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화 아이의 목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 눈을 떴다. 집 안은 여전히 적막했지만, 오늘은 그 적막 속에 이상한 울림이 섞여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은 이미 새 장을 펼치고 있었고, 그 첫 문장은 아이의 필체처럼 서툴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아빠, 나 여기 있어.”
나는 순간 손끝이 얼어붙는 듯했다. 아빠.
그 호칭은 내 삶에서 한 번도 제대로 불려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나는 서둘러 책을 덮으려 했지만, 이미 방 안 가득히 작은 발소리가 번져 나왔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마룻바닥 위를 맨발로 달리고 있었다. 쿵쿵, 웃음 섞인 숨소리, 그리고 낯설 만큼 친근한 목소리.
“같이 놀자.”
나는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그러나 복도는 비어 있었다. 대신 오래 전 잊어버린 듯한 기억이 떠올랐다. 스무 살 무렵, 한때는 사랑했지만 끝내 지켜내지 못했던 연인. 우리의 선택, 우리의 두려움, 그리고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미래.
만약 그때 조금 더 용기 냈더라면…
지금쯤 나는 아버지였을까.
나는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 목소리는 환상일 뿐이다.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목소리는 다시 이어졌다.
“나는 네 안에서 태어났어. 네가 포기한 순간에도, 네가 외면한 시간에도. 나는 네 꿈이자, 네 두려움이야.”
아이의 목소리는 꾸짖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품으려는 듯 따뜻했다. 그 목소리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의 슬픔이 배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방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다. 책의 문장은 계속해서 새겨지고 있었다.
“아빠, 나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지켜보고 있어.
너의 후회 속에서, 너의 바람 속에서, 나는 자라.”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는 차마 손으로 글씨를 지울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미래의 목소리이자,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창밖에는 아이들이 공을 차며 웃고 있었다. 그 소리와 겹쳐 들리는 환청 속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오늘은 여덟째 날이었다.
내일은 또 다른 목소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두려워하는 진실이 다가올까.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