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가면 따뜻함이 있다.

사랑, 따뜻함이 통하는 세상,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통하는 세상

by Myriad

요즘 지식과 경제 분야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그런 책들만 주야장천 읽었다. 그곳에서 나를 찾고 내 삶의 방향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똑같은 내용만 계속 읽어대니 지겨웠다. 그럴 때 내 머리를 식혀주는 것이 소설이다. 불편한 편의점 베스트셀러라 하니 마음이 편했다 도전하지 않고, 고민해도 되지 않으니 그냥 읽어보자.

편의점 주인인 할머니가 지갑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된다. 서울역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며 지갑을 찾는 과정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는데 그 남자는 다름 아닌 노숙자였다. 냄새나고 술에 절어있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노숙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갑을 빼앗아 주인을 찾아주기로 하고 지갑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한다. 지갑 주인은 편의점 사장님, 지갑을 찾아준 노숙자가 고마워 편의점 사장님은 사례를 하려 하지만 극구 사양하는 노숙자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자기 편의점 위치를 알려주며 배고플 때 아무 때나 편의점 와서 끼니를 해결하라고 말해준다. 노숙자는 매일 끼니를 때우러 갔지만 염치없는 노숙자는 아니었다. 폐기 도시락을 먹으면서 최대한 편의점 주인에게 피해 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고, 주인은 그런 노숙자가 싫지가 않았다. 편의점은 청파동 어느 골목에 위치한 작은 편의점, 장사가 잘 되지 않기도 하고, 좋은 위치가 아니라서 물건을 많이 갖다 놓지도 않아 항상 찾는 것이 없을 때도 있는 그런 곳이었다.

사장님과 아르바이트 생이 있지만, 야간 알바는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야간 알바 자리가 급해 사람이 구해지지 않자 사장님이 노숙자 독고 씨에게 알바 제안을 한다. 독고 씨는 거절하지만 사장님의 부탁으로 도움이 되고자 제안을 받아들이고 사장님은 독고 씨에게 가불을 해주고 그 돈으로 작은 방을 얻게 되고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독고 씨는 제법 기억력도 좋고 해서 일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조금씩 사회화가 되고 독고 씨는 사실 노숙자 이전의 기억이 없다. 그 이유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알코올성 치매로 지난 기억이 없다. 그러면서 서울역에서 살았던 것, 사장님의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독고가 변하게 된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소통, 공감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천천히 자기 기억을 찾아가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찾아간다. 독고의 과거 직업은 성형외과 의사였고 의료사고와 자신의 가정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술을 마시다가 서울역에서 노숙자가 되었다. 그리고 편의점 사장님을 만났다. 그런 과정에서 모든 이해해주고 힘이 되어준 사장님 덕분에 독고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소설이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노숙자를 내 사업장에 들일 수 있을까? 사장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아르바이트 생들에게 전달되는 마음속에 지난 내가 떠올랐다. 아르바이트생을 들이고 사람과의 소통을 어떻게 할지를 몰라 답답하면 불편함을 주고 어쩌면 기회조차 주지 않고 애초에 나랑 맞지 않는다 생각했던 그래서 서로가 불편하게 지냈고 매장에 나가기 싫었던 적이 많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었으면 좋았을 걸...

엄마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아이들과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아이들한테 화 내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그러다 안되면 달래기도 하고 보듬어 주기도 하며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기 위해 노력한다. 과정이 어떻든 부모의 목표는 안전하고 좋은 방향으로 아이를 이끌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사업장에서도 내가 내 아이에게 주는 것처럼 그 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한 것들이 미안하다. 내 사업장을 위해 일 해 준 고마운 인연인데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봐 줄 걸 하는 마음이 든다. 그런 작은 나의 행동들이 그들이 살아가면서 작은 힘이 되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봐야겠다. 그런 작은 힘이 사회를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저 나밖에 모르고 나만 잘 살면 되지 라는 생각이었다. 아이들이 크면 클수록 내 아이들도 어딘가에서 좋은 어른을 만나 성장할 수 있게 된다면 살아가면서 얼마나 힘이 되며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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