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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ri Sep 22. 2024

선플보다 악플

  고등학교 때 학교생활이 너무 힘들어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는데 ‘귀찮게 됐네…’라는 표정으로 저에게 하신 말씀이 “너 중학교 때도 이랬니?”였습니다.


  교사는 매년 교원능력개발평가라는 이름으로 학생과 학부모, 동료 교사에게 평가를 받습니다. 9개의 좋은 말이 있어도 1개의 나쁜 말을 보면 그 말이 뇌리에 박혀 꽤 오랫동안 힘듭니다.


  두 개의 양파를 세팅해 놓은 다음에 한쪽에는 좋은 말만, 다른 쪽에는 나쁜 말만 했을 때 좋은 말을 들은 양파는 무럭무럭 자라고 나쁜 말을 들은 양파는 색깔이 변하고 싹도 기괴하게 자랐다고 합니다.

 한때는 이 실험 결과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학생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아침마다 책에 나온 좋은 구절이나 명언을 주저리주저리 읽어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건 조˙종례를 빨리 끝내주는 것인데 말이죠….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어서 전체를 대상으로 할 때는 중요한 말만 짧게 하고 최대한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많이 마주쳐 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아도 학생들은 선생님이 "야" 또는 "너"라고 자신을 불러주는 것보다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유독 사람들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데 매일 자리표를 들고 다니면서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기 이름을 외우는 암기 팁도 알려주고 매일매일 "선생님 제 이름이 뭐게요?"라고 퀴즈도 내줍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부모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것은 부모에게 자신의 잘잘못을 가려달라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호응해 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상담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분의 상담 스타일은 학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할 뿐 “잘했다”, “못했다”라는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에 “음~”하면서 잘 듣고 있다는 리액션을 줍니다.


  저는 학생들과 상담할 때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기보다는 ‘이 말로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말이라는 게 아무 힘이 없어 보이지만 한번 입 밖으로 나가면 주어 담을 수 없을뿐더러 그 말을 들은 사람을 평생 괴롭힐 수 있습니다.


  때론 100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스킨십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설교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아이의 말에 끄덕여주고 토닥여주는 게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니까요….

 

   사람은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이라도 상처가 되는 말이 다릅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아무 생각 없이 “네가 음악 안 하고 공부했으면 농대라고 갔을 줄 아니?”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까지 제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있어 한 번씩 울컥하는 것처럼 내가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돌덩어리로 쌓이고 쌓여 가라앉아 버리게 할 수 있습니다.


  여학생이건 남학생이건 설교 듣는 것을 싫어하지만 남학생들이 특히 더 설교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남자아이들의 경우 화를 낼 때 같이 큰소리로 화를 내면 감정의 골만 깊어집니다. 내 행동에 상대방이 반응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 행동을 더 하게 되는 것처럼 그때는 차라지 화가 풀릴 때까지 아무 말 않고 기다려 주는 게 좋습니다.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행동도 결국에는 관객의 반응을 봐가면서 합니다. 공연자가 원하는 관객의 반응을 얻지 못하면 공연자는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멈춥니다.


  99마디의 좋은 말도 나쁜 말 한마디에 힘을 잃습니다. 나에게 좋은 말이 상대방에게는 잔소리고 지나친 간섭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 중에 스며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계야말로 천천히 스며들듯이 진행해야 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보다 내 말 수를 줄이고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만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을 때는 그냥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충분히 존중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선생님들이 부러웠습니다. '나도 교원능력개발평가 전에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뿌려볼까?', '아이들에게 점수를 잘 주라고 부탁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만뒀습니다.

 좋은 선생님이란 아이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아니라 아이가 본인 스스로 '나는 잘났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답을 던져주기보다 아이 스스로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떡밥을 많이 던져주는 사람이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좋은 부모가 아이에게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점수에 얽매이면 선심성 공약과 선물공세를 남발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잘한 건 칭찬해 주고 잘못한 건 바로 잡아야 합니다. 다만 '내 말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는 알고 던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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