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소리

7 - 화 — 형제의 목소리

by 나리솔

형제의 목소리



책의 여섯 번째 장에는 짧지만 묵직한 문장이 있었다.


“형제에게 말해. 너도 외로웠다고.”


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심장이 세게 내려앉았다.

그 이름조차 꺼내지 못했던 사람—나의 형, 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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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그림자


형은 나보다 세 살이 많았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불안정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소리를 질렀고, 어머니는 묵묵히 버텼다.

그때마다 형은 나를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형의 손은 거칠었지만,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벽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달라졌다.

형은 점점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공부로 도망쳤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결정적인 사건은 군대 전역 후였다.

형은 집안 형편 때문에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고,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어머니가 형에게 “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을 때, 형의 얼굴에 스쳐 간 어두운 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형은 내게 차갑게 굴었다.

명절에도, 어머니 제사에도, 우리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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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결심


책이 내게 요구한 건 단순한 고백이 아니었다.

“너도 외로웠다고 말하라.”

그 말은, 그동안 형에게 등을 돌린 내 마음까지 인정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결국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길게 이어졌고, 몇 번의 신호 끝에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

“형,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좋아. 오래된 포장마차 앞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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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의 자리


저녁, 약속한 곳에 도착하니 형이 먼저 와 있었다.

예전보다 체격은 줄었고, 얼굴은 주름으로 가득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오랜만이네.”

형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쌓인 세월이 느껴졌다.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아무 말 없이 국물만 떠먹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 우리… 왜 이렇게 됐을까?”


형은 씁쓸하게 웃었다.

“너는 모르겠지. 나는 늘 너를 지켜줬는데, 결국 집안에서도, 세상에서도 나만 뒤로 밀려났어. 너는 공부하고, 나는 일하고. 어머니조차 네 편이었잖아.”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늘 미안했지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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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화


“형… 사실 나도 외로웠어.”

내 목소리가 떨렸다.

“형이 나를 지켜줬던 건 알아. 근데 형이 멀어지니까, 나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어.

엄마는 나를 챙겨줬지만, 형만큼은 날 외면했지. 그래서… 나도 버려진 것 같았어.”


형은 술잔을 내려놓았다.

오래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씩 흔들렸다.

“…너도 그렇게 느꼈다고?”

“응. 나는 형이 나를 미워한다고만 생각했어. 그래서 더 말하지 못했어. 근데 사실, 형이 없으면 나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포장마차 바깥에서 젊은 연인이 다투는 소리가 들렸고, 노인의 기침 소리도 섞여 들어왔다.

그 일상의 소음 속에서, 형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나도 미안하다. 그땐 나도 너무 힘들었어. 네가 잘 되는 게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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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순간


우리는 말없이 술잔을 부딪쳤다.

그 소리는 짧았지만, 마치 지난 세월의 벽을 조금 깨뜨린 듯 울렸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가족은 피로 이어져 있지만, 그 피는 때로는 상처이자 굴레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리 멀어져도 끊어낼 수 없는 인연이기도 하다.

말하지 못한 외로움조차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형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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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책을 덮자, 여섯 번째 문장이 사라졌다.

곧 새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스스로의 꿈에게 말해. 왜 포기했냐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밤, 그러나 어딘가에서 작은 불빛이 반짝였다.

다음 날, 책은 나를 더 깊은 질문으로 이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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