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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18. 2024

하시바 히데요시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당선작  <조선  활자공  임오관,  평화를  만들다>


소반(小盤: 작은 상)을 들고 왔던 시녀가 임오관 곁에 찰싹 붙어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더니 임오관의 입에 넣어주었다.


임오관은  딸 또래일 시녀가 그러니까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곧 그녀의 아이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언급한 『직지심체요절』 말인데…, 폐하께 바쳐진 그 책이 아직도 자네의 가보라 여기는 모양이구먼. 설사 그게 사실이더라도 그냥 매각한 셈 치게. 아주 좋은 가격에 말이야! 어차피 조선이 건국한 이후 조선 조정에서는 불교를 탄압해 오지 않았는가. 심지어 조선의 쿠교우(公卿: 귀족 출신 벼슬아치)들은 거대한 사찰들을 불태우고, 신자들을 교화하는 데 쓰는 범종을 녹여 화포를 만들기까지 했다더군.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란 말인가!”


쇼군이 이렇듯 기가 막혀하시자 어느 하타모토(旗本: 도쿠가와 막부의 상급 가신)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쇼군. 그런 주제에 『팔만대장경』을 달라는 저희 측 요청을 조선 조정이 매번 무시하는 것 또한 우습습니다. 저희를 애태울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이 말을 한 하타모토를 쇼군께서 지그시 바라보시더니 가르침을 베푸셨다.


“뭐, 아까 임오관이 말했듯이 공을 아주 많이 들인 보물이라는 걸 인식하기 때문이겠지. 혹은 우리가 『팔만대장경』을 받으면 그보다 더한 것도 요구하리라 우려하여 경계했는지도…. 구걸을 하니 밥을 주면 술도 달라고 하는 게 사람이니까. 게다가 그런 보물을 타국에 준다면 조선 평민들과 쿠교우 가문의 부녀자들 중에도 많다는 불교 신자들이 크게 분노하여 반란이라도 일으키리라 우려하는 것일지도…. 시마바라의 난처럼 말이야. 자고로 종교에 미친 것들이란….”


여기까지 말씀하신 쇼군께서는 하타모토들을 한 번 휘 둘러보셨다. 더 이상 다른 의견을 올리는 자가 없자 임오관을 보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이런 조선에서는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이 담긴 『직지심체요절』도 결국 무사하지는 못했을 걸세. 분명 어느 쿠교우가 압수하여 산산이 뜯어서 벽지나 문풍지 따위로 썼겠지. 수백 권이나 찍었을 『직지심체요절』이 귀해진 이유가 그래설 거야.”


임오관이 입속에 든 고기를 우물거리느라 그러는지 대답이 없자 하타모토 중 하나가 또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쇼군! 보물의 가치를 모르는 자가 계속 보물을 소유하게 하는 것은 개집에 진주나 오반(大判: 일본 에도 시대의 금화)을 두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기요마사 공이 폐하께 『직지심체요절』을 바친 건 보물의 올바른 주인을 찾아드린 것과 같습니다. 비록 하시바(도요토미 히데요시) 놈을 통해서였지만요.”


“그렇지. 지금 황궁 안 어딘가에 3종 신기(三種の神器: 태양신이 하사했다는 칼, 거울, 곡옥)와 함께 소중히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폐하께서 『직지심체요절』을 소중히 여기기로 하신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쇼군?”


다른 하타모토가 물었다. 『직지심체요절』에 관한 호기심을 품어서가 아니라 쇼군의 흥을 돋우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직지심체요절』의 맨 마지막 장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지. ‘宣光七年丁巳七月 日 淸州牧外興德寺鑄字印施(선광 7년 정사 7월 일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인시)’라는 문구 말이다. 폐하께서는 이 중에서 맨 마지막에 나온 네 글자인 ‘주자인시(鑄字印施)’에 주목하셨다. 그래서 학자들에게 보여주며 여쭈셨더니, 그들이 아뢴 대답이 이러했다.”


하타모토들은 물론 임오관도 눈을 크게 뜨고서 쇼군께 주목하자 쇼군의 말씀이 이어졌다.


“험! 학자들이 폐하께 아뢴 ‘주자인시’의 뜻은 금속을 녹여 부어 글자를 만들고, 그 금속 글자로, 그러니까 금속활자로 인쇄를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선광 7년은 옛 송나라의 연호인데, 에이와 3년(1377년)을 뜻한다! 그러니까 조선을 건국하여 첫 왕이 된 자가 고려의 장수였던 시절에 만들어진 책이라는 의미였다!”


“오오! 그 말인즉 조선인들은 우리 조정이 남조(南朝)와 북조(北朝)로 나뉘어 대립하던 아주 오랜 옛날부터 금속활자로 책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같은 책을 한꺼번에 수백 권씩 찍어낼 기술을 그렇게 일찍 고안하다니 놀랍습니다!”


“그렇다! 허나 어떤 학자들은 『직지심체요절』을 발간한 자가 그 문구를 멋대로 지어낸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인즉, 이 책이 금속활자로 찍어낸 게 맞다고 증언해 주는 명나라나 우리 일본의 오래전 기록 같은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조선에서는 옛날부터 금속활자로 책을 만들었다’는 주장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지. 헌데 이런 주장은 감히 고요제이 폐하의 판단을 의심하는 행위일 수도 있기에 과인은 상당히 불경하다고 본다!”


쇼군의 이 말씀에 여러 하타모토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습니다!”를 연발했다.


이런 반응에 기분이 좋아지신 쇼군이 말씀을 이으셨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불경한 그자들에게 호통을 치시는 대신, 하시바 놈을 황궁에 불러 하문하셨다. 기요마사 공이 이 책을 어떻게 입수하였으며, 금속활자라든가 인쇄공들도 노획하지는 않았느냐고 말이다. 이는 감히 당신의 판단을 의심한 학자들과 쿠교우들에게 증거를 보여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시바 놈은….”


“그렇다! 폐하께서 하문하시자 하시바 놈은 기요마사 공이 한양에서 임오관을 비롯한 인쇄공들을 잡은 경위와 그들이 갖고 있던 금속활자에 관해 이실직고를 했다지. 처음에는 기요마사 공도, 하시바 놈도 활자를 네모난 동전이라 여겼다고 했어. 헌데 전혀 다른 문자들이 각각 한 글자씩 양각으로 새겨진 걸 기요마사 공도, 하시바 놈도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기요마사 공은 초패왕 항우처럼 하늘이 내린 무장이라 싸움에 관한 것 외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하시바 놈은 애당초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바늘 장수로 시작해 벼락출세해서 자기 이름조차 쓸 줄도 몰랐던 놈입니다. 아마 금속활자를 돈처럼 쓸 생각만 했겠지요, 쇼군.”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하시바 놈도 인쇄공들에게 금속활자를 뭣에 쓰는지 물어봤었다고 폐하께 이실직고를 했다니까. 그 직후 하시바 놈은 금속활자와 인쇄공들을 폐하께 바친 거고. 폐하의 명을 무시하고 조선을 침공한 큰 죄가 있는 판에, 폐하를 기망하고 값진 전리품을 빼돌리려 한 죄까지 더해지는 걸 원치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그래, 돈으로…, 아마 금속활자와 인쇄공들을 속전(贖錢)처럼 여겼을지도 모르겠군. 그놈은 돈으로 과인의 조부까지 매수하려던 놈이니까!”


“결과적으로 기요마사 공이 폐하께 바친 거군요, 쇼군.”


하타모토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서 노획한 금속활자와 인쇄공들을 폐하께 바친 공을 하시바가 차지하는 게 불쾌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쇼군도 이 주장에 동의하셨는지 고개를 주억거리셨다.


“각설하고, 지혜로우신 폐하께서는 『직지심체요절』은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 분명하다고 확신하셨다. 그래서 임오관을 비롯한 조선인 인쇄공들더러 조선제 금속활자로 조선에서 입수한 『고문효경』을 복제하라 명하신 것이다. 당신께 감히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에게 명백한 증거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말이다.”


여러 하타모토들이 “오오오!”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자 쇼군이 양어깨를 으쓱하시며 말을 이으셨다.


“처음에는 『직지심체요절』을 고스란히 복제해 일본 전국의 사찰에 배포하는 걸 구상하셨다지. 허나 문득 하시바 그놈이 폐하의 어명마저 무시하고 조선을 침공한 일이 떠올랐다고 하셨다. 이에 폐하께서는 유력한 다이묘들과 사무라이들이 하시바 놈처럼 무도하게 날뛰는 걸 막으려면 조선 왕들이 한 것처럼 성리학을 널리 보급해야 한다고 판단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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