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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걸 언제 다 해. 안 해. 다음에 할게"

김밥요법-실행기능 연습

by ADHDLAB Jan 08. 2025

우리 아이 '바다'는 시작하는 게 어려워요.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느껴지면' 더욱 시작하기 어렵죠.


그때마다 아이가 하는 말

"이 많은 걸 언제 다 해. 안 해. 다음에 할게"

해야 할 것이 많아 보일 때

누구나 미루고 싶어질 수 있지만

ADHD 아이들은 양에 압도된 나머지 짜증이 나고

결국 시작도 하지 못하고 미루어버려

기한 내에 과제를 끝내지 못하는

실패 경험을 하게 됩니다.


숙제가 대표적이에요. 

하기 싫어서, 귀찮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 많은 숙제를 언제 다 하냐며

미루고 미루다 제출 전날에서야 "이젠 꼭 해야 하는데"라며 책상에 앉죠.

그러나 아이 눈앞에 놓인 건 하루에 끝내기 어려운 방대한 양의 과제.

결국 양에 짓눌려 손을 놓아버리는 일이 잦아요. 

주의력이 낮아 책상에 앉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것도 더욱 쉽게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숙제를 못한 상황이 짜증이 나서 엄마인 제게 짜증과 화풀이를 하는 경우도 많죠. 

처음엔 '매일 조금씩 하면 되는걸 도. 대. 체 왜 못하나'라는 생각에


"미리미리 해놓으면 좀 좋니!"

"그러니까 엄마가 미리 해놓으라고 했지!?"

자주 말했어요. 

그러나 계속 답답했을 뿐

아이의 행동이 개선되지 않았죠.




이제는 알아요.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는 말은 허공에서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요. 


왜냐하면 ADHD의 특징 중 하나가 

시간과 양의 개념이 정확하지 않고 

놀고 싶어도 꾹 참고 과제를 하는 등 자신을 절제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죠.

아이가 자꾸 과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짜증을 내는 행동은

지적할 게 아니라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행동이었어요. 


특히 과제(공부)는 자기 조절 절제력의 최고봉에 있는 활동이에요.

자기 조절 절제력의 기초 항목을 예를 들면

양치질이나 등교, 책가방 챙기기 등 매일매일 아이 스스로 해야 하는 활동이에요.

스스로 해야 하는 일상의 루틴을 충분히 연습한 뒤에

이 연습을 바탕으로 공부라는 고차원적 항목까지 나아갈 수 있어요. 


ADHD 아이에게 공부라는 것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이해하고 나니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 같아요. 



"네가 시작하기 어렵다는 걸 알아. 엄마가 어떻게 도와주면 네가 시작할 수 있을까? 


"엄마가 공부할 시간이라고 말하면 짜증부터 나"


"엄마가 공부할 시간이야 라고 말하는 이제 시작할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야. 엄마는 네가 스스로 시작할 있도록 신호를 주는 거니까 이제 엄마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줘"


"그럼 엄마가 너에게 어떻게 신호를 주면 짜증이 덜 날까? 우리 아이디어 뱅크가 한 번 생각해 줘!"


"엄마 그럼 우리가 눈을 맞추고 손으로 신호를 주면 어때?"


"그럼 너의 기분이 괜찮겠어? 그러자 엄마가 손으로 신호를 줄 게"




시작하는 게 수월해질 때까지는 공부의 양도 아이와 협의해 

아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할만해야 할 수 있잖아요.

공부 양 조절 방법은 효과가 컸어요.


공부량 조절할 때

처음엔 아이가 하겠다고 제시한 공부 양에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아이가 반쪽을 하겠다고 했거든요.

당시엔 반쪽만 해서 공부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었어요.

성에 차지 않았던 거죠. 

게다가 아이의 말에 따랐다가 나중에 아이에게 끌려다니는 건 아닐까

부정적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 이건 엄마인 제 생각이고

아이가 시작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목표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두장 공부시키려고 아이랑 옥신각신 하다 감정이 틀어져 시작하지 못하는 것보다

반쪽이어도 아이가 스스로 시작하는 게 나으니까요.


막상 양을 조절해 아이가 시작할 수 있도록 돕다 보니

아이가 '내가 시작할 수 있네'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저는 비록 적은 양이더라도 성공경험을 쌓는 게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크면서 초등 고학년이 되니

학교 과제물이나 중간기말고사처럼

공부량과 공부기간이 주어지는 경우를 대비한 전략도 필요했어요.


제가 일방적으로 공부량을 줄여줄 수도 없고

기한도 늘려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시스템도 아이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실행기능 중 하나인 건 분명해요.


저와 아이가 세운 전략은

양이 많다면 쪼개서 양을 줄이자.

일명 '김밥 요법'이라 불리는데요.


아래 아이와 나눴던 대화를 재구성했어요.


"바다야 넌 김밥 한 줄 한 입에 먹을 수 있어?"

"없지"

"그렇지. 그런데 엄마는 너에게 김밥 한 줄을 어떻게 내어주지?"

"조각으로 잘라서?"

"김밥을 조각으로 잘라서 접시에 담아주지? 김밥 한 줄이 네가 해야 할 과제의 양이라고 해보자. 한 번에 그니까 한 입에 다 먹어버릴 수 있을까? 

"어렵겠지."

"김밥 한 줄을 조각으로 잘라 한 조각씩 먹는다면?"

"김밥을 한 줄이 아니라 한 알씩 먹자고?"

"응 맞아. 김밥을 잘라보자. 이 과제를 하는 데 며칠 쓸 수 있어? 엄마가 김밥 표를 그려줄 테니까 하나씩 채워봐. 할 수 있겠어?"

"이 정도 양은 할만할까? 시작할 수 있겠어?"

"한 번에 하는 것보다는 낫겠네"

"응 우리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보자. 방법은 분명히 있어"




하루는 성공했다가 다음날은 실패하고 어떤 때는 

짜증과 화가 나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꾸준히 아이와 연습하고 있어요.

포기하지 않는 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는 될 거라 믿어요.


가끔 김밥요법이 잘 되는 날이 있어요.

그땐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줘요. 


"우리의 목표는 바다가 커서 중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었을 때 스스로 김밥 한 줄을 조각으로 잘라서 한 알씩 먹어가며 너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키는 거야. 스스로 계획 세워서 완성하는 거. 김밥 자르기 중요하니까 꼭 기억해. 오늘도 잘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바다는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때까지 엄마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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