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인간 아닌 것이 되고 싶죠.

인간이 힘들어서, 나무야 넌 좋겠다. 뽀삐야 너는 좋겠다.

by 박재

나무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장마가 길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때에도

해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습기가 도보블럭 사이에 눌어붙었다


밖을 나와보니

가로수마다
초록 벨벳 같은 이끼가
몸을 감쌌다


나무 껍질이 보이지 않았다
촉촉한 초록이
두터운 나무의 몸을
잠시 부드럽게 만들었다


볕이 쬐는 순간
이끼는 사라질 것이다
햇빛 아래 말라가는 순서대로
껍질도 다시 딱딱해질 것이다


개운할까
섭섭할까
그 잠깐의 덮임을 벗는 일은


우리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지만
나무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팔을 더 넓게 펴

빗방울을 안는다


같은 생명인데
비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르다


가끔은 나무가 되고 싶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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