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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득 Feb 18. 2024

아무 일도 없었다

240218

 이슬이 맺힌 손잡이를 당겼다. 차 밖으로 안개가 자욱한데 입김까지 나오는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이 덜 깨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안전벨트 끝자락을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을 몇 차례 쥐어짜고 나서 안전벨트를 당겼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 시간은 넘게 남았지만 시동을 걸었다. 엔진의 열이 오르기 전에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췄다. 잡음을 뚫고 정확한 발음의 남성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제가 더욱 악화된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지금 내게 무슨 상관이 있겠나 생각하며 출발했다.


 짐칸 밴딩벨트의 갈고리가 덜그럭거리고 창문 틈을 넘어 흙냄새가 넘어왔다. 매일 반복되는 의미 없는 순찰 중 하나였다. 라디오의 시시콜콜한 대화를 흘려들으며 드라이빙 분위기를 내보려 팔을 창문에 올려뒀다. 늘 지나는 비탈길의 끝무렵의 삼거리 도착했다. 평소처럼 좌회전을 하려던 찰나 우측 멀리서 알 수 없는 섬광이 일었다. 사실 섬광이든 굉음이든 무시하고 가서 쪽잠이나 더 잘까 고민했으나 후에 일이 커질까 찜찜한 일이 생길까 걱정되어 급하게 핸들을 돌렸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다.


 막상 도착하니 섬광의 근원지는 어딘지 알기는 어려웠다. 아마 저기쯤 뭔가 일어났다 싶은 곳을 바라보니 철문 넘어 사람 두 명이 서있었다. 문을 열어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차량을 잠시 길가에 멈춰 세웠다. 기지개를 피고 나니 차 밖은 내부보다 더 추웠다.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메비우스 한 개비를 꺼내 불을 지폈다. 담배를 물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그들을 크게 불러보았지만 그들은 뭔가에 몰두한 듯 이 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에 쪼그려 앉아 트럭 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열어둔 창문을 넘어 해가 떠올랐다. 이런 하루가 100번을 더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반복된 삶 속에서도 딱히 부지런해지지 않는 자신을 보며 태생의 한계를 느꼈다. 정말 이런 나태함을 못 견디고 부지런히 살고자 하는 유전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담배가 필터 끝까지 타들어갔다. 슬슬 아무 문제없으면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일어나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담뱃불을 땅에 비볐다. 축축한 바닥이었지만 약간의 흙먼지가 연기와 함께 퍼져나갔다. 오늘은 아무 일도 없었다.




*모든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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