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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an 27. 2024

독립성은 사랑의 허기다





독립적인 사람은 사랑받는 것을 간섭으로 여길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아내는 말했다...
"... 그런데 그런 성향은 언제 생기는 걸까? 혹시 그가 독립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어서 사랑을 받지 않거나 사랑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지 못해서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이 된 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 누군가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지. 그런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살지. 사랑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 사랑이란 게 그렇게 생기는 거겠지..." "한곳에 눕혀놓으면 한나절 내내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고 하더라. 어찌나 순한지 칭얼거릴 줄도 모랐다며? 아주버님과 달랐대. 어머님이 그러시더라."
- 이승우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마음의 부력> 중에서




독립성

나는 독립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믿으며 살았다.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몸이 아프면서 깨닫게 되었다. 나의 독립성은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허기를 숨기기 위한 방어와 도피의 흔적이었다.


"누군가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지. 그런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살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유독 강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최근에 알았다. 놀라운 발견이다.


결혼 전까지는 어머니, 이후는 아내에게 기대온 삶이었다. 내가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독립적인 척 용을 쓰다가 끝내 병이 들었다. 안량한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환자의 시간은 누군가의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충만감을 주었다. 꼿꼿하게 혼자서 버티는 것보다 그냥 기대버리는 게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사랑투쟁

순하고 착한 아이.

나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자라나고 있었다. 삐딱하고 공격적이고 시기와 질투가 많은 사람인데 그것들을 꽁꽁 숨기며 살았다. 나는 숨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알아본 사람이 아내였다. 아내는 나를 '고슴도치' 같다고 했다. 가시 속에 숨기고 있는 분홍색 연한 속살. 연한 속살을 들키지 않으려고 가시를 세우고 다니는 고슴도치를 닮았다고 했다. 순간 내 가시에 내가 찔린 것처럼 아팠다. 내 병은 내 안에서 키운 게 맞았다.


연한 속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 답답하고 더딘 정신의 성장 속도에 또 한번 놀란다. 남자는 평생 철들지 않고 죽는다는 여자들의 농담은 뼈아픈 진리다. 나는 환자라는 핑계로 아내에게 아이처럼 칭얼대고 울었다. 찌질한 진짜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풀어냈다. 이게 진짜 속마음인지,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되고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아버지에게도 배워본 적 없고, 아들에게도 가르쳐준 적 없는 사랑의 표현은 어려웠다. 사랑의 감정이 마른 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길이 막혀 있었다.  


아들에게서 가끔 내 모습을 보게 될 때, 아버지가 나를 보는 시선이 이랬겠구나,하고 깨닫는다. 엄마를 사이에 둔 아버지와의 관심 경쟁과, 아내를 사이에 두고 아들과 다투는 사랑 투쟁을 통찰한 프로이트는 용감한 천재가 틀림없다. 여자의 사랑 투쟁은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지만, 남자들은 표현하지 못한다. 모든 남자들은 '불통의 병'을 앓고 있다. 남자들만 아는 불통의 병을 여자들에게 설명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도 새로운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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