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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y Oct 09. 2024

사랑하는 아들아, 엄마 생각을 말해도 될까?

23.07.18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448일 차



퇴사를 결정했다. 작년 11월에 첫 출근을 했으니, 1년을 약 두 달 앞두고 결심한 일이다. 이미 마음이 꽤나 떠난 상황에서 퇴직금을 위해 1년을 채우는 건 나를 위한 일이 아닌 듯하다. 눈 꽉 감고 버티면 버텨지겠지. 하지만 내일 당장 서울을 떠날 수도 있는 일이고, 아니면 이 세상에서 없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타산적인 생각은 과감하게 버리고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선택하기로 했다. 

 퇴사를 결심하고 제일 먼저 엄마에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한 평생 큰아들만 바라보면서 살았던 당신. 어떤 선택이든 내가 결정한 대로를 존중해 주고 응원해 주는 당신이었고, 이번 또한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퇴사하고 무엇을 할 거냐는 미래에 대한 질문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반찬은 다 떨어지지 않았는지, 타지에 사는 아들 걱정이 다분히 묻어나는 질문들만 차분이 이어가셨다. 

 잠시간의 대화 후, 내가 먼저 엄마에게 퇴사 후 무엇을 할지 말했다. 글을 쓰고 싶다. 남은 생을 글로서 밥벌이를 해보고 싶다. 유튜브는 내가 잘했던 거니까 유튜브도 함께. 엄마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뜨끔한 마음에 이것저것 미래의 것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아들, 엄마 생각을 말해도 될까?"


나의 텍스트에서 조급함을 알아차린 걸까, 엄마는 한 마디를 툭 내뱉고 주욱 말을 이어갔다. 


 



"반년만이라도 푹 썩어부러"

이 말이 그렇게도 애잔할 일일까. 푹 썩으라니, 남들에게 퇴사를 결심했다는 말을 하고 나서 단 한 명도 퇴사하고 무엇을 할 것이냐는 말을 묻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뜻에서 했던 말이었겠지만, 어느 누구도 나에게 잘 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쉬는 것도 아니고 푹 썩으라니. 맞다. 서울로 올라오고 제대로 나를 푹 썩혀본 적이 없다. 대학교, 학원강사, 스타트업, 헤드헌터, 그리고 다시 스타트업, 하나의 졸업장을 받고 명함을 네 번 바꿀동안 그 어느 순간에도 푹 썩혀본 적이 없다. 몸과 마음은 그간 말 하진 못했겠지만 꽤나 웅웅대며 아우성거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썩어보기로 했다. 나를 삭혀보기로 했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아니 그 이상도 될 수 있겠지. 돈? 다행히도 당분간은 일상을 채워갈 만하다. 그럼 저금은? 생각하지 않는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진즉에 알았지만, 내 욕심이 항상 눈을 가리고 있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제대로, 잘 썩게 두는 것이다. 


엄마의 말을 듣고 하루가, 매일이, 더욱 소중해진다. 더욱 애절해진다. 

남들이 뭐라 말하든, 그것이 보편적인 가치에서 벗어난 일이든, 그래서 꽤나 철없게 보일 수도 있고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든, 상관없다.


지금 난 잘 썩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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