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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Jul 06. 2024

인생 잡채가 되길 바라는 그대들에게

또한 나에게도.

매일 아침.

수영을 하러 나간다. 열대지방인 이 나라는 태양도 6시면 한국 9시만큼이나 그 빛이 화려하다. 온 만물에 그림자 하나 없이 밝은 빛을 받고 있어서 사물들이 또렷하게 보이고 집안에서는 집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까지도 다 보인다.


공기는 말할 것도 없다.

다섯 시는 동이 트는데 여름장마 끝난 지점에 아침해가 조금 늦게 뜰 그 시기의 빛과 온도와 습기 같지만 여섯 시만 되면 대기 중의 습기는 어느새 바짝 마른 듯 훈훈하면서도 흐릿한 안개가 비칠 정도로 1층높이까지는 습습한 구름이 끼인 듯하다.


이 시간에 노 젓는 소리가 난다. 노 젓는 소리란 아파트 수영장에서 힘 좋은 아저씨가 접영 할 때 내는 소리를 말한다. 접영은 나비 ''자를 써서 그 수영자태가 물에서부터 물 밖으로 내 몸을 뛰어 올릴 때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듯이 팔로 물을 날갯짓으로 힘차게 밀어 올리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물 안에선 날아오른 몸이 물 밖에선 부력이 미치지 못하는 잔인한 중력에 의해 다시 물로 떨어지므로 온몸이 철퍽 소리를 내며 물에 빠지고 다시 날아오르기 위해 발부터 찰 때 또 철퍽 소리가 나므로 그 리듬이 꼭 풍랑이 이는 바다 위에서 배 한 척이 노를 저을 때 헛~ 둘~  하는 그 느릿하고도 힘찬 소리 같다.


노 젓는 한 남자가 아침수영장을 물소리로 깨울 때 그 동료들이 그 소리에 이끌려 상의를 훌러덩 벗고 팔을 온 방향으로 휘저으며 수영장으로 너도 나도 빠진다.

노 젓는 배가 한 척, 두 척, 셋, 넷  하고도 나까지 다섯 척의 배가 아침수영장 물에 파도를 일으키며 밤 새 고요하고 얌전한 거울이던 을 못살게 군다.


일곱 시가 넘고 여덟 시가 넘으면 해가 꾸역꾸역 아파트 높이 이상을 기어올라 결국엔 그 담을 넘어 수영장을 비추기 시작한다. 호찌민의 날씨는 태양이 다 한다. 그 해는 엄청나게 강렬해서 아침 여덟 시의 해가 해봤자 얼마나 밝을까 싶겠지만 정말 쳐다만 봐도 눈병이 나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 레이저가 강렬하여 피부 속을 뚫고 들어와 온몸이 이글이글 고기처럼 굽히는 듯하다. 아침볕이 좋다 하다 간 나처럼 백옥 같던 얼굴이 순식간에 토스터기에 오래 머물러 탄 빵처럼 거뭇거뭇한 자국이 양 볼 한가운데를 그리게 될 것이다...


남정네들이 자기들끼리 무호흡으로 접영을 하고 ,

힘과 체력은 남정네들과 함께하지만 육안상의 모습은 여자인 나는, 원피스를 입은 한국여인들과 온몸을 가린 래시가드를 입은 베트남여인들 쪽으로 다가간다.


우린 서로 그 나라의 말로 인사를 나누며 베트남인은 안녀엉 ㅇ하쎄이요 하고 나는 베트남어로 신짜오 또는 할로라고 말한다. 서로를 위한 작은 배려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자연스러운 자유형으로 수영장 끝과 끝을 유영하며 쉬다가 또 가다가 쉬었다를 반복하며 자유수영시간을 즐긴다.


여기서 공통분모로서 남정네와 여인들을 묶어주는 베트남부부가 있으니 이들로 인해 우리는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 할 것 없이 힘든 운동 끝에 모여 자유로운 수다타임을 가진다. 모두 다 영어는 기본적으로 하기에 영어로 소통을 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수영을 다섯 살 때부터 했으므로 그들에게 한 번씩 자신들이 힘들어하는 수영자세에 대해 힘들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 오래도록 수영을 할 수 있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보다 더 느린 분들에게 다가가 할 수 있는 영법에 대해 친절히 호흡하는 타이밍과 힘을 쓰는 부위, 그리고 자세에 대해 설명해 준다.


또 어떤 한국인 동생은 베트남어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베트남인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베트남어 한 단어씩 이상을 매일 조금씩 배워간다. 베트남인들 또한 한국어를 매일마다 조금씩 배우며 "자을 가~크으래~"라며 헤어지는 인사를 하며 모두가 다 서로가 서로를 돕고 돕는 순환되는 구조를 그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베트남인들은 거리낄것없이 아무나와 대화를 잘 나눈다. 수줍음이 나고 부끄러움이 나던 나도 이제는 그들과 이야기하는 게 즐겁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각자 나라의 전통음식을 만들어 서로 나눠주기까지 하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근사한 집 밥 한 상 해준 적 없고, 김치 한 포기도 담가준 적은 없지만 그들은 한국의 김치와 김밥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쩨라고 하는 베트남 전통음식과 망고스틴 밭을 갖고 있는 주인에게서 망고스틴 한 바구니를 받았다.

는 쨈? 에서 유래했을까.

매우 달지만 이곳에서는 째로 안 만드는 채소가 없다.

어떤 이는 고구마. 어떤 이는 바나나.

어쨌든 찌는 달달한 소스에 절여진 무엇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기력이 약해졌을 때에도 이들은 이걸 만들어먹는단다. 저 동그란 반죽은 찹쌀을 빚었다고 하는데 그 속에 자색고구마를 삶고 으깨어 우리나라의 떡 안에 들어가는 소처럼 만들어 넣어줬다. 같이 따라온 작은 소스컵에는 코코넛밀크와 통깨가 얹어져 있었다.

한 알씩 포크로 찍어 소스에 풍덩 발라 찍어먹으니 고소한 향과 달달한 맛이 입안 가득하다. 찹쌀과 고구마의 조합이 퍽퍽하니 달달한 설탕물에 절여졌고 그 옆에는 생강을 채로 썰어 날로 넣어 그 맛과 향이 설탕물에 우려 나게 했다.


망고스틴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나라에서도 망고스틴은 과일의 여왕이다. 한국에서도 냉동 또는 냉장되지 않은 생과를 단 몇 과도 몇 만 원이 넘게 호가하는데도 이를 먹으려 하루 만에 배송되는 비싼 익스프레스배송 서비스로 받아먹는다 하니 듣기만 해도 이 망고스틴의 위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이름값 제대로 하는 과일을 앉은자리에서 배부르게 까먹고도 주변한국인 이웃들과 나누니 찬사까지 받는다.


너무 맛있게 먹은 나는 잘로라는 앱을 통해 감사인사를 전했고 한국의 잡채를 소개하며 그걸 만들어드리겠다는 약속을 지켜 드렸다.

하다 보니 열 통이 나왔다.


그래서 베트남인들과 평상시 왕래가 뜸했던 한국인동생과 교회집사님께 골고루 나눠드렸다.


만약 그들이  먼저 쩨를 만들어 내게 선물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 많은 잡채를 여러분들께 나눠드릴 수 있었을까.

게다가 오늘은 또 무슨 날인지 나만 만든 게 아니라 지난번에 비지찌개가 먹고 싶다 하여 만들어드린 언니까지 김밥을 만들어 나오셨다.


도합 스무 줄쯤을 만드신 손 큰언니.

이 김밥. 더운 나라에선 잘 만들어먹지 못한다. 너무 더워서 만들다 보면 자다 일어나 하루를 버텨야 하는 그 기운의 할당량을 김밥만드느라 다 써버리는거 같다. 그래서 이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하고나면 낮잠을 대충 두세시간은 자둬야 다시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저녁상을 차릴 힘이 나는 것 같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얻어먹는 이 김밥. 왜 이렇게 맛있는 거냐?


언니는 이곳에서 청경채 김치까지 개발해서 그 레시피를 우리들에게 전수해 주신 창시자가 되셨다.

한국배추가 너무 비싸서 흔한 청경채로 김치를 만드는 지혜를 가르쳐주신 언니가 참 고맙다.

이렇게 받은김밥이 맛있다고 하니



받은 잡채가 맛있다는 친구.


이 순간엔 행복해서 눈물이 다 났다.


이 잡채가 뭐라고 혼자 해 먹고나면 내 배에 들어가 위를 채우고 장을 채우며 조용히 사라졌을 녀석이지만,

이렇게 주위에 나눠드리고 나니 아침부터 하루가 신나게 바빠지고 하루종일 인사받고 즐거이 보내고 나니 아무도 모르는 내일이 당연히 기쁜날이 될거란 확신이 생긴다.


내가 만든 한국의 잡채가 오늘 처음 맛보는 베트남인들에게 인생잡채가 되길 바라지만 사실 오늘 일로 인해 내 마음 한 켠에는 맛있는 건 혼자 먹지말고 이제부터는 무조건 여러명이서 나눠먹자로 신조가 바뀐 계기가 되었다.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옛말은 살기 어려워서 그랬겠지. 그랬는데 그 속담이 왜 전설처럼 대대손손 내려왔는지 알게된 값진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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