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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득 Feb 11. 2024

풍경

240211

 아파트 주변의 정원은 항상 정돈된 모습이다. 심지어 쓰레기장도 정돈되어 있다. 수많은 이들의 욕구와 그에 따른 요구에 의해 공간이 정리된다. 개인의 크고 작은 욕구를 모두 수용하며 진화한 이 주거형태를 위에서 바라보면 오묘한 기분이 든다. 아파트 단지를 거닐며 수평적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든다. 오전까지만 해도 바람과 햇빛을 느끼며 걸어 다녔던 자신이 시뮬레이션 게임 속 가상인물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런 것들이 뭐가 좋다고 눈을 지그시 감으며 감상에 젖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구로다 타쿠야의 연주 볼륨을 더 높였다.


 원룸촌 앞 위치한 오래된 초등학교의 풍경은 이제 예전 같지 않다. 체육대회를 해도 운동장 절반을 채우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도색만 새로 하여 잔뜩 구부러진 철봉과 그 옆을 지키는 소나무 정도다. 막상 나조차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구가 명확하지 않다. 하나 세상의 생기가 점차 줄어드는 기분이 들어 아쉽긴 하다. 해가 점차 하늘 높이 오르면 젊음보다 강력한 순수함을 가진 아이들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진다.


 내가 알던 동네 슈퍼는 모조리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파는 물건은 별반 다르지 않아 불편함은 없지만 어쩐지 슈퍼의 꽝꽝 언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었던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성에가 잔뜩 생겨 정말 얼음과 구분하기도 어려운 아이스크림 말이다. 시간이 흘러 사라지는 제품과 신제품이 서로 교차하지만 이름부터 성의 없는 PB제품의 포장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누군가는 가성비가 좋다며 그런 제품들을 골라먹겠지만 나의 손은 여전히 옛날 과자, 옛날 아이스크림에 멈춰있다.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며 등교하던 친구는 이제 아이의 등원을 책임지는 부모가 되었다. 학교가 끝나면 오락실로 뛰어가던 친구는 주말에도 접대 골프를 나가느라 집에서 쉬는 날이 없다. 천문학자가 되겠다던 친구는 서울의 빌딩 숲 속 야경을 책임지는 별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추억할 시간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먼 어린 시절보다 비교적 가까운 5년 전 TV 예능의 명장면으로 헤집어진 마음속을 달래며 살아간다.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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