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한 달 살기, 숙소에 대하여

말을 섞지 않아도 전해지는 다정함과 매일 익숙해지는 풍경

by 백수쟁이

남편과 함께 태국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방콕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 지역의 작은 아파트, A, B, C 세 개 동으로 구성된 곳이다. 우리의 숙소는 A동 11층. 문을 열면 부엌이 보이고, 작은 거실과 방 두 개가 이어지는 단출한 구조다. 창문 너머로는 높은 빌딩 대신 푸른 하늘이 보인다. 창가 옆 침대에 누우면 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좁은 공간에 처음엔 답답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우리는 이 작은 집에서 충분히 잘 지내고 있다.


거실에서는 함께 밥을 먹고, 가끔 TV로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은 거실 소파에 앉아 쓰고 있고, 남편은 침대에 누워 게임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별 것 없는 풍경이 요즘 우리에겐 가장 큰 안식이다.

하지만 내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집 밖에 있다. 바로 아파트의 공용 공간들이다.


1층 라운지는 소파가 널찍하게 놓여 있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조용하다. 마치 전세 낸 것처럼 혼자 앉아 책을 읽기에 딱 좋다. 각 동마다 다른 공용 공간이 있어 다양하게 누릴 수 있다. A동엔 헬스장, B동엔 수영장, C동엔 코워킹 스페이스와 야외 정원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찾는 곳은 C동의 야외 정원이다. 구석지고 그늘진 이곳은 늘 서늘하고, 커다란 나무와 초록이 가득해 마음까지 차분해 진다. 나는 아침이면 이곳으로 간다. 모자를 눌러쓰고, 양치만 한 채로. 모닝 페이지를 쓰기 위해서다. 집에서도 쓸 수 있지만, 겨울에 야외에서 글을 쓰는 이 호사를 누리기 위해 굳이 나간다. 마침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어 나는 그곳을 ‘모닝 테이블’이라 부른다.


대부분은 혼자 가지만, 가끔 남편과 함께 가기도 한다. 태국에 온 이튿날, 공간 소개를 핑계 삼아 함께 다녀왔고, 크리스마스엔 둘이 앉아 카드를 썼다.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는 외주 원고를 쓴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이 묵묵히 앉아 일하는 풍경이 낯설면서도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처럼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감각이 반갑다.


태국에 오기 전,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공간은 수영장이었다. 수영복도 수경도 야무지게 챙겼지만, 아직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영장에서 목욕하는 비둘기를 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곳을 떠날 때까지 수영은 못 할지도 모르겠다. 대신, 의외로 자주 찾게 된 곳이 있다. 바로 헬스장이다.


어느 날 외출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숙소에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했다. 운동이라도 하자며 남편과 함께 헬스장으로 향했다. 나란히 러닝머신에 올라 걷고, 스쿼트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태국에서 처음으로 땀을 흘렸고, 샤워 후 맥주 한 잔까지 더하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날 이후, 종종 헬스장에 가게 되었다.

한 달 남짓 머무는 이곳에는 ‘이웃’이라 부를 사람은 없다. 대부분 여행자처럼 짧게 머무는 이들인지 다양한 언어가 오간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곤니치와’라며 인사한 적도 있다.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어느새 익숙해진 얼굴들이 생겼다.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 매일 아침 정원에서 청소하며 “사와디카” 인사를 건네는 직원, 입구에서 절도 있게 경례해 주는 경비 아저씨까지.


말을 섞지 않아도 다정함이 전해지는 사람들이 있고, 매일 조금씩 익숙해지는 공간이 있다. 그게 참 좋다. 작은 집과 풍요로운 공용 공간, 낯설지만 익숙해진 얼굴들. 이 모든 풍경이 감사하고, 오늘도 이곳에서 잘 지내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왼 : 숙소에서 보이는 풍경 / 오 : 밖에서 본 숙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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