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퇴사 부부의 태국 한 달 살기

태국 한 달 살기는 오래전부터 함께 그려온 퇴사 계획 중 하나였다.

by 백수쟁이

태국에서 맞이하는 일곱 번째 아침이다.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고, 낮에는 뜨거운 햇빛과 공기가 이제는 익숙하다. 지난주 목요일, 남편이 있는 태국에 왔다. 나보다 한 달 먼저 태국에 온 그는 우리가 함께 지낼 집을 구하고, 태국어를 배우는 등 그만의 태국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태국 한 달 살기는 오래전부터 우리가 함께 그려온 퇴사 계획 중 하나였다. 작년부터 우리는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먼저 회사를 그만둔 건 나였다. 태국에서 살아보겠다고 퇴사한 건 아니었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피로와 무력함 속에서 더 늦기 전에 나를 돌보기로 결심했을 뿐. 그리고 남편에게도 퇴사를 권했다. 그 무렵, 우리 둘 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지쳐 있었다. 하루 종일 일과 사람에 치여 퇴근하면 서로를 마주할 여유도 없었다. 평생 함께하자고 결혼했는데, 하루 중 단 한 시간도 함께 보내기 어려웠다. 주말 출근은 점점 더 잦아졌고, 회사에서 끝내지 못한 일을 집까지 끌고 오기 일쑤였다. 어느새 우리는 회사 동료보다도 멀어진 사이였고, 사무실이 집보다 편한 사람들이 되어갔다.


그래서 말하고 또 말했다. 우리가 평생 함께할 사람은 동료가 아니라 우리 둘이라고. 그러니 둘이서 시간을 한껏 가져보자고 말이다. 알고 있다. 서울에 살지만 자가는 꿈도 못 꾸고,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에 다니던 우리. 아이 계획도 여전히 막막한 상황에서 함께 백수가 되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손에 쥔 것 하나 없이 불안한 우리가, 지옥이라는 회사 밖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손에 쥔 것이 하나도 없어서이다. 집이 없으니 대출금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우리 두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이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때이므로 우리는 돈이 아니라 시간을 벌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다.


남편과 해외에서 한 달 살기는, 사실 나의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다. 결혼 후 혼자 한 달 동안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시아를 벗어나 본 적 없던 내게는 큰 도전이었고,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외로움이 커졌다. 함께 보고, 듣고, 느낄 남편이 곁에 없는 게 아쉬웠다. 그 여행 후 나는 더 이상 혼자 떠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내 위시리스트에 ‘남편과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써두었다.


그 꿈을 이제야 이루었다. 요즘 우리는 진하게 혹은 징하게 붙어 있다. 몇몇 일정을 제외하면 늘 함께이다. 밥도, 커피도, 운동도, 쇼핑도 같이 한다. 외주 원고를 쓰는 동안에도 곁에 있다. 숙소에 카드키가 하나뿐이라,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공동 현관을 오갈 때마다 한 명이 외출하면 다른 한 명이 배웅해야 한다. 말 그대로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셈이다. 일상의 리듬도 달라졌다. 아침마다 일어나라고 재촉하던 나는, 요즘은 함께 한껏 뒹굴거리다 일어난다. 해야 할 일 대신,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움직인다. 한국에선 낮잠을 자면 이유 모를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요즘은 낮잠 후 회복된 컨디션에 감탄하며 낮잠을 찬양하게 되었다.


태국에서의 시간이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한 달 후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생계와 진로로 막막해하고, 난방비 걱정에 보일러 눈금을 조절하고, 하루를 허투루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할지 모른다. 답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취업하고,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삶의 기반을 안정적으로 다지는 거라 믿으며 다시 일에 우리를 갈아 넣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한 끗이 생길 거라 믿는다. 서로를 위해 용기 낸 이 결심, 실행으로 옮긴 우리. 그리고 여행자인 동시에 생활자로 살아낸 이 한 달의 시간이 우리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길 것이다. 이 시간이 앞으로의 우리를 단단하게 지탱해 줄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기록해두고 싶다. 시간이 흐르면 지금이 생각과 일상이 흐릿해질 테니까. 지금 쓰는 이 글이 태국에서의 시간을 잘 담아 기억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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