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요법-실행기능 연습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느껴지면' 더욱 시작하기 어렵죠.
그때마다 아이가 하는 말
해야 할 것이 많아 보일 때
누구나 미루고 싶어질 수 있지만
ADHD 아이들은 양에 압도된 나머지 짜증이 나고
결국 시작도 하지 못하고 미루어버려
기한 내에 과제를 끝내지 못하는
실패 경험을 하게 됩니다.
숙제가 대표적이에요.
하기 싫어서, 귀찮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 많은 숙제를 언제 다 하냐며
미루고 미루다 제출 전날에서야 "이젠 꼭 해야 하는데"라며 책상에 앉죠.
그러나 아이 눈앞에 놓인 건 하루에 끝내기 어려운 방대한 양의 과제.
결국 양에 짓눌려 손을 놓아버리는 일이 잦아요.
주의력이 낮아 책상에 앉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것도 더욱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숙제를 못한 상황이 짜증이 나서 엄마인 제게 짜증과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많죠.
처음엔 '매일 조금씩 하면 되는걸 도. 대. 체 왜 못하나'라는 생각에
"미리미리 해놓으면 좀 좋니!"
"그러니까 엄마가 미리 해놓으라고 했지!?"
자주 말했어요.
그러나 계속 답답했을 뿐
아이의 행동이 개선되지 않았죠.
이제는 알아요.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는 말은 허공에서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요.
왜냐하면 ADHD의 특징 중 하나가
시간과 양의 개념이 정확하지 않고
놀고 싶어도 꾹 참고 과제를 하는 등 자신을 절제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죠.
아이가 자꾸 과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짜증을 내는 행동은
지적할 게 아니라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행동이었어요.
특히 과제(공부)는 자기 조절 절제력의 최고봉에 있는 활동이에요.
자기 조절 절제력의 기초 항목을 예를 들면
양치질이나 등교, 책가방 챙기기 등 매일매일 아이 스스로 해야 하는 활동이에요.
스스로 해야 하는 일상의 루틴을 충분히 연습한 뒤에
이 연습을 바탕으로 공부라는 고차원적 항목까지 나아갈 수 있어요.
ADHD 아이에게 공부라는 것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이해하고 나니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 같아요.
"네가 시작하기 어렵다는 걸 알아.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면 네가 시작할 수 있을까?
"엄마가 공부할 시간이라고 말하면 짜증부터 나"
"엄마가 공부할 시간이야 라고 말하는 건 이제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야. 엄마는 네가 스스로 시작할 수 있도록 신호를 주는 거니까 이제 엄마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줘"
"그럼 엄마가 너에게 어떻게 신호를 주면 짜증이 덜 날까? 우리 아이디어 뱅크가 한 번 생각해 줘!"
"엄마 그럼 우리가 눈을 맞추고 손으로 신호를 주면 어때?"
"그럼 너의 기분이 괜찮겠어? 그러자 엄마가 손으로 신호를 줄 게"
시작하는 게 수월해질 때까지는 공부의 양도 아이와 협의해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할만해야 할 수 있잖아요.
공부 양 조절 방법은 효과가 컸어요.
공부량 조절할 때
처음엔 아이가 하겠다고 제시한 공부 양에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아이가 반쪽을 하겠다고 했거든요.
당시엔 반쪽만 해서 공부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었어요.
제 성에 차지 않았던 거죠.
게다가 아이의 말에 따랐다가 나중에 아이에게 끌려다니는 건 아닐까
부정적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 이건 엄마인 제 생각이고
아이가 시작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목표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두장 공부시키려고 아이랑 옥신각신 하다 감정이 틀어져 시작하지 못하는 것보다
반쪽이어도 아이가 스스로 시작하는 게 나으니까요.
막상 양을 조절해 아이가 시작할 수 있도록 돕다 보니
아이가 '내가 시작할 수 있네'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저는 비록 적은 양이더라도 성공경험을 쌓는 게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크면서 초등 고학년이 되니
학교 과제물이나 중간기말고사처럼
공부량과 공부기간이 주어지는 경우를 대비한 전략도 필요했어요.
제가 일방적으로 공부량을 줄여줄 수도 없고
기한도 늘려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시스템도 아이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실행기능 중 하나인 건 분명해요.
저와 아이가 세운 전략은
양이 많다면 쪼개서 양을 줄이자.
일명 '김밥 요법'이라 불리는데요.
아래 아이와 나눴던 대화를 재구성했어요.
"바다야 넌 김밥 한 줄 한 입에 먹을 수 있어?"
"없지"
"그렇지. 그런데 엄마는 너에게 김밥 한 줄을 어떻게 내어주지?"
"조각으로 잘라서?"
"김밥을 조각으로 잘라서 접시에 담아주지? 김밥 한 줄이 네가 해야 할 과제의 양이라고 해보자. 한 번에 그니까 한 입에 다 먹어버릴 수 있을까?
"어렵겠지."
"김밥 한 줄을 조각으로 잘라 한 조각씩 먹는다면?"
"김밥을 한 줄이 아니라 한 알씩 먹자고?"
"응 맞아. 김밥을 잘라보자. 이 과제를 하는 데 며칠 쓸 수 있어? 엄마가 김밥 표를 그려줄 테니까 하나씩 채워봐. 할 수 있겠어?"
"이 정도 양은 할만할까? 시작할 수 있겠어?"
"한 번에 하는 것보다는 낫겠네"
"응 우리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보자. 방법은 분명히 있어"
하루는 성공했다가 다음날은 실패하고 어떤 때는
짜증과 화가 나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꾸준히 아이와 연습하고 있어요.
포기하지 않는 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는 될 거라 믿어요.
가끔 김밥요법이 잘 되는 날이 있어요.
그땐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줘요.
"우리의 목표는 바다가 커서 중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었을 때 스스로 김밥 한 줄을 조각으로 잘라서 한 알씩 먹어가며 너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는 거야. 스스로 계획 세워서 완성하는 거. 김밥 자르기 중요하니까 꼭 기억해. 오늘도 잘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바다는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때까지 엄마가 도와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