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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희 Hong Jaehee Jan 03. 2025

오늘은 뭐 먹지?



한밤중에 잠을 설쳐서 뒤척대다가 새벽녘에 겨우 잠들었다.

날이 흐리니 해가 떠도 어두컴컴하다.

오전 여덟 시 다 되어가는 데도 희끄무레하다.

우중충한 날씨에는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는다.

우울하고 심연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밤이 긴 겨울에는 잠이 늘어난다. 겨울잠 자는 곰처럼 또는 뱀처럼 이불속에서 똬리를 틀고 누워 있고만 싶다.

방바닥과 혼연일체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굴복하는 순간.

안 된다. 그럴수록 몸을 일으켜서 뭐라도 해야 한다.




집이라는 공간이 생활의 공간이자 일터인 프리랜서의 하루.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의 생활이란 24시간이 전적으로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것.

뭐든 스스로에게 달려있다는 점에서 자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양날의 칼이다.

오히려 규칙적으로 살지 않으면 일상이 엉망이 된다

스스로 세운 규율을 지키지 못하면 그대로 하루가 무너진다.

아무것도 안 하고 빈둥대면서 무위도식하다가 하루가 끝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집을 일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집에서조차 일터에 나간 듯이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새해가 되었는데도 내게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인 것만 같다.  

프리랜서에게는 날짜나 요일이 별반 의미가 없다. 마감만이 의미가 있을 뿐.  

프리랜서는 직장에 출근하는 이들처럼 남이 하루 일과를 정해주고 할 일을 채근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추동하는 엄격한 훈련 교사가 되어야 한다.

일단 스트레칭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나서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킨다.

춥더라도 잠시 참으면 공기 전환도 되고 정신도 번쩍 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밥을 먹는다.

집에서 종일 일하는 날이면 되도록 간단히 손 덜 가게 차려 먹는다.

아점과 저녁 두 끼면 충분하다.






동네에 작은 재래시장이 있고 근방에 마트가 서너 곳이 있는데 똑같은 물건마다 가격 차이가 있다.

꼼꼼히 비교해 보고 산다.

그래도 비쌀 경우에는 좀 더 발품을 팔아서 남대문 시장에 있는 청과물 가게에 가거나 동네 근처 전철역 부근에 있는 청과물 가게에 들른다.

이 가게는 국산과 중국산 청과물을 상자 그대로 늘어놓고 현금과 계좌이체만 받는다.

이 곳에서 파는 모든 청과물은 랩으로 포장을 해놓지 않는다.

그래서 물건의 상태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채소와 과일 상태가 최상품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주머니가 가벼운 날 마트에서 비싸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 그만 내려놓은 채소와 과일을 부담 없이 팍팍 살 수 있다.


아보카도 다섯 개를 오천 원에 살 때도 있고, 레몬 다섯 개 오천 원, 사과 일곱 개도 오천 원, 토마토 한 바구니 오 천 원, 블루베리 팩 두 개에 오천 원.


상추 한 봉지에 천 원, 시금치 한 단에 천 오백 원, 섬초 한 단에 이천 원, 오이 다섯 개에 이천 원, 양배추 한 통에 이천 원, 양파 한 망에 이천 원.



이만 원을 들고 가면 장바구니 가득 사고 싶고 해 먹고 싶은 청과물을 살 수 있다.

가뭄에 단비 같은 가게다.

물건을 사고 들고 돌아오는 길은 몸은 수고스럽지만 마음은 홀가분하고 뿌듯하다.

덕분에 종일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해 먹는데 큰돈이 들지 않는다.

가뜩이나 물가가 너무 올라 팍팍해진 살림에 이런 알뜰한 청과물 가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뭐 먹지?



아점 밥상.


냉동실에 얼려놓은 남은 식빵 두 장 굽고

블랙 커런트 잼과 땅콩버터 덜고 치즈 잘라 놓고

선물로 받은 녹차 밀크 스프레드 발라 놓고

시장에서 오 천 원에 여섯 개 팔던 아보카도와

먹다 남은 케이퍼 그린 블랙 올리브 넣어

시들어가는 채소와 버무린 샐러드.

식빵 토스트 하나는 잼 소스 발라먹고

나머지는 아보카드 샐러드 넣어먹고

요리조리 이렇게도 저렇게도 먹는 재미.

카푸치노 한 잔 슬슬 내리고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언제 산 지도 기억 안나는 다크 초콜릿과

어머니가 주신 귤을 후식으로 까먹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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