 만났으며 그 투자금을 보다 나은 커피 경험을 위한 곳에 사용함으로써 브랜드 확장성을 높여왔으며 거대한 커피 시장에서 그 영향력을 미치게 되면서 향후 전 세계 커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로켓 스타트업이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회를 배송한다거나 신선한 돼지고기를 유통하는 스타트업들이 투자를 받고 있다. 기존 산업의 영역을 넘어 시장에 변화를 주고 혁신할 수 있는 기업들이 투자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필자가 사업을 시작한지 12년이 되었는데 최근 몇년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다. 모바일 혁명, 곧 다가올 AI와 IOT혁명은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던 식음료 산업에도 커다란 혁신을 일으킬 것이라 생각한다.






자영업자의 사업 정리를 도와주는 스타트업을 하고 있는 필자의 특성상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스토어 비즈니스를 하는 분들은 사고를 매장에 한정지어서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운 적이 많다. 이전에는 매장 하나를 성공시키면 프랜차이즈로 키우는 것 밖에 성장 방법이 없었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다. 카페라면 원두 정기 배송, 자체 MD 개발을 할 수 있고 식자재 유통,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확장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여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시대이다.


제임스 프리먼이 별 재능도 없던 음악을 그만두고 첫 직장에서도 쫓겨나 월세 60만 원짜리 창고 구석에서 초라하게 블루보틀 커피를 창업한 것이 15년 전 일이다. 지금 스타벅스 대항마로까지 불리는 블루보틀이 그렇게 시작했다면 지금 아무리 초라해 보이는 우리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지 않을까?





블루보틀 책에서 못 다한 이야기



#1


블루보틀이 도자기 장인 이이호시 유미코와 컬래버래이션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고의 브랜드 전략을 선보이는 #블루보틀의 콜라보 전략을 살펴보자.



#2


스타벅스가 블루보틀에 긴장해서 하워드 슐츠가 회장에서 물러나서 리저브에 집중한다고 했다고?

이상하네 #블루보틀과 스타벅스는 다른 것을 파는데?

공간을 파는 스타벅스와 커피를 파는 블루보틀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달라서 둘을 나란히 경쟁자로 비교하는 것은 어려워보여.



#3


카페가 스타트업이라고? 게다가 50개 매장으로 7천억의 자산가치로 네슬레에 인수되었다?!

#블루보틀이 왜 스타트업인지 한번 알아보자.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

블루보틀의 탄생부터 매각까지의 이야기,  카페가 스타트업이 되어 가는 과정, 세계 커피 전쟁에서 블루보틀의 위상등 브랜드 전략에 대해서 압축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북저널리즘 시리즈 18번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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