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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죽음 Mar 07. 2024

너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고 싶니

#긴긴밤 함께 읽기 중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긴긴밤의 첫 문장이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이 책이 우리 반의 인생책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모든 아이들에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내가 펼칠 온 책 속의 광활한 초원을 제대로 따라오는 아이라면 말이다. 


벌써 십 년도 남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늘 같은 책으로 3월을 시작한다. 

같은 기억을 갖고 첫날을 시작하는 의미 있는 의식 같은 것이다. 

두 번째로 함께 읽을 책을 긴긴밤으로 골랐다. 


긴긴날 동안, 우리는 어떤 여행을 떠나게 될까?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가슴을 찡하게 만나는 문장을 만나는 일

주인공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펼쳐지는 장면이 너무 생생해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기도 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되는 것.

좋은 책을 만나면 내 마음이 부산해진다.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


아이들보다 먼저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듣고 싶은 이야기가 퐁퐁 솟아났다. 

선생님의 인생책이노라 말하며 함께 읽기를 시작한다. 


코뿔소 노든의 말년은 극진한 대우를 받는 왕에 가깝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 생각이고, 노든 자신은 한시도 쉬지 않고 붙어 있는 인간들과 그의 몸을 찔러 대는 바늘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첫 장면을 읽으며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네가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적의 경험을 떠올려 보자. 그 기억은 어떠했니?"

"세 살 때 부모님과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봤어요."

"다섯 살 때 유치원 가기 너무 힘들어했었는데, 결국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부모님께 감사해요."

"여섯 살에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친구 신발 속으로 들어갔어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여섯 살에 유치원에서 숨바꼭질을 했는데 술래가 제일 처음 저를 발견했어요. 너무 속상해서 엉엉 울었는데 선생님이 다른 방으로 절 데려가서 장난감을 따로 주어서 좋았어요."

"일곱 살에 크리스마스날 부모님께 레고를 선물 받았어요. 행복했어요."

"일곱 살에 친구가 내 팔을 꽉 문 적이 있어요. 정말 아팠어요."


아이들은 서로의 기억에 놀라워했고, 즐거워했고, 신기해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렸을 적 기억은 흰 눈이 펑펑 온 날 너무 신이 나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던 기억이다. 저마다 추억할 수 있는 과거가 있다는 것에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노든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왕의 대우였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마지막을 보냈어. 너희는 어떻니?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 곧 세상과
안녕을 고할 시간이 되었어. 어떠한 모습으로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니? " 


교실은 생각에 빠졌다. 

나는 이러한 적막의 순간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고요함이 깊어지면 생각이 펼쳐지고 마음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교사가 할 일은 조용히 기다려주는 일뿐이다. 

무언가를 사각거리며 적는 아이들의 모습이 빛이 난다. 


모든 아이들이 하교를 하고 나서야 아이들의 글을 읽어보았다. 


"친구들과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잠자며 떠날 것이다."

"즐겁게 보냈던 휴가지를 갈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추억을 쌓고 인사할 것이다."


아이들도 알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에 늘 

사랑과 감사와 아쉬움 속에서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이다. 


떠나야 할 때의 모습이 정해졌으니 

이제 그에 맞게 살기만 하면 될 일이다. 


p.s.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교실속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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