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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초이 Madame Choi Dec 29. 2021

Ep11. 번역기가 나에게 잘못을 했다.

<성조 없는 베트남어 번역 오류>

 음... 그래... 번역기가 잘못을 했다기보다는 이제 호치민 살이 6년 차가 되어가는데 아직도 번역기 돌리는 내가 잘못을 한 거지...


 전에 '에피소드 4번'에서 얘기했듯이 이곳에서 지내며 나는 한국어도, 베트남어도, 영어도 안 되는 '0개 국어자' 혹은 '경계성 언어 장애?' 이쯤 어느 부분에 서 있다. 그래서 '파*고'와 '구* 번역기를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이 번역기들도 베트남어는 잘 못 해서 눈치를 가지고 이해를 해주어야 하는데 어떤 때는 내 눈치로 때려 맞추기보다 번역기 눈치가 더 엉망이다. 오늘은 그래서 벌어지는 아주 '빵! 터지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한다.


  2021년 7월 9일.

내가 살고 있는 베트남 호치민 시는 심한 팬데믹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강력한 봉쇄를 시작했다. 직장도 출근할 수 없었고 외출이나 모임은 당연히 모두 금지되었고 공단이나 삼성 같은 대기업은 직원들이 회사에서 텐트를 치고 숙식을 하며 귀가를 할 수 없었다. 이러다 보니 집에 오시는 메이드 이모님들도 출근을 못 하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때 다들 우스갯소리로 '남편은 못 와도 아주머니는 오셔야 한다...'라고 했었다.


 우리 집도 그랬다.

우리 가정에 정말 큰 도움이 되시는 이모님이 갑자기 못 오시게 되니, 나는 집안일과 육아의 토네이도를 맞이하게 되었다. 남편도 재택근무를 하고, 중학생 두 아이들은 5월부터 이미 학교를 가지 않았고, 4살 늦둥이 막내도 역시 5월부터 유치원을 가지 못했다.

봉쇄 기간에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가족 간에 강력한 거리두기' 라는데 왜 우리 집 식구들은 잘 지키지 않는지... 5명이 24시간 붙어 있는데, 음식점들도 영업을 하지 못하니 석 달 내내 모든 식사와 간식은 다 만들어서 먹어야 했고 정말 하루 종일 돌아서면 밥때, 또 돌아서면 밥때가 돌아왔다. 이 때는 빵이 다들 귀한 시절이라 솜씨 있는 사람들은 이 기간에 베이킹 실력이 늘었고 반대로 요리 똥 손인 나는 분명 빵을 만든다고 만들었는데 돌이 되었다. 성경 구절에 '누가 자녀가 빵을 달라는데 돌을 주며...'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게 나 일 줄이야...

그리고 다섯 명 모두 집에만 있으니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과 청소, 큰 아이들 공부 좀 봐주고 늦둥이 막내와 놀아주고 돌봐 주려니 하루가 정말 어찌 가는지 모르게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에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큰 탈 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정보가 없어 많이 불편했고

현지인들은 코로나 19에 많이 걸리고 또 많이 사망하였다. 그래서 그 기간에도 우리 메이드 이모님은 혹시나 우리 가족이 불편한 것은 없는지, 백신은 접종은 잘했는지... 등을 살피고, 나는 이모님과 가족들의 안전과 건강은 괜찮은지, 혹시 내가 도울 일은 없는지, 생활이 어렵지는 않은지.. 등을 살피느라 종종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럴 때 나는 번역기를 사용해서 이모가 보내온 메시지를 읽고, 답장도 하고 하는데 여기서 문제는 우리 이모님은 성조를 넣지 않고 알파벳만 사용하신다는 거다.

베트남어는 성조가 6개인데 성조에 따라 뜻이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예를 들자면 똑같이 알파벳으로 'ma'를 쓰는데도 성조에 따라 그 뜻이 다른데 각각 '어머니', '귀신', '무덤', '그러나', '말(동물)', '모(벼의 어린싹)'으로 구분된다. 이렇듯 성조 하나로 그 뜻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성조가 정확해야 하는데 가뜩이나 성조가 있어도 번역기가 번역을 제대로 못하는 마당에 성조를 찍어주지 않으면 참으로 난감해진다.


 그날의 문자 메시지는 이러했다.

"Chao madam. madam va gio dinh madam tat ca manh khoe chu a,,madam oi lu a hom nay lon lam oi phai khong a. thoa rat. nho lu a va madam va gio dinh madam. thoa cau mong madam va gio dinh luon luon manh khoe nha. madam oi noi voi lu a thoa yeu lu a nhieu nhieu nha. cam on madam xin chao."


그래서 나는 바로 '파*고' 번역기를 돌렸다. 그랬더니 결과가... 참...

"안녕 마담.마담. 마담. 까막까칠한 집. 까칠까칠한 집. 까칠까칠한 집. 까칠까칠까칠한 집. 호노쥐. 그리고 마담. 루온 허허 집. 마담님. 마담님. 안녕."


난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너무 웃기기도 하고 궁금했다. 그래서 베트남어를 잘하시는 우리 교회 목사님 사모님께 카톡으로 이게 무슨 뜻이냐고 여쭈었다.

이모가 보내주신 메시지를 복사해서 사모님께 보내고 내가 번역기 돌려서 나온 이 참담한 결과도 캡처해서 보냈다. 그리고 나의 판타스틱한 자의적 해석과 함께 말이다.


나의 판타스틱한 자의적 해석은...

"너네 집 까칠까칠 까맣고 쥐 나올 테니 내가 곧 갈게"

이모가 없어 너무 힘든 나의 삶에 빚대어 이모님이 곧 어떻게든 오신다는 뜻이었음... 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아서 말이다.


이걸 보고서 우리 교회 사모님은 완전 빵 터지셨다.

성조 없는 이모님의 메시지와, 그걸 이 모양으로 해석한 번역기의 번역과, 나의 자의적 해석 때문에 말이다.


아무쪼록 사모님은 쭉 읽어 보시고 다시 해석해서 보내 주셨다. 이모가 전한 메시지의 뜻은 이러했다.

"마담. 로아(우리 집 막내) 많이 컸죠? 로아와 마담 가족들이 그리워요. 온 가족 건강하길 기원해요. 제가 로아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말해주세요. 안녕."


 이렇게 마음을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였건만 나는 그저 나만 힘들다며 내가 생각하고픈 데로만 생각한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번역기의 한계였다.

글자는 번역할 수 있겠으나 사람의 마음을 어찌 다 살펴 번역할 수 있으랴...

 아무쪼록 번역기는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이 메시지 이후로 이모님은 보름 후부터 다시 출근을 하셨고 우리는 기쁘게 재회했다.

봉쇄 기간 동안 각자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을 잘 이겨내고 이렇게 건강히 다시 만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 이후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여전히 번역기를 돌린다.

그리고 이제 우리 이모님은 정성스레 성조를 찍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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