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화 잃어버린 사랑의 목소리
밤은 유난히 길었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오래된 벽지 위에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은 이미 다음 장을 열고 있었고, 거기엔 다른 날보다 훨씬 길고 무거운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당신은 왜 나를 떠났나요?”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 문장은 낯익은 목소리로 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떠나간 사람, 그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보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 두었던 사랑.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들려왔다.
“당신, 나를 기억하고 있나요?”
나는 고개를 들어 방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선명하게,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듯 이어졌다. 그 음색은 분명 그녀의 것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나를 끝없이 흔들어 놓던 그 목소리.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 속에 눌러 담았던 감정들이 서서히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나타나는 거지?”
“나는 떠난 게 아니야. 다만 당신이 나를 잃어버린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원망이 아니라 담담한 고백처럼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오래전 마지막 만남을 떠올렸다. 비 오는 오후, 우리는 좁은 카페 창가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커피잔을 돌리며 시선을 내게 주지 않았다. 나는 끝내 붙잡지 못했다. 내 안의 두려움과 자존심이 그 순간을 무너뜨렸다.
“그날, 나는 기다렸어. 당신이 한마디만, 단 한마디만 해주기를. 하지만 당신은 침묵했지. 그래서 나는 떠날 수밖에 없었어.”
나는 고개를 떨궜다. 침묵, 그것이 내 모든 잘못의 시작이었다. 사랑한다는 말 하나면 충분했을 순간에,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칼이 되어 그녀를 멀리 밀어냈다.
방 안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나는 마치 과거의 카페 속에 다시 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그녀의 눈동자는 젖은 빛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내가 중얼거리자, 목소리는 조용히 대답했다.
“사랑은 돌아가지 않아. 하지만 기억은 남아. 그리고 그 기억은 당신을 아직도 살아 있게 만들어.”
나는 가슴이 저려왔다. 잃어버린 사랑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한 힘이기도 했다. 그녀가 떠났기에, 나는 여전히 그 빈자리를 안고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의 문장은 서서히 흐려졌다. 그러나 마지막 글씨만은 또렷했다.
“사랑을 잃는다는 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야.”
나는 책을 덮고 창문을 열었다. 밤바람이 차갑게 불어왔지만, 그 안에 오래된 향기가 섞여 있었다.
그 향기는 그녀의 것 같았다.
오늘은 아홉째 날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목소리가 나를 찾아올까.
나는 여전히 두려웠지만, 동시에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