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소리

17장 — 골목길에서의 재회 (심연의 그림자)

by 나리솔


17장 — 골목길에서의 재회 (심연의 그림자)



골목길은 마치 시간에 갇힌 듯, 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수많은 소음으로 밤을 지새우는 도시의 심장부치고는 너무나도 고요했다. 도시의 숨소리, 멀리서 들려오던 자동차 경적,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조차도 이곳만은 비껴간 듯,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가 먹혀버린 듯한 절대적인 침묵이 영롱하게 감돌았다. 주인공은 방금 전 익숙한 듯 낯선 실루엣이 사라진 어둠 속을 꿰뚫어 볼 듯 응시했다. 그의 심장은 마치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를 카운트다운하듯이, 불안하고 묵직한 박동을 토해내고 있었다. 쿵, 쿵, 쿵. 마치 시간의 흐름마저 멈춰버린 듯한 그 공간에서, 그의 모든 감각은 날카롭게 곤두섰다. 숨죽인 채 어둠 속에 녹아든 자신을 노리는 존재를 기다리듯, 그의 오감은 일제히 비상 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때, 고요를 찢고 튀어나온 낮은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 소리는 단순히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가 아니었다. 마치 그의 영혼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뼈를 울리는 듯한, 너무나도 직접적이고 위협적인 일격과도 같았다.

"너는… 결국 이곳으로 올 것을 알고 있었겠지."

어둠 속에서 서서히 형태가 나타났다. 희미한 달빛조차 닿지 않는 그림자 깊숙한 곳에서, 한 인영이 마치 심해의 괴물처럼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형체의 얼굴은 아직 후드 깊숙이 가려져 있었지만, 잊을 수 없는 걸음걸이,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간 고개 짓— 그 모든 몸짓 하나하나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의 뇌리 속 깊은 곳, 가장 어둡고 두려운 기억의 서랍 속에 꽁꽁 숨겨두었던 봉인된 공포가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거친 숨을 내쉬며 되살아나는 것을 주인공은 똑똑히 느꼈다. 온몸의 털끝 하나하나가 쭈뼛 서고,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오르는 듯한 섬뜩함이었다.

그 인영은 주인공의 바로 코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 듯, 깊게 드리워져 있던 후드가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마침내, 그 그림자에게 이름과 얼굴이 부여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어둠이 걷히고 드러난 얼굴은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는 바로 자신의 유년기를 함께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둘도 없는 형제처럼 믿고 의지했던 벗. 하지만 그 친구는 언제부턴가 차가운 배신자로 변모하여, 가장 먼저 주인공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장본인이었다. 수많은 행복과 추억을 잔인하게 짓밟고, 셀 수 없이 소중했던 것들을 파괴했던 장본인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그의 등장은 단순한 재회를 넘어, 과거의 모든 상처와 고통을 한꺼번에 현실로 소환하는 악몽과도 같았다.

"왜…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주인공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 속에는 감출 수 없는 분노와 깊은 슬픔, 그리고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뒤섞여 있었다.

적은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답했다. 그 미소는 그의 불안정한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 거의 동정심마저 느껴질 정도로 냉정하고 서늘했다.
"너에게 중요한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기 위해서다. 네가 듣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 목소리들… 그것들은 결코 너를 밝은 빛으로 인도하지 않아. 그저 너를 심연의 가장 깊은 나락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기 중에서 충돌했다. 적의 눈빛에는 주인공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그의 가장 깊은 곳의 비밀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섬뜩한 통찰력이 담겨 있었다. 그 오만하면서도 연민 섞인 시선은 주인공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했다.
"너는 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어." 적은 차가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어제는 형의 목소리를 들었고, 오늘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쫓았지. 그렇다면 내일은… 과연 누구의 목소리를 찾아 헤맬 건가? 너는 그 목소리들이 너를 돕기 위해 찾아온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그들은 단지 너에게 남아있는 힘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한 조각씩 뜯어 먹으며 너를 약화시킬 뿐이다."

이 말은 어떤 날카로운 칼날보다도, 어떤 강력한 물리적 공격보다도 더 깊숙이 그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주인공은 섬뜩하리만치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과거의 그 '목소리들'이 찾아올 때마다, 그는 마치 영혼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공허감과 피로감에 시달렸다는 것을. 마치 누군가 그를 갉아먹는 듯한 상실감이었다. ㅠㅠ 하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모든 신념이 패배했음을 선언하는 것과 같았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외면하려 했다.

"왜… 왜 나에게 이토록 의심을 심으려 하는 거지?" 주인공이 흐트러지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적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섬뜩한 진실을 속삭였다.
"의심은 이미 너의 내면에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단지… 그 이름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잠시 동안 골목길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낡은 파이프에서 풍겨오는 꿉꿉한 습기와 녹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저 높은 곳, 낡은 건물의 지붕에서는 빗방울들이 뚝, 뚝 떨어졌다. 마치 평온함이 지속될 마지막 몇 초를 알리는 시계추 소리처럼, 모든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소리였다. 똑, 똑, 똑. 빗방울 소리가 멈추는 순간, 모든 평화가 끝날 것만 같았다.

주인공은 망설임 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의 내면에 일렁이던 미세한 불안감은 거친 파도처럼 휘몰아쳐 올라오고 있었다.
"만약 네 말이 진실이라면," 그는 이전과는 다른, 그러나 아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왜 아직도 여기에 서서… 너의 말을 계속 듣고 있는 걸까?"

적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는 찰나의 순간, 미약하게나마 존경심과 혹은 알 수 없는 종류의 애석함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것은 한때 동지였던 자의 깊은 감정일까, 아니면 이 고통스러운 만남 속에서 그가 깨닫는 어떤 진실일까. 그 의뭉스러운 감정은 곧바로 희미한 미소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네가 그들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진실로 네가 찾고 있는 것은… 바로 너 자신이기 때문이지."

그의 마지막 말은 마치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주인공의 의식 속에 박혔다. 그리고 그 순간, 적의 그림자는 다시 한번 뒤로 물러서며 어둠 속으로 스르륵 스며들어갔다. 그는 마치 도시의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네가 진정으로 너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 날," 그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희미한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그때 우리는 다시 만날 거야. 그리고 그때,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다."

골목길은 다시금 텅 비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남겨진 것은 오직 주인공뿐이었다. 차가운 바람만이 벽 사이를 스치며 마지막 말의 메아리를 저 멀리 실어 나를 뿐이었다. 그 밤의 고요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제 그의 외로움은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차갑고 날카로운 불안감과 수많은 질문, 그리고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적은 그를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고, 적의 말은 결국 어느 정도 옳았다. 모든 해답은 과거의 목소리들이나 외부의 존재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심연 속에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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