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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cha Feb 18. 2022

내 인생도 소설이다

1화-청량리 부루스

이라고는 평생 몇 권 정도 읽은 내가, 더구나 책을 안 읽는 이유가 내 정체성을 훼손시키기 때문이라고 궤변을 늘어놓던 내가...


어느 날부터 글이 쓰고 싶어졌다.

가끔 술 마시다 "시" 비슷한 것을 끄적이던 습관이 있기는 했다. 나는 뭐 글 쓰는 게 방식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글을 쓰기 위해 공부해야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요즘 들어 이 부분은 조금 후회하기도 한다.


전문분야 몇 가지가 있어서 그 분야를 연재해보려고 시작한 글쓰기인데 그 주제와 병행하여 약간의 외도를 해보려 한다.

장르를 떠나서 쓰고 싶은 내용이 생길 때마다 "글은 이렇게 써야 되고 주제는 이래야 돼" 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사실 뭐가 어떤 장르인지도 모르지만...


막상 쓰려다 보니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그 의미만 전달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남들이 볼 것이라 생각되니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다.

그래도 스트레스받지 말고 꿋꿋이 내 방식대로 써보려 한다.


"내 인생도 소설이다"편은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에피소드식으로 쓸 예정입니다.


프롤로그

어릴 적에는 특별함을 가진다, 나는 특별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조차도 모든 것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지금 내 모습은 과거의 내가 만든 "나"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주문진 2022년 겨울

파도가 치는 방파제에서 파도의 흔들림을 느낀다, 눈에 보이는 파도보다도 내 생각 속의 파도가 더욱 크게 흔들거린다, 사람들의 인생은 나이가 들어서도 기억에 남을 과거의 큰 충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큰 파도에 휩쓸리듯이...


 또한 내 평생이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파도에 휩쓸려 동화가 아닌 영화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서울 청량리 1986년 겨울

588번지의 붉은 조명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낯 뜨거운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걷고 있는 학생들에게 말을 거는 아가씨들

“놀다가” 반복되는 아가씨들의 농 섞인 말들에 발걸음을 빨리 하는 의 뒤로 친구 하나가 팔을 낚아챈다.

“야 명진아, 저 아가씨 우리 초등학교 동창 옥선이 같은데.. 잘 봐봐”

뒤를 돌아 쳐다보니.. 옛날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아이 옥선가 서있다. 그 순간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과거의 그 시절이 오버랩된다.

 

#서울 답십리 1977

잠을 자다 깬 나는 지난밤 꿈속에서 본 어느 소녀의 얼굴이 떠나지를 않는다.

며칠 전 집중해서 읽은 성인소설에서 읽는 내내 얼굴을 상상하면서 사랑했고 아파하면서 몰입했던 여주인공 얼굴이다.

그 여인의 얼굴이 꿈속에서 소녀의 얼굴로 나온 것이다.

오늘 나는 3학년 새로운 학급이 시작되는 날이라 학교 갈 준비 하면서도 그 아이의 얼굴이 걷는 내내 생생하게 떠오른다.

 

#서울 학교 1977년 봄

새로운 학급의 문을 열고 배정받은 자리로 앉아서 같은 학우들이 된 아이들을 쳐다본다,

그런데... 그 소녀가 앉아있다.. 그 소설 속.. 그 꿈속의 그 아이가..

그 아이의 얼굴이 큰 파도처럼 나의 눈을, 마음을 사정없이 뛰게 만든다.

천진했던 그동안의 나의 일상이 떠나가고 정해진 운명의 시작을 직감하면서 나는 새로운 인생이 커다란 파도 안에서 이끌리는 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예감했고 가슴이 뛰었다.

단지 그 아이 하나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나타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 청량리 1986년 겨울

옥선이가 나를 부른다

“학생 놀다가” 초겨울이지만 영하인 날씨에도 불구하고 빨간색 깊이 파진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나의 팔을 잡으려 한다, 나는 얼굴을 쳐다보는 그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팔을 안 잡히려 뒷걸음치면서 말을 한다.

“어... 저 학생이에요 “ 그녀가 재차 나를 잡으려 하면서 말한다. ”학생은 고추가  없냐.. 나랑 연애하고 가.. 으응 "... 그 순간 그녀를 자세히 보았다, 분명히 옥선이다, 그 소녀의 얼굴을 한 그녀는 옥선이가 틀림없다.

내가 미친 듯이 좋아했던, 아니 사랑이라 말할 수 있었던 내 첫사랑 옥선이가 틀림없다.

왜 이 아이가 지금 이 모습으로 나에게 나타난 것인가... 불과 10년 만에 그 아이는 다른 냄새와 느낌을 가지고 나에게 다시 왜.. 나타난 것인가?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고 유혹하지만 그 순간 이미 나는 과거로 들어와 있다. 나의 가슴을 짓이고 떠나버린 10년 전의 기억이 다시 오버랩된다. 운명이라 느꼈던 그 시간으로..

그리고 문득 동시에 다시 시작되는 운명을 예감한다.

 

 #서울 학교 1977년 봄

복도를 걷다 저만치 걸어오는 옥선이를 보며 숨을 참는다, 그 소설 속과 꿈속의 그녀가 오버랩되어 있는 그 아이는 이미 내가 어떤 방법으로도 빠져 나 갈 수 없도록 만드는 존재가 된 것이다.

새 학기가 이미 한 달이 흘렀고 매일 아침에 나는 마치 전쟁을 치르러 나가는 병사와 같은 심정이다, 옥선이를 꼬셔서 내 여자 친구로 만들 100가지 방법을 생각했고 매일 그 아이를 보면서도 그 거지 같은 100가지 중 한 개도 못하는 나를 볼 때마다 말과 행동이 아니라 투명인간인 마냥 마음으로만 실행한다.

“옥선아 넌.. 내 이상형이야.. 너를 꿈속에서 보았기 때문에.. 너를 만나기 전인데, 그래서 넌 내 거야”라고

내 마음속에서는 “옥선아 쥐포 한번 먹어볼래”.. “옥선아 옥선아.. 수 없는 옥선아”를 외친다.

그러는 사이 옥선이는 같은 학급인데도 내 존재 자체도 모르는 듯이 저만치 사라졌고 나는 매번 반복하는 말을 속으로 되뇐다, “병신 같은 놈아.. 네 안경 낀 멍청한 얼굴로 뭘 할 수 있니... 변해야 돼 네 외모는 안돼”라고.

 

#서울 청량리 1986년 겨울

나는 고등학생이지만 3학년 말이고 이미 대학 진학을 포기한 상태였고 알 거 다 아는 나였지만 그녀에게 저항하지도 못한 채 붉은 조명 안으로 그녀와 들어갔다.

이미 나는 “야~ 놀다가”외치던 그녀를 본 그 짧은 시간에 내 첫사랑 옥선이와 맞바꾸었고 창녀촌의 창녀가 아닌 상상으로만 꿈꾸어온 지난날의 가슴 뛰는 그 옥선이가 나를 남자로 알아봐 주는 첫 기쁨에 빠진 상태이다.

수많은 꽃다발과, 노트, 쥐포와 오징어, 코코넛 비스킷을 무참히 던져 버리고 내 가장 친한 친구와 놀아나던 그 옥선이가 지금 나와 한번 하자고 한다... 물론 돈을 내야겠지만...

나는 오늘 그녀를 다시 만났고 방에서 벌어질 일들을 상상한다, 현재의 나로서 대 할지 아니면 10년 전의 순수했던 내가 될지는 방 안으로 들어가보면  알 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10년 동안 나 자신을 괴롭혀 온, 그 당시 그 녀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하고 망가지면서 형성된  트라우마로 인한 내 여성관 때문에 여자를 격멸하게 되었고, 그 운명이 앞으로도 나를 분명히 허무하게 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사실 어렸던 그 당시에는 그 운명을 비껴나가려 노력한다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겠지 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기도 했고 진정으로 갈망하였다...

하지만, 결국 계속 그 상태로 괴로움을 겪게 되면서 그것이 성인이 되어 어떤 식으로 인생의 방향에 영향을 끼칠 줄 그 순간에도 나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 옥선이와 나는 붉은 조 명 안의 좁은 방의 작은 침대에 앉아서 있다. 마치 거래를 하는 장사꾼 같은 행동을 하면서 옷을 벗고 있는 옥선이가 말을 꺼낸다.

“고삐리 5만 원”

그 순간 그녀와 나의 눈이 마주친다.

"어.. 그래, 근데 나 너하고  이야기만 하고 싶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좁은 침대 모서리에 엉거주춤 앉은 채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마치 연인에게 말하듯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순간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나를 보며 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야.. 고삐리 너 괜히 멋있는척하지 말고 연애하고 가라. 숏타임 금세 가니까.. 빨리 벗고 이리로 와" 그녀는 이미 알 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다가 마치 나를 장난감 다루듯이 재미있는 표정을 한 채 익숙한 동작으로 물티슈를 가지고 내게 다가오며 내 바지를 움켜쥐고 말한다, "빨리 벗고 고추 내밀어봐 내가 닦아 줄게"

그 순간, 난.. 갑자기 놀라며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 마 나 안 할 거야 옥선아!” 아.. 나도 분위기 봐서 말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이렇게 무드 없이 갑자기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

순간 정적이 흐른다.

그녀.. 아니 옥선이의 표정이 바뀌며 아까 장난기 있던 눈빛이 아닌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대답한다.

"너 누구야, 너 씨발 누구냐니까?"

그녀는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아는 것이 의아해하는 행동이 아니라 화가 난 그것도 극도로 화가 난 말투로 내 곁에서 멀어지더니 다시 나에게 말을 한다, "야 씨발 고삐리 너 누군데 내 본명을 알고 있는 거야... 빨리 말해 이 씨발놈아"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이쁘고 공부 잘했던 똘똘한 그 아이 옥선이의 모습과 지금 세상 온갖 것에 찌들고 온 몸에 여자 냄새로 가득 찬 그녀가 오버랩되며 나는 그 순간 멍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한다..

"명진이야.. 차 미친놈 명진이"

잠시 정적이 흐른다..

어느새 은하수 담배를 입에 문 그녀가 침대에 걸터앉아 옷을 입으며 말한다...

"돈 안 받을 테니 가고 다시 지나가더라도 아는 채 마"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빨간 드레스를 다시 걸친 그녀가 방문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나는 다급히 외치며 그녀를 잡았다.

"아니야.. 나 돈 낼게, 그냥 조금만 이야기하다 갈게, 가지 마"

나는 아까 수줍게 앉아 있던 내가 아닌 마치 다 자란 수컷같이 그 녀를 막아서며 그녀를 잡고 침대에 끌고 오다시피 하면서 내가 앉은 그 모퉁이에 그녀를 앉게 한 후 말을 시작한다.

"나 그냥 잠시만 너하고 앉아서 이야기만 하다 갈게... 그렇게 해줘"

그 말과 동시에 나와 옥선이는 서로 진지하게 쳐다본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옥선이가 말한다.

“알았어, 근데 나 금방 나가봐야 돼, 밖에서 조금 있으면 부를 거야”

이미 우리가 방에 들어온 지 10여분이 흐르고 있었고 588의 숏타임이라 불리는 성매매 시간이 20분 정도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알았어... 잠시만 같이 있자"

어색하게 침대에 걸터앉은 우리 둘 사이로 어색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옥선아, 잘 지냈니?"

아니.. 이게 무슨 병신 같은 말인가, 지금 19살 아직 학생의 나이인 그녀, 옥선이에게 그것도 창녀촌인 588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잘 지냈니 옥선아”

아... 난 역시 친구들이 왜 미친놈이라고 부르는지 새삼 느꼈다.

그런데 그 순간 옥선이가 웃으며 내게 대답한다

"어.. 너네 고삐리보다는 인생이 스펙터클 해, 나름 재미있기도 하고"

“이거 비즈니스야.. 비즈니스, 사업 말이야”

의외의 밝은 표정으로 대답하며 아까 내가 “옥선아”라고 그녀를 아는 채 하기 전의 그 농끼와 색끼가 넘치는 그녀로 다시 돌아간 듯 얼굴에 약간의 웃음기를 머금은 그녀의 대답에 난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젖어들어갔다.

"어.. 그래.. 나도 여기 이야기 들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가게 하는 것보다 돈 많이 번다더라"

아.. 이게 또 뭔 개 같은 소리냐..

이게 그녀에게 할 말이냐고.. 이 한심한 놈아..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머쓱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말을 더듬는다..

"아니.. 동네 형들이 그러더라고, 우리가 들은 것처럼 뭐 인신매매해서 온다던지 마약 한다던지 그런 애들보다 오히려 가정형편 때문에 돈 때문에 일하는 애들도 많고 잠깐 열심히 벌어서 그만두고 옷가게 차려서 사장도 되고..."

아.. 주절주절 그냥 이 말 저 말 막 주절거리는 날 보며 옥선이가 말을 꺼낸다.

"어.. 맞아 나 돈 벌러 나왔고, 자발적으로 여기서 일하는 거야, 일반 어른들보다 5배는 더 벌어.. 그래서 여기서 일하는 거야...

올해까지만 하고 돈 모아서 가게 하려고 이 짓하는 거야..

나 어릴 때 가난했던 거 너 알잖아.. 그래서 난 돈 되는 짓 뭐든 하려고 17살부터 이 짓하는 거야..."

그 순간 난 가슴속에 옥선의 말이 눈물이 되어 내가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내가 도대체 그녀에게 뭘 말한 거냐고...

이 미친놈아 그게 뭐냐고..... 난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펐다.

옥선이가 그 순간 나에게 다시 말을 한다.

"넌 여전히 좀 이상해.. 머리는 좋은데 좀 이상하고.. 너 예전에 나한테 막 좋아한다고 따라다니고 해서 내가 너 많이 구박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너무 못되게 했지 내가 너한테..."

그 순간 난 갑자기 찬 물을 얼굴에 끼얹은듯한 얼굴로 갑자기 어두운 그 당시 흑역사가 생각났다.

그래 이 못된 년아

너 그때 날 아주 바보 병신으로 대했지. 안경 끼고 공부는 잘하는데 뭔가 나사 풀린 애로..

난 그 당시 수 백번 망설이다 옥선이에게 첫 고백을 한 후 그녀의 포로가 되었다. 학교 전체가 다 아는 사랑의 노예.. 뭐 그런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그 아이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서 여자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그런 미친 생각을 할 정도로, 내게는 옥선이가 남긴 깊은 상처가 내 학창 시절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장본인이 바로 내 눈앞에 지금 있는 옥선이 바로 그 애, 심지어 조금 전까지 여자 냄새를 피우며 홀딱 벗은 알몸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녀이다.

한참 옛날 생각에 빠져있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옥선이를 쳐다보았다.

“명진아 이제 나 나가봐야 돼.. 안 나가면 욕먹어

이모가 타임 다됐다고 나오라는 소리야"

아.. 벌써 20분이 흘렀구나.. 이렇게 시간이 금세 가다니.. 그런 생각을 하다 치졸하게도 뭐가 이리 비싼 거야 하는 생각이 드니.. 참 나도..

에이 연애도 안 하고 너무 허무하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하다 갑자기 내 입에서 툭 튀어나오는 말.. “옥선아 너 언제 쉬는 날이니, 우리 너 쉬는 날에 밖에서 만나면 안 될까?”

난 너무 이렇게 헤어지는 게 아쉽기도 하고 돈도 아깝고.. 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옥선이와 잠시지만 말을 하다 보니 옛날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서 그녀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주변에서 알면 미친놈이라 하겠지만... 어쨌든 창녀 하고 데이트한다는 게 솔직히 정상은 아니라고 볼 테니.

난 내 감정이 시키는 데로 해볼 생각이 강하게 나를 유혹했고 그 상대가 옥선이라면 창녀가 아니라 귀신하고도 데이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명진아, 너 나하고 데이트하자는 거니?" 날 빤히 쳐다보며 방을 나가려던 옥선이가 물었다.

마치 나 창녀인데 너 나 사귈 수 있어? 이런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피식 웃는다

난 망설임도 없이 “어.. 나 너랑 데이트하고 싶어”라고 말한 뒤 재차 물었다.

“언제 쉬냐니까?..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 옥선이에게 다그치듯이 급하게 대답을 강요했다.

“나 다음 주는 화요일에 쉴 거야 내가 쉬고 싶은 날에 쉬는데, 정말 너 나하고 밖에서 만나려고?”

난 잽싸게 “어.. 그럼 다음 주 화요일에 보자, 12시에 오스크 극장 앞에서 보는 걸로, 나 갈게 잘 있어” 그 말이 끝나는 동시에 우리는 방에서 나온 후 난 고개를 푹 숙이고 붉은 조 명 안의 가게를 나오며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또 잽싸게 발걸음을 빨리해서 그 동네를 벗어났다.

갑자기 30분 전과 지금 나는 완전히 뭔가에 홀린 듯 걸음걸이를 재촉하며 날 맨날 기다리는 엄마의 화난 얼굴과 방금 전의 옥선의 얼굴이, 옥선의 벗은 몸이 오버랩되며 얼굴이 빨개지면서 그날 밤이 지나가고 있다.. 마치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긴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밤공기가 유난히 상쾌하다고 느끼면서...

 

#서울 청량리 극장 앞 1986년 겨울

“야 옥선아 여기”하고 큰 소리로 저 멀리 걸어오는 그 애를 향해 소리친다, 저 멀리서 그녀가 보인다.. 근데 희한하게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애 얼굴이 달덩이처럼 보인다 그것도 주변 사람은 하나도 안 보이고 그 애 얼굴만 엄청 크게.. 아 너무 이쁜 그 애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야 명진아 너 왜 쪽팔리게 큰 소리로 이름 부르고 그러냐, 여기 우리 가게 하고 안 멀어서 나 아는 삼촌들도 많아, 그니까 본명 부르지 마.. 나 여기서 민지야.. 민지”

“너 삼촌이 그렇게 많냐” 그러자 옥선이는 큭큭하고 웃으며 말한다, “야 삼촌이라는 건 여기 가게 봐주는 건달들 말하는 거야.. 그리고 대부분 여기 가게 운영하는 이모들 기둥들이고..”

“아 기둥서방을 삼촌이라 부르는구나” 난 큰 소리로 킬킬거리며 소리 내면서 웃었다. “야.. 너 안 되겠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자.. 우리 종로 가자.. 술 한잔하고 나이트 갈래.. 어때?” 옥선이가 말하자마자 난 “콜..”하고 서둘러 옥선이와 종로로 가는 버스를 타고 오늘 설레는 데이트를 상상하며 기분이 째지고 있는 중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엄청나게 이쁜 옥선이가 내 데이트 상대라는 생각에 그냥 들떠있었다. 그리고 엉큼한 생각도 하면서 난 히죽히죽 웃는 중이다.. 넌 오늘 내 거야..ㅎㅎ

이미 옥선이는 내 어린 시절 첫사랑이며, 어릴 적 꿈꾸어 온 소설 속의 내 페르소나이지 어제 붉은 조명의 야하고 더러운 창녀는 내 마음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자 친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 현실인 것이다. 지금 바로 내 눈앞에, 그것도 그 녀의 손을 잡고 있는 내가 엄청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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