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소리

16장 — 그림자와 반영 (그늘과 비추임)

by 나리솔


16장 — 그림자와 반영 (그늘과 비추임)



도시는 그들만의 잔혹하면서도 찬란한 삶을 무자비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밤의 고요함 속에서 빛과 소음으로 끊임없이 맥동하는 도시의 심장처럼, 가로등은 마치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화가처럼 축축한 아스팔트 위에 희미하고도 금빛 원형의 빛을 마구 뿌려댔다. 그 빛들은 순간의 행복, 혹은 적어도 짧은 한때의 망각을 약속하는 듯한 일렁이는 환영의 섬들을 만들어냈다. 네온사인으로 화려하게 수놓아진 상점의 진열창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끊임없이 유혹했고, 어딘가로 쉼 없이 흘러가는 셀 수 없는 사람들의 강물은 멈추지 않고 인도를 따라 흘러넘쳤다.

색깔과 소리,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실루엣의 이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왠지 모르게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마치 뜻밖의 바람에 실려 이곳에 불시착한 여행자 같았고, 자신만의 궤적도 없는 방랑자 같았다. 이 즐겁고 때로는 귀청을 찢을 듯한 거대 도시의 소음 뒤편에는 훨씬 더 깊은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고 그는 느꼈다. 도시인들의 영혼에 깊이 뿌리박힌 집단적인 피로감. 그는 바쁜 일상 속에서 지쳐 보이는 사람들의 형식적인 웃음 뒤에서 가볍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불안감을 읽어냈다. 그리고 수많은 눈에 반사되어 빛나는 네온 불빛의 눈부신 광채 뒤에서는 단지 뜨겁게 타오르는 공허함만을 느낄 수 있었다. 텅 비어 있으면서도 끝없이 깊은, 부주의하게 손을 대는 순간 누구라도 집어삼킬 듯한 그런 공허함이었다.

문득 그의 시선은 어느 한 진열창에 사로잡혔다. 낡은 보석상이거나 시간 속에 멈춰 선 고풍스러운 골동품 가게의 창이었다. 마치 오래된 거울처럼 희미한 유리는 느릿하게, 마치 마지못해서 그의 얼굴을 비춰냈다. 하지만 그 반사된 자신의 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기묘했다. 살아있는 듯했다! 거울 속 자신에게서는 이전에는 결코 느껴본 적 없는, 지나치게 예리하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한 그 눈빛은 주인공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거울 속 반영된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 비록 자신은 꼼짝 않고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사된 얼굴의 입술은 흔들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듯이 움직였다. 주인공의 눈은 그 기묘한 움직임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넌 어째서 그 길을 걸어가는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주인공은 움찔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그 기이한 거울 속의 자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반영된 그가 다음 말을 이어갔다.

“대체 누구를 구하려 하는 거지? 그들인가, 아니면 너 자신인가?”

그 목소리는 너무나 깊고 둔탁하여 마치 깊은 우물 바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았다. 주인공은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소리에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만약 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면, 그때 너에게 무엇이 남을까?”

이 질문들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그의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과거의 목소리들을 떠올리게 하는 질문들이었다. 멀리 떠나간 형의 목소리, 이제는 희미해진 꿈의 속삭임, 사랑하는 어머니의 다정했던 음성…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 들리는 목소리는 그가 오랫동안 의도적으로 억눌러왔던 바로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창 속의 반영은 그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었다. 그에게 겁을 주는 유령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일부였다. 그가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자신의 ‘그림자’였다.

수치심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실수를 기억해냈다. 분노 속에서 내뱉었던 모진 말들, 나약함 때문에 내디뎠던 잘못된 발걸음, 그리고 붙잡아두려 노력했으나 끝내 놓쳐버렸던 소중한 사람들… 그 모든 죄책감과 후회들이 거울 속의 반영에서 되살아났다. 마치 그 반영이 그의 기억을 먹고 사는 존재처럼, 실수 하나하나가 생생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그를 짓누르는 생생한 증거였다.

바로 그 순간, 주인공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오래된 원초적인 본능이 온몸을 덮쳐왔다.

지나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인파 속에서, 한 명의 실루엣이 섬처럼 분리되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실루엣의 움직임은 너무나 익숙했고,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다. 그의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했다. 그는 그 걸음걸이를 알아보았다. 과거로부터 온 사람.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고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내면의 그림자 (창 속의 반영)와 외면의 그림자 (다가오는 실루엣)가 마치 두 개의 어두운 흐름처럼 서로에게 포개어졌다. 주인공은 그 둘 사이에 서 있었다. 마치 두 개의 거울 사이에 갇힌 듯했다. 한 거울은 그의 과거를 냉혹하게 비추고 있었고, 다른 거울은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의 영혼이 두 개의 시간대에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는 홀린 듯 실루엣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도시의 소음은 그의 발걸음을 삼켰고, 번잡한 도시의 웅성거림은 그의 생각을 무자비하게 억눌렀다. 하지만 쫓는다는 느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분명해졌다. 그 실루엣은 그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불빛이 희미해지고 어두운 벽만이 끝없이 이어지는 길로. 그가 깊이 들어갈수록, 이 길이 단순히 도시의 거리만을 걷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 내면의 영혼의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 더욱 강렬해졌다.

골목길의 모든 굽이진 곳은 마치 자기 자신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서는 듯했다.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 하나하나는 그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떠올리게 했고, 굳게 닫힌 문은 놓쳐버린 수많은 기회들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마침내 그는 아주 좁은 골목길의 고요 속에서 멈춰 섰다. 실루엣은 그 자리에 없었다. 마치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듯했다. 하지만 옆 창문에 비친 그의 반영은 여전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깨달았다. 피할 수 없는 적과의 만남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그'와 대면하기 전에, 그는 먼저 자신의 심장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그'와 마주해야만 한다는 것을. 진정한 전투는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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