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차별화(가치)는 내 인생의 화두
초기 투자비용은 줄였지만, 이제 준비된 컨텐츠와 서비스력으로 가급적 조기에 단골을 확보 하지 못한다면 흔히 하는말로 권리금 주고 중심상권 들어간 것만 못한 꼴이 될 수 있었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까페가 오픈되기 보름전부터 우리만의 색깔과 고객 층을 고려 한 에스프레소 블랜드를 포함 당시로서는 비교적 동네상권에서 보기 어려웠던 다 양한 핸드드립 커피 그리고 판매용 원두, 수제 디저트류등을 개발해 메뉴화 했다. 수십번에 걸친 블랜딩과 시음, 커피를 포함한 다양한 음료라인의 레서피와 데코등을 숙달반복을 통해 마무리 한 후 메뉴판을 만들고 서비스원칙과 세부지침등을 정리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매일 매일 우리 스스로가 직접 만들어내는 컨텐츠들로 기뻐했고 의욕도 샘솟았다. 까페 인테리어 가 완성될 무렵 새 기계들과 집기들이 세팅되기 시작했고, 대구에서 올라와 준 커피동료들 덕분에 일들이 더욱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기대되었던건 새로 산 로스 터기에 첫 생두를 넣고 로스팅을 할 때 였다. 하얀 연기를 내 뿜으며 검은색 원두가 모습을 처음 드러내었을때를 잊을 수가 없다. 보통, 까페의 경우는 특별한 홍보활동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 지만 피자나 치킨집처럼 배달을 하는 경우도 없고 또 까페의 특성상 사람들이 식사전후 들 러서 커피한잔의 여유나 사람들과의 만남의 목적으로 오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입소문으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가급적 오픈전후 초기에 우리 까페의 장점을 알려서 많은 고객을 확보해 놓아야 그들 중 상당수를 단골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난 동네고객들의 정보 즉 전화번호 DB를 얻 고 싶었다. 그래서 수시로 새로운 품종의 커피정보나 이벤트 정보를 간편하게 고지하여 고 객과 소통하고 가급적 빨리 BEP를 앞당겨 운영의 정상화를 노리려 했던 것이다. 그 첫번째 일환으로 4천세대 아파트에 전단지를 배포하는 것이였다. 우리의 전단지는 철저 하게 고객DB를 얻기위한 목적으로 꾸며졌다. 또 까페의 이미지를 고려 단순정보 나열식이 아닌 스토리가 있는 칼럼형식으로 꾸며져 거부감이 없도록 하였으며 커피를 포함 고급 화장 품이나 스포츠 용품등 다양한 협찬상품을 준비하여 까페내 응모함에 개인의 연락처를 반드 시 기입후 응모토록 해 추첨후 상품을 드리도록 하였다. 그렇게 해서 1년만에 약 500여명 의 고객DB를 확보할 수 있었고 2년만에 1000여명의 DB를 확보하였다. 이 DB는 차후 요 긴하게 마케팅 목적으로 활용되었다. 전단지돌리기를 하면서 생긴 헤프닝도 있다. 우선 아 파트 4천세대와 주변상권을 다 돌려면 약 5천부가 필요했는데 업체를 활용하면 손실률이 많아 직접 돌렸다. 낮에는 경비아저씨들 때문에 돌릴 수가 없어 주로 밤을 이용했는데 테이 프로 꼼꼼하게 집집마다 붙이려다보니 3일을 꼬박 새벽내내 돌려야 했다. 나중에는 경비아 저씨들한테 발각되어 붙인걸 도로 뜯어내야 하다보니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량위 와이퍼위에 꽂았다. 세상에 지하7층까지 아파트 주차장이 있는곳은 난생 처음 보았다. 엄청난 규모였고 정말이지 알바로 돈받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였다. 역시 내가 좋아서 하는 나의 일은 이렇게 없던 에너지도 생기게 한다는 걸 다시한번 느꼈다. 또 하나 우리에게 중요한 홍보포인트는 바로 인접한 초등학교였다. 2월말쯤만 되도 3월초 개학을 앞둔 학무모들이 학교를 왕래하는 일이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년까지만해도 이곳 근처에 적당한 까페가 없어 불편해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터라 현수막을 학교입구와 주변 곳곳에 붙이고 커피콩을 예쁘게 포장하여 전단지와 함께 등하교길을 이용 어머니 들과 선생님들께 배포를 하였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꼭 오시겠다고 밝은미소로 화답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보통 학부모들은 자식이 중학교만 들어가도 잘 모이질 않는다.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그렇다. 초등학교의 경우 1학년부터 3,4학년 엄마들이 가장 모임이 활발하다. 그래서 새학기가 시작되는 무렵에 새로운 학부모들에게 까페정보를 알리 는 것은 중요하다. 나도 처음엔 고학년 엄마들이 자연스럽게 저학년 엄마들에게 정보를 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학년간 엄마들끼리의 소통은 원할해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시간 이 걸린다는 의미다. 또 하나 우리의 전략중 하나는 원두판매 확장에 있었다. 원두판매는 매출과 이미지제고 차 원에서 우리에겐 아주 중요한 과제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인테넷 판매가 그리 많지 않았기 에 가까운 지역사회에서 원두를 구매할 확률이 높다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로 영업초기에 우 리 커피에 대한 인지도와 맛 그리고 신선도등을 빨리 어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진행 했던 아이디어 중 하나가 선착순 100명 고객을 대상으로 드립세트를 선물하고, 내방 고객 들에게는 무료 시음코너를 통해 매일 3종의 스트레이트 커피를 드실 수 있도록 마련 한 것 이다. 드립세트 선물은 경우에 따라 남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원두시장을 키 우고 익숙지 않은 드립커피에 대한 이해도를 올려 궁극적으로 우리의 원두를 구매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선은 우리 커피에 대한 자신감과 노력이 수반되어 야 함은 두말 할 것도 없다. 두 번째로 무료시음코너는 까페밖에 서성이는 많은 분들이 보 다 편안하게 까페안으로 들어오게끔 한 의도가 깔려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까페는 사람들 이 목적성을 가지지 않는 한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난 까페밖 입간판에 큼직막하게 적어 놓았 던 것이다. “ 그냥 가지마시고 무료시음 코너에서 커피 좀 드셔보세 요^^ ” 이 두가지 전략은 생각보다 좋은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이런 홍 보활동을 하는 까페를 본적들이 거의 없었고 무엇보다 신선했기 때문이다. 그 때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국의 주요 드립커피 전문점들을 찾아 다니곤 했다. 지금이 야 흔해져가고 있지만 2009년도 까지만해도 중심상권은 대부분이 에스프레소 위주여서 서 울만 하더라도 부암동의 클럽 에스프레소나 삼청동과 성북동 주변 구석구석을 찾아야 겨우 드립커피를 맛 볼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나처럼 아파트 상권으로 찾아들어와 소위 스페셜 티 커피를 선보이는 분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그래서 우리는 행운의 커피를 준비했다. 이것은 오늘의 커피라는 프로그램을 변형한 것인데 그날그날 신선한 스페셜티 드립커피를 선정하여 서비스하는 것 까지는 같았으나 행운의 커 피를 주문하신 분에 한해 행운권을 드리고 응모케 한 것이다. 한달 후엔 추첨을 통해 커피 원두와 다양한 상품을 증정하니 반응이 좋았다. 행운의 커피라 하니 웬지 행운이 올 것같은 기대감과 그날 볶은 신선한 드립커피가 조화를 이루다보니 아무리 비싸도 잘 팔렸다. 더욱 이, 행운권 뒷면에는 커피와 관련된 간략한 맛의 특성들이 적혀져 있어 처음 드시는 분도 쉽게 해당 커피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어쩌면 로스터리 까페는 에스프레소와 더불어 드립커피와 원두판매까지 자기색깔을 보여주 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빨리 그 까페만의 독특함과 차별화를 보여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 다. 어쩌면 오랜기간 마케팅 광고 영업을 해 오면서 귀가 닳도록 들어 온 차별화의 강박이 이런 아이디어들을 만들어내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다. 그 외에도 까페내 쿠폰함 비치라든 지 리필서비스를 포함한 다양한 구매 혜택서비스를 만들어 높은 커피가격에도 불구하고 저항없이 손님들이 찾아오게 만들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사전리허설을 통해 숙지되고 완성되었는데 음료계산부터 아주 작은 딜 리버리까지도 풀서비스를 원칙으로 한 우리 까페는 그만큼 바리스타의 순발력과 커피메이킹 실력이 탁월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면에서 우리 직원들은 훌륭했다. 비록 11평도 채 되 지 않은 동네까페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가슴속엔 저마다의 비전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