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반 회장, 부회장들과 학생자치회 임원들을 데리고 대의원회를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회장이 청중에게 의견을 내라고 말하는데 아무도 의견을 내지 않아 회의장에는 적막감만 흘렀습니다. 그때 한 용자가 당당하게 본인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터무니없는 의견이라고 생각했는지 ‘너는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니?’라는 눈빛으로 그 아이를 쳐다보더군요. 그 뒤로는 학생들은 더더욱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회의를 진행할 때 현실 가능성을 떠나서 본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 한 명씩 마이크를 쥐어주며 본인의 의견을 말하게 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다가도 이내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합니다. 안 시켜서 그렇지 시키면 잘합니다. 의견이 없는 게 아니라 의견을 안내는 거더군요….
학생들에게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물어보면 많은 아이들이 “저는 꿈이 없어요”,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라고 답합니다. 처음에는 그 말 그대로를 받아들여 본인들이 뭘 할지를 몰라서 그런 대답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로 수업 시간에 최대한 직업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던져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살짝 바뀌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한다고 말하기에는 성적도, 능력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년부터 작가가 돼보겠다고 열심히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써서 출판사에 투고를 했습니다. 결과는 예상하시는 데로 올반려를 받았습니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아직 네 이야기로 책을 내기에는 너무 어리다”, “재미없다” 등의 말을 들어 그 뒤로는 "더 이상 글 안 쓴다."라고 말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남편 몰래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간혹 부모님 중에 자녀의 현재 상태는 생각하지 않고 이상을 강요하는 분이 계십니다. 하루는 학부모 상담을 하는데 "우리 아이는 과학고를 갈 거니까 선생님께서 누가 봐도 이 아이는 과학에 재능이 있는 아이구나 할 정도로 생기부를 써주세요"라고 요청했습니다. 제가 살펴본 그 아이는 공부를 못하는 것은 아니나 과학, 수학 과목의 성취도가 과학고에 진학할 정도로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이도 그 과목 공부를 좋아서 한다기보다는 엄마가 하라고 하니까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 조용히 그 아이를 살펴보면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기보다는 자리에 앉아 조용히 소설책을 읽는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아무 말 안 한다고 의견이 없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일 반응이 싫어서 안 하는 것입니다.
"나 이번에 뭐 해볼 거야"라고 말하면 "니 주제에 너무 큰 꿈을 꾸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자라나는 새싹을 잘라버리거나, 반대로 "넌 할 수 있어. 엄마는 너 믿는다"라고 과도한 기대를 보여주며 아이가 그 기대에 짓눌리게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 아이가 다른 사람과는 말을 잘하는데 나랑만 말을 안 한다면 ‘내가 과도하게 아이의 의견에 태클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애들도 눈치가 있어서 말이 통할 것 같은 사람하고만 대화를 합니다. ‘소귀에 경 읽기’라고 말해봤자 들어주지 않고 본인말만 주야장천 하는 사람에게는 “네, 네”라고 대답만 할 뿐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저는 질문이 많고 의견이 많은 아이로 기르는 게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하고 의견을 많이 내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의견을 내더라도 타인으로부터 비판받지 않을 것이라는 안전감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교실이건 집이건 와글와글하며 자유롭게 수다 떨 수 있는 곳이 건강한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안 되고 허무 맹랑한 의견도 잘 수정해서 수용가능 범위로 들어오게 만들어주는 게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돼”가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이런 게 힘드니까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라고 말하면서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다듬어주면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며칠 전 진로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요즘 청소년들은 어떤 게 고민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한 아이가 자신 있게 "엄마랑 대화가 안 통하는 거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아이들은 꿈은 많지만 경험치가 적어 실현 가능성을 잘 가늠하지 못합니다. 돈키호테 같다고 할까요… 그래도 세상은 돈키호테가 있기 때문에 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산초 판사만 있으면 세상이 너무 삭막해질 것 같습니다.
"안돼"라는 말만 하면 아이는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반항하거나 회피하지만 왜 안되는지 이유를 알려주면 해법을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물론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귀찮고 힘든 일이지만 그런 경험이 쌓여야 아이는 원석에 가까웠던 자신의 의견을 잘 다듬어서 보석 같은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